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의 눈으로 본 세상'이라는 부제가 달린 <떡갈나무 바라보기>는 우리 인간의 자연 세계에 대한 무지함과 오만함을 지적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동물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그들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함을 제안하고 있다. 주제가 다소 철학적이지만 소개되는 개미, 벌, 방울뱀, 두더지, 진드기, 거미, 달팽이, 집게, 재갈매기 등의 생태이야기를 따라 가보면 상당히 흥미롭고 쉽게 읽힌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의 큰 미덕이다.
--- 김효석 선생님
우리는 자주 실험 기구가 없거나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깊이 있는 과학 실험을 못한다는 푸념을 듣는다. 하지만 이 책은 정말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손쉽게 해 볼 수 있는 기발한 실험들로 가득 차 있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사뭇 귀찮은 책이다. 도무지 우리로 하여금 소파에 길게 누워 느긋하게 읽게 놔두질 않는다.
두 눈을 바삐 움직여 세상 구석구석을 뒤지게 하고, 손끝으로 무언가를 두드리게 하며, 머리로는 끝없이 상상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은근 슬쩍 동물행동학의 역사와 방법을 자연스레 가르쳐 준다. 동물의 행동을 자연 상태 그대로 관찰하고 실험해야 한다는 철학으로 근대 동물행동학의 기초를 확립하여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폰 프리슈, 로렌츠, 틴버겐의 연구들이 쉬우면서도 상당히 권위 있게 소개된다.
내가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 대학에서 전임강사를 하던 2년 동안 우리 가족은 보스턴 근교에 있는 작은 집을 임대하여 살았다. 집은 작았지만 아름드리 떡갈나무가 몇 그루씩 들어서 있는 뒤뜰은 제법 넓었다. 가을이면 떨어진 낙엽을 치우느라 허리가 휘청거렸지만 심심찮게 찾아오는 어치나 꾀꼬리 같은 새들과 다람쥐나 토끼 들을 보는 재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어느 여름날 저녁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시간이었다. 바람도 쐴 겸 뒤뜰을 거닐던 나는 떡갈나무 한 그루에 걸터앉아 있는 너구리를 발견했다. 너구리는 눈가에 검은 가면을 쓰고 그날 밤 우리 집을 털기라도 할 기세로 내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살폈다. 그러다가 나랑 눈이 마주쳤다. 너구리의 초록색 눈망울은 어둠 속에서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았다. 우린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너구리는 그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우리 뒤뜰로 찾아와서 나와 말없는 대화를 나누곤 했다. 나는 늘 그 너구리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멍하니 날 바라보기만 했던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내가 결코 멍하니 너구리를 쳐다보지 않았듯이.
아직까지 현대 과학은 우리에게 동물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들이 정확하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동물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은 할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노력의 산물이다. 아직은 답을 알지 못하는 그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쏟아 내며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보게 만든다. 왜? 어떻게? 무엇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떡갈나무에서 바라본 세상은 늘 신비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