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은 나를 일상으로부터 들어 올리며 색다른 발견을 하게 한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게 하고, 익숙한 것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열어준다. 때로는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고귀한 것을 알게 하고, 그로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 일상 또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그래서 나는 설렘이라는 마음 상태를 귀하게 생각한다.
프랑스와의 인연이 깊어진 것도 아마 그런 설렘 때문일 것이다. 명품 매장의 쇼윈도나 문턱 높은 화려한 식당, 관광 엽서에 나오는 그림 같은 풍경 앞에서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런 것들도 신기하고 재미있을 수 있지만, 정말 폭로하고 싶어 입이 간지러운 것은 이렇게 일상의 동선 위에서 마주치는 설렘이다. 파리의 일상에는 그런 것들이 곳곳에 감추어져 있다.---p.18
시를 쓰는 사람도 시인이지만, 내게 시인이란 어떤 형태로든 보이지 않는 것을 노래하는 사람이다. 눈과 귀와 마음이 굳지 않은 사람이다. 이들이 이러한 설렘에 민감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화가도 음악가도 시인이며,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끔씩 시인들을 만난다.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색채와 선율과 언어의 스펙트럼에 걸러내어 보이게 하고 들리게 하고, 냄새로든 혀끝으로든 맛볼 수 있게 하는 모든 사람들이 시인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아무도 몰라서 그렇지, 나도 당신도 시인일지 모른다.
무엇보다 시인이었고, 또한 시나리오 작가였고, 작사가였던 프레베르 자신도 이렇게 말했다.
“나에겐 말이죠, 글로 쓰는 시, 말로 하는 시, 영화로 찍은 시가 있을 뿐, 결국 모두가 다 같은 것입니다.”---p.23
몽파르나스 역을 오가는 기차들의 모습이 보였다. 수십 개의 철로가 교차하고 온갖 색의 신호등과 불빛이 빛나는 곳,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진 집 한 채, 또 사람들. 프레베르는 이곳에 잠시 머물다 갔다. 이 ‘거대한 철로를 따라 금빛 열차를 타고’ 세상 구경을 나간 프레베르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그 금빛 열차의 찬란함이 문득 눈부셨다. 파리 여인들의 필수품인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장을 보러 가다 말고도 난 가끔 몽파르나스 역사 안을 가로지른다. 그러면 가방을 들고 열차에 오르내리는 여행자들이, 바로 우리의 삶이 하나의 여행임을 온몸으로 알려온다. 그 종착은 어딜까. 이런 의문은 밋밋한 일상을 뒤흔들어 활기를 불어넣곤 한다. 금빛 열차의 찬란함처럼.---p.36
이십대의 나는 늘 거의 슬펐던 탓인지, 책장을 덮어도 이 구절이 항상 맴돌았다. 너무 슬플 땐 석양을 사랑하게 돼. 그때도 지금도 난 해가 뜨는 모습보다는 지는 모습을 좋아한다. 의자를 조금씩 옮기면 하루에도 수십 번 석양을 볼 수 있는 어린 왕자의 작은 별이 부러웠다. 내게 삶은 여전히 슬픔인가. 삶은 내게 기쁨도 알게 했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애잔함은 내내 지워지지 않는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가엾게만 보이는 탓이다. 우리나라 서해안의 석양, 또 내륙의 첩첩산중 능선의 물결을 넘나드는 구름 위로 번지는 석양은 무척 아름답다. 그런데 내게 최근 가장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일몰의 모습은 지중해 코르시카 섬 칼비 시의 성채와 스페인의 산세바스찬 해변에서 보았던 석양이다.---p.52
죽음을 목전에 둔 생텍쥐페리가 경험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이었다. 모든 감정이 사라지고 모든 어휘가 의미를 잃는다. 그 자신이 텅 빈 사막이 된 것이다. 사막과 하나가 된 것이다. 사막에서의 사투와 칠흑 같은 밤을 달리는 야간비행은 생텍쥐페리에게,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의 도그마를 넘어서는 신의 손길을 더욱 가까이 느끼게 한다. 글을 쓰는 행위 역시 그러했다. 작품 곳곳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발견할 수 있으며, 1935년에 쓰기 시작하여 사후에 미완성인 채로 출판된 그의 유작 『성채』는 인생에 대한 깊은 영성적 성찰을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서 사제와 같은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며칠간의 사투 끝에 길을 가던 베두인족에게 기적적으로 구조된 그는 말라붙은 목 안으로 물을 흘려 넣으며 “물! 너는 맛도 색도 향도 없고 널 정의할 수도 없지만 난 알지도 못하면서 너를 맛본다. 넌 생명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 자체다.”라고 외친다. ‘사하라는 우리 안에 제 모습을 드러낸다. 사막으로 접어든다는 것은 오아시스를 찾는 것이 아니고 샘을 우리의 종교로 만드는 것이다.’라는 성찰을 이끌어냈다. 사막과 샘의 이미지는 『어린 왕자』에서도 아름다운 울림을 만들어낸다.---p.73
카뮈 자신은 『이방인』 영문판 서문에서 “우리 사회에서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 모든 사람은 사형수가 될 위험이 있다.”는 말로 『이방인』을 정의했다. 의문을 제기하거나 이치를 따지려 들면 윽박을 지르거나 문제아 취급하는 모든 관습적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던 고등학생에게는 이보다 더 신선한 것이 있기 힘들었다. 또한 카뮈는 “나에게 뫼르소는 폐인이 아니라 그늘이 없는 태양을 사랑했던 가난하고 헐벗은 인간이다. 감성이 결여되어 있는 인간이 아니라 완강하고 깊은 열정이 그를 움직인다. 그것은 절대와 진리에 대한 열정이다. (…) 어떤 영웅적인 태도도 없이 진실을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어낸다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1940년 파리의 생 제르맹 대로에 위치한 메디슨 호텔에서 『이방인』을 탈고했다.---p.96
뤼베롱 산기슭의 무인천지 포도밭에서 나는, 역시 다섯 편의 에세이 중 하나인 「영혼 안에서의 죽음」에서 이탈리아 비첸차의 평원을 내려다보는 카뮈를 생각했다. 햇빛을 빨아들여 반투명한 포도 잎새들의 물결을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니, 그 잎새와 휘어진 가지,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 그리고 이미 떠나버린 열매의 자리들은 언어를 넘어선 침묵 속에서 아무런 수식 없이 다만 존재하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무(?에 대한 취향에 경도되어 모든 장식과 수식을 버렸다. 모든 열매와 꽃을 버린 나무처럼 ‘눈물 없는 충만감, 기쁨 없는 평화’를 알았다.---p.107
『최초의 인간』에서 자크의 초등학교 은사로 나오는 베르나르 선생님은 카뮈의 어릴 적 스승 루이 제르맹을 모델로 한 인물이었다. 베르나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1차 대전 이야기인 『나무 십자가』를 조금씩 읽어주는데 주인공이 죽는 마지막 장면을 읽어주자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꼬마 자크는 맨 앞자리에 앉아 펑펑 울어버리고 만다. 그러자 선생님은 방과 후에 자크에게 그 책을 선물한다. 책을 받지 않으려는 자크에게 선생님은 “책을 다 읽은 후 네가 울음을 터뜨린 그 순간부터 이 책은 네 것”이라고 말해준, 어린 자크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진정한 스승이었다. 실제로 루이 제르맹 선생님이 할머니를 설득한 끝에 중학교에 진급할 수 있었던 카뮈는 노벨상 수상 연설 때 제르맹 선생님께 감사를 드렸다. 문맹의 가난한 노동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아마도 카뮈뿐이 아니었을까 한다.---p.113
구트도르 가를 돌아 나오는데 전철역 부근 큰길가에 가죽점퍼를 입은 젊은 청년 하나가 마약에 취해서인지 술에 취해서인지 쓰러져 있었다. 아무도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누가 그를 일으켜 세울 것인가. 그 앞으로는 하반신이 심하게 기형이어서 마치 네발짐승이 걸어가는 것 같은 모습으로 바닥을 기며 동냥하는 여인이 지나갔다. 대퇴골이 없이 무릎 아래가 바로 엉치뼈에, 그것도 직각으로 붙어 있는 모습이었다. 무슨 신화에 등장하는 환상의 동물 같은 모습이어서 동정이나 연민의 감정보다는 비현실의 세계에 있다는 느낌이 앞섰다. 감정이 제거된 듯 보이는 여자의 시선이 나와 잠시 마주친 순간 ‘네가 인생을 알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시선이 한 말인지 내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목로주점』을 읽다가 메모해두었던 구절이 있다. “누구나 진흙탕 속에 빠져 있을 때는 머리 위에 눈부신 광채를 비쳐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머리 위로는 따스한 봄 햇살이 누구에게나 공평히 내려앉고 있었다.---p.142
작가의 말대로 광야처럼 드넓은 푸른 바다와 언덕을, 햇빛이 따라가는 오솔길을 사진으로 담으려 했던 바람은 이미 길 위에 버린 지 오래였다. 바닷바람이 거세 우산도 소용이 없었고, 나도 옥수수 밭처럼, 잦아들 줄 모르는 비바람에 몸을 맡기고 잠시 서 있었다. 옥수수 밭 너머로 잿빛 하늘과 한데 얽힌 바다가 웅성거렸다. 장 외드 마로가 큰 바다에서 만났을 거센 풍랑도 저렇게 시작되었겠지. 멋진 사진을 찍어보겠다는 치졸한 소망 뒤에는, 사실 르 클레지오가 브르타뉴의 벌판에서 느꼈다는 그 ‘비이성적인 것’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잠시뿐이었지만, 하늘이 바다가 되고 바다는 광야가 되며, 나는 비바람에 흔들리는 옥수수 밭이 되는 세계가 거기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집은 금작화와 히드, 고사리가 자라는 벌판의 끝, 바닷바람에 비스듬히 누운 소나무와 화강암으로 둘러싸인 바닷가 절벽 위에 있다고 했다. 마을을 크게 돌아 나오는 길에 어디선가 많이 본 익숙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을 닮았다. 르 클레지오 선생도 제주도를 좋아한다고 들었다.---p.180
그의 소설들을 읽다 보면 개개의 작품이 마치 하나의 생물체처럼 거대한 구조 안에서 서로 유기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는 인상을 깊이 받게 된다. 평생을 문학에 바친 위대한 작가들이 대개 그러한 듯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더욱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작품의 성향이 다르고 소재가 다르다 하더라도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그의 작품이 그의 삶에 아주 근접해 있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작품 속에 ‘자전적’ 요소가 많아서라기보다는 작가의 존재와 글쓰기라는 행위가 화학작용을 일으켜 그 존재와 행위가 일체가 된 것 같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땅의 울림에 몸을 맡기고 하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작가의 존재가 글쓰기와 짝을 이루어 보이지 않는 춤을 추고 있다는 느낌. 나는 그 무엇과 보이지 않는 춤을 추고 있는 것일까?
브르타뉴의 광야에 서서 대서양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길은 떠나는 길인가 돌아오는 길인가. 나는 떠나온 것일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p.182쪽
잠의 시편들을 뒤적이다가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에 견줄 만한 의미 있는 산문시를 발견했다. 두 편 모두 ‘새’에 시인의 존재를 빗대어 노래한 것인데,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가 거대한 날개를 펼쳐 창공을 날다가 뱃사람들에게 붙잡혀 조롱을 당하는 우울한 파리의 저주받은 시인이라면, 프랑시스 잠의 멧도요는 사람들이 자신의 두 날개에 납덩이를 매단다면 슬퍼하겠지만 달빛 아래 한적한 풀밭 위를 걸을 때 행복을 느끼며 때가 되면 가야 할 곳으로 홀연히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바스크의 시인이다. 세속적인 일상사가 알바트로스에게는 감옥과도 같은 곳이지만 멧도요는 제비꽃처럼 그 안에 숨어 행복하게 살고 싶다. 칼날 같은 지성을 번득이기보다 대자연 속에서 지혜를 구하는, 소박하지만 모자람 없이 우아하고 욕심은 없지만 용기로 가득한 시인의 순수한 모습을 발견한다.
이십대에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를 만나 알바트로스처럼 고뇌했다면 이제 프랑시스 잠의 멧도요에 나 자신을 비춰본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려 하지 않고 조그만 배 하나 띄워 조용히 가고 싶다. 모든 시간의 형태들이 배 그림자 위에서 반짝이며 뒤따라오는 것을 지켜보면서.---p.246
주변의 적지 않은 여성들이 “나는 뒤라스를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뒤라스를 좋아한다는 남자도 가끔 보았다. 뒤라스에 매료되어 인터뷰와 글을 남긴 작가 도미니크 노게즈도 남자고 뒤라스 말년의 동반자 얀 앙드레아도 뒤라스의 열렬한 팬이었다. 사실 그는 평생 적지 않은 남자들을 매혹시켰다.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여자였다. 누군가를 사로잡아 포로로 만들지 않으면 죽기라도 할 것처럼. 그런데 사람들이 뒤라스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는 뒤라스라는 인물을 좋아한다는 것인지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는 것인지 그 경계가 늘 모호하게 들리곤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뒤라스의 작품에서 뒤라스라는 인물을 빼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작품이 작가에게 피부처럼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다. 뒤라스는, 뒤라스를 통해서 뒤라스와 함께 뒤라스 안에서 뒤라스를 썼다. 막상 나 자신은 그의 작품 혹은 인물 자체에 애정이 있는지 알 수가 없는데도 그이는 나를 그렇게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이가 여자이기 때문이었을까? 뼛속까지 여성이지만 여성을 넘어서 ‘모든 것’이 되고 싶었던, 혹은 ‘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p.320
오래 걷다 보면 생각이 없어진다. 특히 혼자서 오래 걷다 보면 나 자신이, 생각이 없어지고 시선만 남는다. 사랑하기에 더없이 적당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뒤라스도 사랑은 시선이라고 했을지 모른다. 시선은 카메라가 되어 인물의 상태를 살핀다. 그가 영화를 찍게 되는 건 이미 글쓰기에서도 그 전조가 보였다. 롤의 주제를 ‘영화로 쓴’ 「사랑」과 「갠지스의 여인」 모두 로슈 누아르에서 촬영했다. 홀의 창문으로 곧장 바다가 보이는 광경은 건물이 물속에 잠겨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뒤라스에 따르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에스 탈라의 이미지는 바다 중에서도, 썰물 때 펼쳐지는 드넓은 모래사장 쪽에 더 가깝다고 했다. 시시각각 그 모습을 달리하는 모래의 나라인 것이다. 뒤라스의 문학은 영화와 함께 간다. 그녀는 자신이 글을 썼던 그 장소에서 영화를 찍었다. 뒤라스는 이 장소들을 일컬어 열정의 장소라고 불렀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고 했다. 자신의 영화들은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날부터 시작된다고도 했다. 책을 읽는 것처럼.
---p.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