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수는 안 누르십니까?”
“아, 네!”
귓불까지 빨개지는 인영을 물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민혁은 스스로에게 놀랐다. 무얼 찾는지 인영이 핸드백 속을 살피다 립스틱을 떨어뜨렸다. 립스틱은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굴러갔고 그것을 줍기 위해 인영이 허리를 숙였다.
탐스러운 엉덩이가 딱 붙은 스커트 밖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뒤트임이 있는 치마가 말려 올라갔고, 미끈한 다리와 허벅지가 안쪽까지 모두 노출되면서 민혁의 시야로 들어왔다. 순간, 위험한 욕망이 확 차올랐다. 그것은 은밀한 상상의 단계를 밟지도 않고 뜨거운 태양 아래 우발적 폭우처럼 그에게 들이닥쳤다.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이런 짜릿함이, 또한 이런 게 자신 안에 존재했다는 것이.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그녀가 사라지고 말, 열리는 문이 그 어느 순간보다 아쉬웠다.
아쉽다?
이건 또 무얼까.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런 위험한 충동에 빠진 적이 있었던가. 그의 인생에서 그런 감정들은 배제되고 금기되어야 할 사항이었다. 그것에 대한 불만이나 불편은 당연히 없었다.
그런데도 민혁은 손을 뻗으려 했다. 그리고 그것을 말아 쥐는 사이 다행히 그녀는 엘리베이터 밖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방으로 들어온 민혁은 창밖을 바라보고 섰다. 평소처럼 컴퓨터를 부팅할 수 없었다. 조금 전 충동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 그녀에게 자신에게만큼이나 화가 나는 것을 느꼈다. 또 그런 스스로에게 기가 찼다.
처음부터 그랬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도 이상한 충동에 휘말려 과하다 싶을 정도의 관심을 드러냈다. 영우도 “댁, 유민혁 맞소?”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민혁 역시 그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동안 고작 한 번 만난 인영에 대한 생각이 틈틈이 이어졌고, 오늘 다시 만난 그녀는 그를 주체하기 힘든 갈망으로 몰아갔다.
어쩌면 밀폐된 공간과 금욕이 가져온 극단적 현상일 수도.
창에서 돌아선 민혁은 평소처럼 재킷을 벗어 걸고 의자에 앉아 컴퓨터 전원을 켰다. 이미지를 생성하기 위해 움직이는 모니터에 인영의 미끈한 다리가 나타났다.
“이런, 젠장.”
민혁은 이미 뇌리에 각인되어 버린 그녀를 거부하듯 질근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