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록은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한 마분지 상자나 속이 훤히 비치는 노란색 종이봉투 따위의 형편없는 물건들을 파는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며 아내 위니와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반백치인 처남 스티비와 함께 살아간다. 자신의 어머니와 동생까지 모두 돌보아줄 사람이라는 생각에 벌록과 결혼을 하게 된 위니는 그에 대해서 깊게 알려고 하지 않고 단지 동생이 남편의 눈 밖에 날까봐 전전긍긍한다. 모자란 동생에 대한 그녀의 모성은 맹목적이고 절박하기까지 하다. 그녀는 벌록과 스티비가 부자지간 같은 사이가 되기를 바라지만, 벌록은 정작 스티비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벌록은 자신이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자신 또한 아내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길 뿐이다.
벌록의 숨겨진 직업은 프랑스 대사관의 비밀요원이다. 어느 날 아침 대사관에 불려간 벌록은 그곳에서 도시를 혼란에 빠뜨릴 뭔가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키라는 블라디미르의 채근을 받게 된다. 그 일이 있은 뒤, 자신이 받은 모욕과 앞으로 어쩌면 더 이상 대사관으로부터 월급을 못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벌록은 몹시 괴로워한다.
벌록의 가게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기 위한 수단일 뿐, 물건을 사고파는 거래가 이루어지기보다 나태하고 부패한 무정부주의자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때문에 위니는 그곳에서 오가는 말들이 스티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되지 않을까 늘 걱정을 한다. 그러던 중 벌록의 제안으로 스티비는 무정부주의자 중의 한 명인 미케일리스가 혼자 집필을 하며 생활하는 시골로 보내지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니치 천문대에서는 의문의 폭파 사건이 벌어진다.
이 폭파 사건의 수사를 맡은 히트 반장은 사건 현장에서 폭탄과 함께 터져 갈가리 찢겨진 시체의 코트 깃에 새겨진 주소를 발견하고, 그 주소에 씌어진 대로 벌록의 집을 찾아간다. 히트 반장으로부터 사건에 대한 얘기를 전해들은 위니는 그곳에 찢겨진 시체가 바로 자신의 동생 스티비라는 것과 그 일을 꾸민 사람이 벌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분노에 휩싸인다. 그러나 벌록은 오히려 스티비 때문에 자신의 일을 망쳐버렸다고 생각하며,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위니는 순간적으로, 식탁에 올려진 칼로 벌록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그러고는 겁에 질려 자살을 결심하고 거리로 뛰쳐나온다.
자살할 곳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위니 앞에 여자들의 마음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무정부주의자 오시폰이 나타난다. 그의 자상함에 마음을 의지하게 된 위니는 그에게 자신을 데리고 어디든 떠나줄 것을 부탁한다. 폭파 사건으로 죽은 사람이 벌록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오시폰은, 위니가 벌록의 전 재산을 가졌다는 말을 듣고 그녀와 함께 갈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떠나기 전, 위니의 가게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죽어 있는 벌록을 보게 된다. 일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오시폰은 자신의 신변에도 위협을 느낀다. 결국 위니를 속여 돈만 가로챈 뒤, 그녀 혼자 배를 태워 떠나보내고 자신은 도망친다. 그리고 그는 다음 날 신문에서 한 여자가 배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