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뮤지컬 산업은 문화 산업 시장의 성장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이다. 기술 도입 추세 및 신시장 개척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다양한 문화 분야 중에서도 뮤지컬 시장이 가장 유력하
다. 최근에는 해외 대형 뮤지컬을 중심으로 기술을 도입하고 있는 추세이다.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스파이더맨Spider Man〉, 〈위키드Wicked〉와 같은 뮤지컬에는 와이어 플라잉Wire Flying, 무대 자동 제어, 홀로그램 등의 기술이 접목되어 있다.
IT 기술과 첨단 기기 제조력, 문화 산업 인프라가 균형적으로 발달한 대한민국은 신성장동력을 제공하는 창조적 문화 비즈니스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는 양질의 토양이다. 우리나라의 강점인 IT 기술과 로봇 기술, 예술문화적 경쟁력을 융합하여 지속적 부가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차세대 문화 산업 장르로 하이터치 뮤지컬을 제안한다.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이 제조업 중심의 가공무역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했다면 미래의 경제발전은 기술과 문화가 융합한 문화 산업이 주도할 것이다.
지금은 타 분야와의 적극적인 융합을 통해 IT 한국의 위상을 융합기술의 선도자로 이어나가는 로봇 한국으로의 재도약 발판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로봇 기술을 문화와 융합하여 상업화를 시도한다면 고도의 기능인 첨단 IT, 로봇 기술과 고도의 감성인 뮤지컬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문화창조가 가능해질 것이다.---감성사회의 융합 기술-하이터치 뮤지컬이란?
객석을 향해 떨어지는 샹들리에 : 플라잉 테크놀로지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가엾은 팬텀은 크리스틴에 대한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른다. 그가 할 줄 아는 거라곤 크리스틴을 주연으로 세우기 위해 극장 관계자들에게 협박 편지를 쓰거나, 질투심에 못 이겨 화를 내고 사고를 일으키는 것밖에 없다.
여기서 객석을 향해 떨어지는 샹들리에는 단순히 1막의 끝을 알리는 이정표가 아닌, 크리스틴에 대한 팬텀의 뒤틀어진 사랑의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의 절망적인 낙하를 표현한다고도 볼 수 있다. 공연장에 따라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방향, 위치, 속도 등은 조금씩 다르다. 라스베이거스의 ‘Venetian Hotel & Casino’에서 2006년부터 2012년 사이에 이루어진 공연에서 사용된 샹들리에의 경우, 영국의 공연 기술 전문회사 TAIT에서 제작을 담당했으며 총 네 개의 부품을 하나의 전체적인 부품처럼 통합 컨트롤 시스템에 의해 제어했다. 각각 두 개의 윈치로 제어되는 네 개의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총 16개의 케이블과 32개의 윈치가 샹들리에의 속도와 위치를 제어했다. 극장의 돔형 천장 윤곽을 따라 약 15미터 길이의 트랙을 총 16개 만들었는데, 이 트랙을 통해 샹들리에가 조용하고도 정확하게 떨어지도록 유도할 수 있었다. 샹들리에가 안전하게 초속 6미터로 떨어지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샹들리에 전체 무게의 4배를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한 윈치를 제작해야 하는데, 안전한 윈치를 사용하게 되면 4개 중 3개의 윈치나 케이블이 작동되지 않는 불의의 상황에서도 샹들리에를 안전하게 제어할 수 있다. 2012년 영국 로얄 알버트 홀에서 열린 25주년 기념 특별 공연에서는 샹들리에를 무대 아래로 떨어뜨리는 대신, 천장에 고정시키고 전구가 터지는 듯한 효과를 구현하여 1막을 인상적으로 마무리 지은 바 있다.---오페라의 유령
헤비사이드 레이어를 꿈꾸며 : 스테이지 테크놀로지 + 플라잉 테크놀로지
뮤지컬 〈캣츠〉에서 헤비사이드 레이어는 고양이들이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천국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일년에 한 번 헤비사이드 레이어로 올라갈 수 있는 고양이가 선정되는데, 뮤지컬 〈캣츠〉에서는 공연 마지막에 그리자벨라가 선정되어 거대한 타이어를 타고 날아올라 구름을 닮은 구조물 안으로 들어가 사라진다.
2014년 오리지널 캐스트 내한공연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활용되었다. 기존 〈캣츠〉에서 사용되던 타이어 리프트 세트는 무대의 후면에서 전면으로 4미터, 무대 위로 3미터 이동할 수 있다. 좌우 회전은 불가능하며 설치 시 5인 이상이 필요한 대형 장비였다. 유압식이며 기계 내부에 메모리 기능이 없기 때문에 컨트롤 모니터에 타임 위치를 표시해놓고 필요 시마다 구동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었다.
한편 2014년 한국에서 공연된 버전의 〈캣츠〉에서는 5개의 축을 가진 수직 다관절 로봇과 제어기를 활용하여 8.8미터 길이로 전, 후진할 수 있으며, 위아래로 6미터 이동할 수 있고 약 120도까지 회전할 수 있는 새로운 리프트를 개발하여 적용했다. 최대 1분에 15미터까지 이동할 수 있으며(상하 이동의 경우 1분에 최대 8미터) 지정된 속도와 궤도대로 자유롭게 컨트롤할 수 있다.
이는 다양한 뮤지컬에서 리프팅 장면에 활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콘서트 및 대형 퍼포먼스 무대 등 관련 영역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캣츠
킹콩의 탄생 : 로봇 테크놀로지, 애니메트로닉스
애니메트로닉스는 용이나 공룡, 페가수스 등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을 물리적 실체로 무대 위에 구현할 때 매우 효과적인 기술이다. 뮤지컬 〈킹콩〉의 애니메트로닉스 담당자인 소니 틸더스는 20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 애니메트로닉스 전문가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3-시스의 복수〉에서 외계인을 만들었으며, 〈나니아 연대기〉에서 신비로운 생물들을 구현해냈다. 하지만 킹콩은 외계인이나 이름없는 생명체와 같은 조연이 아닌, 관객들이 극장을 찾는 이유이자 작품의 주인공이다. 그런만큼 부담이 컸을 것이다. 완성도 높은 애니메트로닉스, 다축제어, 그리고 초현실적 비전 기술을 통합적으로 활용해 완성된 킹콩의 등에는 여러 개의 줄이 달려 있고, 몸의 일부는 마리오네트 방식으로 움직이고 다른 일부는 애니메트로닉스 방식으로 움직인다. 이는 유압식 실린더와 자동화 시스템, 그리고 수동 조작 방식을 모두 조합하여 만들어낸 결과이다. 마리오네트 방식으로 이 초대형 주인공을 움직이는 것은 11명의 인형사들과 공중곡예사들이었다. ‘King’s Men’이라 불리는 이 인형사들은 자신이 조작하는 인형의 삶과, 그 환영을 창조해내는 인간으로서의 시야를 모두 갖고 무대 여기저기를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킹콩의 팔을 올리고 다리를 옮긴다. 11명의 인형사들 외에도 두 명의 인형사는 voodoo 컨트롤을 이용해 킹콩을 움직이고, 다른 한 명은 자동화 시스템을 조작한다. 이렇게 총 14명의 사람들과 하나의 주인공 킹콩이 힘을 합쳐 킹콩의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이외에도 킹콩의 조종에 관여되는 스태프만 무려 35명에 달한다. 킹콩의 팔과 어깨 부분에는 여러 개의 줄이 달려 있고, 무대 구석구석에서 인형사들이 이 줄을 당겨 킹콩의 다양한 팔 모션을 만들어낸다. 이는 훌륭한 기술과, 기술에 대한 철저하고 성실한 접근이 이루어낸 아이디어이다.
킹콩의 감성적 연기는 사람의 키 두 배가량의 거대한 얼굴 부분으로부터 표현된다. 커다란 입을 열고 이빨을 드러내며 분노를 표현하기도하며, 미간에 주름을 잔뜩 짓고 눈을 찌푸리며 슬픔을 표현하기도 한다. 한편 공중 연기와 서커스 부분의 연출을 맡은 게빈 로빈Gavin Robin은 킹콩의 페르소나, 즉 킹콩의 진정한 남성적 에너지와 아우라는 인형사들의 움직임을 통해 표현된다고 언급했다.---킹콩
우리나라의 2차 산업 성장이 해외 우수 원자재를 수입해 국내의 우수한 기술로 제품을 만들거나 가공한 후 이를 다시 해외로 수출하는 ‘수입.가공.수출’ 체계를 통해 이루어졌듯, 국내 뮤지컬 산업의 2차 성장 또한 이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우수 해외 공연 콘텐츠에 국내의 수준 높은 첨단 공연 기술을 접목하여 작품을 재가공하고, 새롭게 창작된 뮤지컬 및 뮤지컬 내의 세부 모듈 기술들을 수출하는 모델을 설정해 국내 뮤지컬 산업의 성장을 촉진하고 해외 시장으로의 진출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선진화된 산업 시스템 및 풍부한 기술적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적극적인 투자와 인력 양성을 통해 창작 뮤지컬 시장의 성장 또한 함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로봇의 두뇌는 무대 위의 촛불이 되어 오페라 하우스 지하를 아름답게 밝혔고, 로봇의 근육은 강인한 영웅 킹콩의 심장을 뛰게 했으며, 별이 빛나는 밤, 로봇의 팔은 마법의 양탄자를 하늘 높이 날게 했다. 이처럼 로봇의 요소기술들이 손을 내밀어 성장하는 뮤지컬 산업에 생명력과 정교함을 더하게 될 때, 그 만남은 로봇 문화와 뮤지컬 산업을 견인할 뿐만 아니라 문화 산업의 성장이 발돋움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로봇문화와 뮤지컬 시장의 동반 성장을 기반으로 주변 산업에까지 그 창조의 물결이 퍼져나갈 것으로 기대해본다.
---차세대 문화 산업을 생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