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중(成大中, 1732~1812)은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사집(士執)이며 호는 청성(靑城)이다. 서얼이었으나 통청운동에 힘입어 청직(淸職)에 임명된 후 서얼통청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박지원, 홍대용 등 북학파 학자들과 교유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정조의 문체반정에 적극 호응한 의고문주의자이기도 하며,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해응(成海應)이 그의 아들이다.
1763년 서기의 자격으로 통신사 조엄을 수행하여 일본에 다녀왔고 이때 남긴 글이 바로 『일본록』인데, 그밖에 천 수 가까운 시를 수창하였으며, 특히 글씨로 유명하여 일본의 학자 및 일반인들에게 써준 글씨가 만여 장이 넘었다고 한다. 문집으로 『청성집(靑城集)』이 전한다.
이혜순(李慧淳)은 1942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와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각각 국문학석사와 비교문학석사를, 중국 국립대만사범대학에서 중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와 한국고전여성문학회 회장, 한국고전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비교문학-이론과 방법』, 『수호전 연구』, 『조선통신사의 문학』, 『고려 전기 한문학사』, 『한국 고전여성작가의 시세계』, 『한국 고전여성작가 연구』(공저), 『비교문학의 새로운 조명』(공저) 등이 있고, 『한국 고전여성문학의 세계』(전2권, 한시편, 산문편), 『한국의 열녀전』 등을 공역했다.
홍학희(洪學姬)는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한문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우전(雨田) 신호열(辛鎬烈) 선생님, 사단법인 유도회(儒道會)의 권우(卷宇) 홍찬유(洪贊裕) 선생님, 퇴운(退雲) 이지풍 선생님 등에게서 한문을 사사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 충북대학교, 한남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을 역임하였다.
박사논문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시문학 연구」를 비롯하여 「이이 산수기행시의 주기적 전망」, 「율곡 이이의 고문관(古文觀)과 그 표현 특성」, 「한국 도학시 연구에 있어서의 몇 가지 문제」 등의 논문이 있는데, 주로 조선 중기의 도학시에 관심을 갖고 『염락풍아(濂洛風雅)』를 공부하고 있는 중이며 넓은 의미에서의 한시 비평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