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러면 안 되는데…….’ 퉁. 트럭이 왼쪽에서 내 몸을 치었다. 그 순간 나 자신이 너무나도 가볍게 느껴졌다. 힘없이 자전거에서 나가떨어지며 앞으로 굴렀다. 구르면서 살벌하게 깨져 있는 아스팔트와 나지막한 오르막길이 눈에 들어왔다. 트럭은 멈추지 않았다. 내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고 결국 내 몸을 덮쳤다. 나를 친 것을 모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 엄청난 소리와 함께 트럭 아래와 아스팔트 사이에 몸이 비벼지며 구르기 시작했다. 사포같이 거친 아스팔트에 피부가 쓸려나갔다. 트럭이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하면서는 어딘가에 덜컥 몸이 걸리더니 이내 내 몸은 하늘을 보고 있었고 그대로 드득드득 더 끌려갔다. 자전거가 트럭 뒷바퀴에 말려 들어간 후에야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트럭이 멈추었다. 나는 살아 있는 것일까? 아직 죽지 않은 뇌가 감각기관에서 보내오는 신호를 해석하고 있는 것뿐일까?
--- 「사고의 순간」 중에서
어머니는 나와 마주치자마자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슬퍼하기 시작하면 끝없는 심연에 빠져들 것만 같아서 괜히 핀잔을 놓았다. “괜찮으니까 울지 마요!” 병실로 들어간 후부터는 또다시 고통과 시간의 방에서 지냈다. 나는 그날 다리를 잃고서 멘탈이 무너졌을까? 아니다. 다리가 절단되었다는 현실에 슬퍼할 정신조차 없었다. 절단되고 없는 다리는 분명히 거기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무릎과 발목뼈가 부러진 느낌은 지독히도 생생하게 지속되었다. 체온과 혈압이 널뛰기를 하고, 피부가 다 벗겨져버린 엉덩이와 등으로 누워 있어야 하는 신세. 식사 시간이면 마약성 진통제를 추가로 먹고 억지로 상체를 일으켜야 했다. 움직일 수가 없어 어머니가 떠먹여주는 음식을 먹고, 고통에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다가 진이 빠져 잠에 들었다.
--- 「다리를 절단하다」 중에서
이제 다리가 하나 없는 것은 나의 특징이다.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다시 다리가 자라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루한 고통 속에 지내고 있던 어느 날, 병상에 마주앉아 어머니와 점심을 먹던 나는 문득 말을 꺼냈다. “엄마, 그러고 보니까 저 무지외반증이 있었는데 없어졌어요.” “무지외반증이 있었어? 어디 봐.” “아니, 이제 없다고요.” 황당해하는 표정과 함께 어머니가 풋, 웃음을 지었다. 사고 후 처음으로 보는 웃음이었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없이 밥만 먹던 무거운 분위기가 한번에 환기되었다. 성공적이었다. 이로써 나의 암살 개그는 계속되었다.
--- 「이제 다리가 하나 없는 것은 나의 특징이다」 중에서
답답한 심경으로 ‘다리절단’, ‘절단장애’, ‘Amputation’, ‘Amputee’ 등을 검색하며 시간을 보내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패럴림픽이었다. 온갖 재앙과 악이 담겨 있었던 판도라의 상자 안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었던 것은 ‘희망’이라고 했던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살면서 한번도 관심 주지 않을 키워드가 내게는 희망으로 가득 찬 선물상자 같았다.
--- 「자전거를 다시 탈 수 있을까」 중에서
다리가 없이 넘어진 것이 처음이라 쉬이 벌떡 일어날 수가 없었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 일어서기 위해 바로 고쳐 앉았다. 내 바로 뒤에 따라오던 영지가 어깨 밑에 손을 넣어 나를 일으키려고 했다. 안 돼 안 돼, 나를 어떻게 들려고. 먼저 목발을 세워 들고 몸을 추스르려는데 건장한 병원 직원이 달려와 나를 번쩍 들어 일으켜주었다. 분명 고마운 도움이지만 나 혼자 일어설 수 있었는데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들려 일으켜지니 조금 무력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이거구나. 넘어진 것보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당장 도와주어야만 할 사람으로 보여진다는 것이었다. 마음속에 약간의 우울감이 피어올랐다. 앞으로 분명 내 남은 인생에선 오늘처럼 호의에 대한 감사함과 무력감이 뒤섞인 감정을 수없이 마주할 것이고 그중 오늘이 첫 번째였을 거야. 아무것도 아닌, 정말 사소한 첫 번째.
--- 「장애인으로 사는 첫 번째 날」 중에서
나는 스스로를 최대한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의족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절단장애인과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에게, 절단장애인도 이렇게 잘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겠다. 온 세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나 좋은 의족보행을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 나아가 절단환자들이 최소한의 일상생활을 누리는 데 도움이 되어야겠다. 세상에 나를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올림픽에 나가자. 자전거 선수가 되어서 올림픽 무대에서 달려야겠다.
--- 「장애인 사이클 선수가 되기로 결심하다」 중에서
내 사고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가해자를 악마화했지만 내 머릿속에 그런 악마는 없었다. 가해자를 악마로 만든다고 해서 내게 돌아오는 것도 없었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곱씹는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그때 몇 초만 비껴 지나갈걸, 그날 자전거로 퇴근하지 말걸, 처음부터 자전거로 출퇴근하지 말걸, 애초에 자전거라는 걸 시작하지도 말걸 하면서 후회해봤자, 지금까지 내가 해온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결과만 낳을 뿐만 아니라 끝없는 자기혐오의 수렁으로 뛰어드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차라리 나는 그냥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 「악마는 없다」 중에서
나는 이제 다리 하나로 살아간다. 다리 하나로 살아가는 것이 다리 두 개로 살아가는 것에 비해 절반만큼의 재미를 주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보너스로 얻은 두 번째 삶은 첫 번째 삶보다 더 섬세하게 행복을 느끼고, 함께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하며, 더 멋진 일들을 해내고, 무엇이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인지 또렷하게 아는 채로 살아간다. 그렇게 한 개뿐인 내 다리에는 한계가 없다.
--- 「내 다리는 한계가 없다」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취미를 갖는 데에 인색하다. 경쟁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사회 분위기는 취미활동을 소비적이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비추어지게 만든다. 취미를 즐기며 보내는 시간은 저평가되기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끔찍한 사고의 생존자로서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만의 취미를 하나쯤 가지고 살라고 말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삶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 자전거라는 취미가 유독 특별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그 취미가 무엇이든,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자신만의 취미를 갖는 것은 삶의 질을 대단히 높여준다. 나는 그날 다리를 잃었고, 그로 인해 일과 커리어를 잃었지만,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다.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삶이 남아 있었기에 그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해준 것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