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네가 스승들한테서 배우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지? 그리고 너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그들이 도저히 가르쳐 줄 수 없었던 것이 무엇이지? 바로 자아의 의미와 본질이었어. 나는 자아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어. 하지만 그럴 수 없었어. 단지 자아를 속이고 그것으로부터 도망쳤을 뿐이야. 정말이지 자아만큼 내가 몰두한 화두는 없었어. 내가 살아 있다는 수수께끼, 내가 모든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남다른 존재라는 이 수수께끼, 내가 싯다르타라고 하는 이 수수께끼만큼 나를 몰두하게 만든 것은 없었어. 그런데도 나는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나 자신, 싯다르타에 대해 가장 적게 알고 있어!”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은, 싯다르타가 내게 낯설고 생소해 보이는 것은, 오로지 한 가지 이유 때문이야. 내가 나 자신을 무서워하고, 나 자신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야! 나는 아트만을 추구했어. 그리고 브라만을 추구했어. 내 자아를 부수고 껍질을 벗겨 내 미지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아트만을, 생명을, 그 신성하고 궁극적인 것을 찾아내려고 했어. 그러나 바로 그러다가 나 자신을 잃어버렸어. 나는 나 자신한테서 배워서 나 자신의 제자가 될 것이며, 나는 나를, 싯다르타라는 비밀을 알아내겠어.”
사물의 본질과 의미는 사물의 배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들 속에, 아니 모든 것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싯다르타,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런 것이지요? 강물이란 어디서나 동시에 존재한다, 강의 원천에서나, 강어귀에서나, 폭포에서나, 나루터에서나, 시냇물의 여울에서나, 바다에서나 산에서나, 어디서나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고 강물에는 현재만이 있을 뿐 미래의 그림자는 없다는 것이지요?”
“바로 그렇습니다.” 싯다르타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배우게 되자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의 인생도 한 줄기 강물과 다름없더군요. 소년 싯다르타와 장년 싯다르타와 노년 싯다르타는 단지 그림자에 의해 분리되어 있을 뿐 현실에 의해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싯다르타의 전생도 결코 과거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싯다르타의 죽음이나 브라마에로의 복귀도 결코 미래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과거였던 것이나 미래에 있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현재입니다. 모든 것이 실재하는 현재입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가 흔히 겪는 일이지요. 다시 말해 그 사람의 눈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만 보기 때문에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게 되고, 아무것도 마음속에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것만 생각하고, 자신이 정한 목표에만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이지요. ‘추구’라는 말 자체가 이미 목표를 갖고 있다는 뜻이지요. 반면 ‘깨달음’은 자유롭게 열려 있는 상태, 목표가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보게 고빈다, 내가 얻은 생각들 중 하나는, 지혜란 남에게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야. 지혜는, 현인이라고 해도 그것을 전달하려고 하면 할수록 어리석은 소리가 되네.”
“자네 농담하는 건가?” 고빈다가 물었다.
“농담하는 게 아닐세. 내가 깨달은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걸세.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지혜는 전달할 수 없는 법이라네. 우리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고, 그것을 체험할 수도 있네. 그것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고, 그것으로 기적을 행할 수도 있네. 그러나 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가르칠 수는 없다네. 젊은 시절부터 나는 가끔 이러한 사실을 예감했고, 그 때문에 스승들을 떠난 거라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