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보를 느낄 때는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조금도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인과를 밝게 인식하는 것이다.
--- p.23
계는 위없는 깨달음의 근본이 된다. 만약 계를 의지하면 참선, 염불, 경전 강의를 막론하고 불법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만약 계를 떠나면 설령 참선, 염불, 경전 강의를 하더라도 불법과는 서로 어긋나서 외도로 들어가게 된다.
--- p.28~29
망상은 어떻게 제거하는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많이 말씀을 하셨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쉬면 바로 보리(깨달음)이다[歇卽菩提].”라는 것으로 이 하나의 ‘쉰다[歇]’는 글자이다.
--- p.137
만약 당신이 “경을 보는 것이 누구인가, 다라니를 지송하는 것이 누구인가, 예불하는 것이 누구인가, 밥을 먹는 것이 누구인가, 옷을 입는 것이 누구인가, 길을 가는 것이 누구인가, 잠을 자는 것이 누구인가” 등등을 말하더라도 모두 같은 것이다. “누구인가”에서 답을 내는 것으로서 바로 마음의 말[心話]은 마음에서 일어나니, 마음은 말의 머리[話頭]이며, 생각은 마음에서 일어나니, 마음은 생각의 머리[念頭]이다. 만법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니, 마음은 만법의 머리이다. 사실 화두는 곧 생각의 머리[念頭]이니, 생각이 일어나기 전이 바로 마음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한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이 바로 화두이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알 수 있다. 화두를 보는 것[看話頭]은 바로 마음을 관하는 것[觀心]이다. 부모에게 태어나기 전의 본래 나[父母未生前 本來面目]는 바로 마음이며, 부모에게 태어나기 전의 본래 나[父母未生前 本來面目]를 보는 것은 바로 마음을 관하는 것이다.
--- p.143
모두들 망상을 두려워하며 망상을 제압하는 것을 매우 어려운 것으로 여기는데, 내가 여러분에게 알리노니, 망상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또한 힘들게 망상을 항복시키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당신이 단지 망상을 알아차리고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을 따라가지 않으면 되며, 또한 그것을 내보내려고도 할 필요가 없이 단지 계속되지 않게 하면 망상은 저절로 떠나게 된다.
--- p.151
“누구인가?”의 화두는 실로 참선의 묘법이다. 그러나 “누구인가?”거나 혹은 “염불하는 것이 누구인가?”를 염불하듯이 반복해서 염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사량하거나 이리저리 생각하면서 “염불하는 것이 누구인가?”를 찾는 것을 의정이라고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염불하는 것이 누구인가[念佛是誰]?”의 네 글자를 쉬지 않고 입으로 염송하는데, 이것은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공덕보다 못하다. 어떤 사람은 어지러운 생각을 하면서 이리저리 찾는 것을 의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망상만 더욱 많아지며, 이것은 오르려고 생각하나 반대로 떨어지는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 p.167
소위 화두를 돌이켜 비추는 것과 들음을 돌이켜 자성을 듣는 것은 절대로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며, 귀로 듣는 것이 아니다. 만약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라면, 곧 소리와 색을 따르는 것으로서 사물에 움직이게 되므로 흐름을 따르는 것[順流]이라고 한다. 만약 오로지 한 생각이 불생불멸하는 가운데 있으면, 소리와 색을 따르지 않으므로 흐름을 거스르는 것[逆流]이라고 한다. 그리고 화두를 돌이켜 비추는 것[照顧話頭]이라고 하며, 또한 들음을 돌이켜 자성을 듣는 것[反聞聞自性]이라고 한다.
--- p.170~171
이치로는 비록 중생이 부처이고, 불성은 사람마다 다 갖추고 있다고 말하지만, 한 걸음에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덕 높은 옛 스승들이 수십 년간 고생하면서 수행한 것은 비록 이치에서는 단박 깨쳤지만, 습기(習氣)는 차츰차츰 제거해야 했기 때문이다. 청정한 성품이 습기에 물들었기 때문에 부처가 아니며, 습기를 없애고 나면 바로 부처인 것이다.
--- p.245
만약 배운 대로 실천하지 않으면, 공부는 상응하지 못하고, 궁극적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 세간법이든 불법이든 다 마찬가지로 배우고 때때로 익혀야 한다. 불법은 체(體)이고 세간법은 용(用)이다. 체는 이치[理]이고 진제(眞諦)이며, 용은 실제적인 현상[事]이며 속제(俗諦)이다. 두 가지의 진리가 원융한 삼매인(三昧印)의 도리를 알아야 한다. 융통하지 못하면 치우침에 떨어진다. 만약 체를 떠나서 용을 드러내면, 그것은 범부의 정(情)이며, 실제적인 현상을 떠나서 마음을 이야기하면 마음자리를 밝히지 못한 것이다.
--- p.279
공부는 한 문으로 깊이 들어가야[一門深入] 된다. 한 문을 중심 수행으로 하고, 여러 다른 문을 보조 수행으로 해야 한다. 각자 한 문을 수행하되 서로 비방해서는 안 된다. 법을 비방하고 법을 경시하고, 오만하게 법을 대하는 것은 모두 옳지 않다.
--- p.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