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니 일을 해서 밥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만큼 어렵고 모호하며 협박조로 들리는 말은 없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여태껏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라는 뜻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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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위 사람과 거의 대화를 못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어릿광대짓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나의 마지막 구애였습니다.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인간을 도저히 단념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어릿광대짓이라는 한 가닥 실로 간신히 인간과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 p.15
인간에게 호소한다. 그런 수단에는 조금도 기대를 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에게 호소해도, 어머니에게 호소해도, 순경에게 호소해도, 정부에 호소해도 결국은 처세술에 능한 사람이 떠들어대는 말만 세상에 먹히기 마련이지 않을까.
틀림없이 편파적일 것이다. 어차피 인간에게 호소해봤자 소용없다. 역시 진실은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말고, 참으면서 그렇게 어릿광대짓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 p.25
세상. 나도 그럭저럭 그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았습니다. 개인과 개인의 싸움이고, 당장 그 자리의 싸움이며, 바로 그 자리에서 이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인간은 결코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노예조차 노예답게 비굴한 앙갚음을 하는 법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그 자리에서의 한판 승부에 의지하는 것 말고는 살아남을 뾰족한 수가 없다.
--- p.118
지금 내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내가 지금까지 지옥 같은 삶을 살아왔던 이른바 ‘인간’의 세계에서 다만 한 가지, 진리처럼 생각되는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 p.165
요조라는 주인공을 내세웠지만 그는 곧 다자이 오사무다. (……) 서사이면서도 과감한 생략과 재빠른 전개로 화자의 내면을 따라가다 어느 순간 화자가 곧 나인 듯 여겨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젊은 독자들은 이 점에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고뇌하는 청춘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 시도하다가 끝내 타협 없이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과정은 젊은 시절 누구나 한때 치렀던 통과의례처럼 낯익다.
--- pp.174-175, 작품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