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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만리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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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만리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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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5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662g | 153*224*30mm
ISBN13 9788954621410
ISBN10 895462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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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목적은 중국이라는 과목을 학습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워싱턴 특파원과 유학생으로 각각 3년 6개월과 2년 6개월 모두 6년을 보냈다. 미국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전거 횡단은 가시적인 목표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미국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한 번도 생활해본 적이 없었다. 미리 제목까지 생각해놓은 책 『레드 차이나를 찾아서』를 쓰려면 이전과 이후를 비교할 정도는 돼야 할 텐데, 내가 중국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지만 중국은 ‘잘 아는 것 같은데도 아는 게 없는’ 그런 나라가 아닐까. 그러면 이번 여행은 중국 입문이어야 한다.--- p.21 「벚꽃눈 흩날리던 날, 중원 ‘삼각코스’로 떠나다」

격렬한 정치 토론이 오갔고 다시 인민의 품으로 돌아올 것 같았던 런민광장은, 그러나 시위가 무력 진압되면서 광장으로서의 운도 다했다. 각종 문화 편의 시설로 쪼개져 군중이 모일 수 없는 곳이 돼버렸다. 인민의 힘으로 정권을 쟁취한 중국 정부가 이제는 인민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시대가 된 것일까. (…) 지금은 런민광장에서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한다. 상하이에 도착한 첫날, 밤 9시쯤 런민광장의 분수대에는 밀어를 나누는 연인들이 눈에 띄었다. 인민은 없고 개인만이 있었다. 그리고 광장 지하로 들어가자 1930년대의 풍물을 복원한 펑칭가風情街가 긴 통로를 따라 이어졌고 소비자들로 붐볐다. 중국의 미래라고 불리는 상하이는 뜻밖에 1930년대를 그리워한다.--- pp.40-41 「상하이는 1930년대를 그리워하네」

사실 중국에 오기 전 가장 불안했던 것은 농촌 상황이었다. 중국 농민과 관련된 보도가 있다면 대부분 시위와 관련된 것이었다. (…) 서방 언론은 중국 어느 한 곳에서 시위가 일어나면 다른 곳에서도 끓어오르고 있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서방 언론이 중국의 안정을 흔들기 위해 침소봉대한다고 비판한다. 그럼 솔직히 공개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나쁜 일이 알려지면 사회 분위기를 흐리고 나쁜 일이 더 일어날 수 있다고 대답한다. 이런 사회주의 언론관에 따라 사회 안정을 해칠 수 있는 우칸촌 시위는 중국 내에서는 보도가 통제됐다. (…) 중국 안으로 들어올수록 점점 지금까지 언론보도나 서방작가들이 묘사한 것과는 다른 중국과 중국인을 발견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pp.126-132 「중국 농민들과의 첫 조우」

내가 본 중국 사람들은 호기심이 많다. 그러나 그 호기심은 뭔가를 적극적으로 해보려는 호기심이 아니다.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삶이 휘청댈 정도로 휘둘리는 일을 많이 겪은 사람들의 호기심이다. 토끼가 귀를 쫑긋대는 것과 같은 행위다. 그런 그들의 눈앞으로 짐을 잔뜩 매단 자전거가 지나간다. 반대로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길가에 앉아 있는 그들의 시선을 끌고 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들의 눈에서 토끼의 경계심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자전거의 힘이다. 자전거는 무력하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놓게 하는 힘이 있다. 내가 자전거로 여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전거 여행은 사회과학 특히 문화인류학에서 쓰는 방법론인 참여관찰의 간이 버전 정도의 자격은 있는 것 같다.--- p.219 「시안까지 3일 레이스에 모든 걸 걸다」

지금도 중화인민공화국이듯 중국의 국호가 중국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중국인들에게 개인과 대별되는 전체로서의 중국이 있어왔다. 그래서 춘추전국시대나 위진남북조, 오호십육국, 오대십국의, 한 번에 수백 년간 계속된 분열기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중국으로 돌아오곤 했다. 중국은 36개국이 있는 유럽 크기의 땅에 서로 철천지원수가 되기에 모자라지 않는 5000년 이상의 역사가 있고, 인종적으로도 남방인과 북방인은 그리스인과 스칸디나비아인만큼 달라 보인다. 그런데 내가 만난 모든 중국인들은 희한하게도 중국이 하나의 전체여야 한다는 사실에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14억분의 1로 대접받아도 14억 명이 이루는 전체에 강한 소속감을 느낀다.--- p.237 「호텔 직원 조회에서 만난 중국의 집체문화」

국國과 가家로 이뤄진 ‘국가’라는 한자가 시사적이다. 린위탕은 “중국엔 원래 나라와 가족밖에 없고 사회라는 관념이 없었다”고 말했다. 영어의 ‘society’를 번역한 일본식 한자인 사회社會는 수입했지만 시민의식public mind은 수입하지 않았다. 가족을 돌보거나 국가에 충성할 뿐이다. 이중톈易中天은 “서양이 그리스시대와 같은 도시국가시대를 거쳐온 것과 달리 중국은 씨족제도가 감쪽같이 국가제도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 중국에서 공안의 힘, 나아가 공산당의 일당지배가 수용되는 기저에는 이런 집단심리가 있다. 국민은 관광객이다. 서로 밀고 밀치고 올라가 경치를 한번 보고 떠날 뿐이지, 질서를 세우거나 바꾸는 주체라고 생각지 않는다.--- p.224 「일보일생一步一生 한 발 한 발의 분투」

중국의 통치자들은 백성들이 순한 양 같기를 바랐던 것 같다. 통치자의 언어였던 한자에서 양이 들어간 글자 중 부정적인 뜻은 별로 없다. 아름다울 미美, 착할 선善, 의로울 의義, 키울 양養…… 한자를 배우면서 양의 가치를 내면화한다. 관리들에게 수탈당해도 천하대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세상은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수치상으로 중국은 상하위 계층의 소득 격차가 미국보다 더 큰 나라가 됐다. 이 추세를 조사하려면 어려운 방법론을 고안할 필요 없이 여기 와서 시화위안과 제팡로 고가도로 밑을 보면 될 것 같다. 고급 음식점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는 동시에 고가도로를 지붕 삼아 눕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언젠가 경보가 울릴 것이다. 누워 있는 양들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p.282 「'양떼의 길’에서 농민공을 생각하다」

일부 중국학자들은 반反유대주의가 없었던 유일한 나라가 중국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더 무시무시하다. 정복자든 피정복자든, 상인이든 군인이든 중국에 들어가면 민족성을 잃어버린다. 그러니 반유대주의도 있을 수 없다. 모계 혈통의 이스라엘은 카이펑 유대인 후손들을 유대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 중국에서는 이것을 용광로와 같은 문화의 힘이라고 믿는다. 나는 인구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민족을 복속하는 데 통혼通婚 이상 좋은 방법이 없다. 결국 인구가 많은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그래도 전쟁보다는 낫다.--- p.288 「카이펑의 유대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다음날은 톈안먼 사태가 일어난 지 23주년이 되는 날이다. 광장은 이미 초여름의 강렬한 태양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지만 어떤 불온한 징조도 느껴지지 않는다. 제복을 입은 공안들이 관광객들 속에 섞여 있다. 하물며 본인이 돈을 낸 관광여행에서 가이드한테 이렇게 휘둘리고 뜯겨도 불평 한마디 공개적으로 하지 않는 어진 사람들인데 쉽게 끓어오르지 않을 것 같다. 개인이 아니라 일련번호 중 하나의 번호로 대접받는 데 익숙하고 권력에 대한 복종심이 거의 내면화돼 있다. 관광 가이드는 어쩌면 공산당의 다른 이름이고 관광객들은 14억 명의 인구 중에서도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져 있는 라오바이싱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p.321 「황당하고도 요상한 베이징 단체관광단 체험」

사람이 너무 많다. 너무 많아서 서로 믿기 어렵고, 너무 많아서 자유를 허용하면 혼란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이번 여행에서 만난 대학교수, 대학생, 농민, 상인, 노동자 등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정서다. 진짜 총선거를 실시하기에는 ‘런타이둬’라면 ‘알맞은 규모로 나라를 쪼개면 어떨까’ 싶다. 이렇게 물어볼 때마다 중국인들은 경기를 일으킨다. 천하통일이 되지 않으면 천하대란이 일어난다는 고래古來의 이분법을 여전히 믿고 있다. 이것이 혹시 일당독재가 받아들여지는 심리적 기저가 아닐까?
--- p.330 「위안스카이 옛 저택에서 역사의 평가를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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