차라리 수학이 쉽다는 사실을 아이들을 낳고 나서야 깨달았다. 수학은 정답이 있으니 틀리면 다시 풀면 되고, 그래도 모르면 해답지를 볼 수도 있고, 선생님한테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 키우기는 정답이 없다. 주어진 조건도 다 다르고, 틀렸다고 다시 키울 수도 없다. 가장 힘든 것은 누구한테 물어봐도 수학처럼 딱 떨어지는 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육아는 더 막막하고 어렵다.
- 흔들흔들 갈대 엄마 분투기, “옆집 엄마를 조심하세요”
어떤 어른으로 자라면 행복할까? 무조건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좀 더 멀리 생각해보았다. 살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공부 잘해서 명문 대학에 간다고 다 행복하게 사는 건 아니었다. ‘좋은 성적’보다는 ‘좋은 습관, 좋은 추억, 좋은 관계’ 이 세 가지가 있으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남하고 경쟁하지 않고도,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튼튼한 뿌리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 어떤 어른으로 살면 행복할까?
유럽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여행자들은 어느 나라에서 왔냐는 질문 다음으로 “어디 어디 가세요?”하면서 서로의 루트를 묻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한다. “저스트 베네룩스.” 우리가 이렇게 대답하면 열이면 열 “와이 베네룩스?”하고 되물었다. 떠나고 싶은 곳은 많았다. 못 가본 나라도 많았고 가보았기에 아이들과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나라도 있었다. 어제는 미국으로, 오늘은 호주로, 내일은 아시아로,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마음으로는 벌써 지구를 몇 바퀴 돈 것 같았다. 큰맘 먹고 떠나는 장기 여행이라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한 달 넘게 고민한 끝에, 각종 여행 인프라가 잘 되어 있어서 아이들과 아니기 좋은 유럽을 목적지로 좁혀 갔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풀꽃], 나태주
여행을 준비하던 그 해 봄 광화문을 지날 때마다 큰 빌딩의 글판에서 이 시를 보게 되었다. 이 문구가 계속 마음을 맴돌면서 나에게 여행에 대해 어떤 말을 해주는 것 같았다.
- 유럽은 뷔페 음식점이 아니잖아
로테르담에서 있었던 이날 이야기는 여행이 끝난 후에야 쓸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여행하면서 일기를 쓰게 했는데, 이날 일은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이들의 마음을 나도 이해했다. 로테르담은 네덜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우리가 머물렀던 델프트에서 기차로 30분이 안 걸리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로테르담에 대해 찾아보다가 여름 동안 수요일마다 ‘스케이트의 밤’이라는 큰 행사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여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로테르담 시내와 근교 14km를 함께 도는 행사인데, 스케이트 타기를 좋아하는 은이 준이도 해보면 괜찮을 것 같았다. 행사 담당자에게 한국 여행자인데 스케이트 대여가 가능한지를 이메일로 물어보았다. 그러자 어린이용 스케이트를 대여해줄 수 있다는 반가운 답장이 왔다.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인라인 스케이트 타기’를 여행 계획에 추가했다.
- 제발, 엄마한테 다시 돌아와
아이들은 크고 우리는 늙고. 그렇게 생각하면 참 서글프다. 물론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조금씩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부신 성장 뒤에 점점 빛을 잃어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마음을 참 쓸쓸하게 한다. 아이들은 부모라는 사다리를 타고 점점 높이 올라가는데, 그 사다리는 늘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은 점점 크고 울창한 나무로 자라는데 우리는 점점 말라가는 고목이 되는 것 같다. 인생 주기를 그래프로 표현한다면, 인생의 절반 쯤을 산 40대를 넘어서면 하강 곡선을 그리게 되는 건가? 사르트르가 ‘오후 3시는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늦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고 했다는데, 중년의 시간이 바로 그때인 것 같다.
- 다 큰 어른도 더 크게 하는 여행
여행하며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외국인들을 친구로 만나는 일이었다. 동시에 가장 어려웠던 것도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었다. 나는 대학 졸업 이후 영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 IMF시절 휴직을 하면서 석 달 정도 배낭여행을 한 뒤로는 영어를 쓸 기회조차 거의 없었다. 우리말로 광고 카피를 쓰는 카피라이터, 우리말을 가르치는 국어교사였으니, 살아가는 데 굳이 영어가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숙소를 예약하거나, 여행 정보를 물어보기 위해 더듬더듬 영어 사전을 찾고 짧은 편지들을 쓰면서 15년 만에 영어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10년 넘게 손을 놓고 있었던 영어와의 어색한 만남. 안 할 수도 없고 갑자기 잘 할 수도 없으니 부담스럽기만 했다.
- 할 수 있는 말, 하고 싶은 말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