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은 이방원의 쿠데타로 초라하고 비굴하게 죽는다. 그러나 그의 후예들은 끝까지 살아남아 기어이 정도전의 이상을 실현한다. 당연한 일이다. 군주는 물리적인 개체수로도 일방적인 열세지만 사대부는 계속 충원되며 그중에서도 기량이 뛰어난 자들이 조정을 점령하고 쉼 없이 군주를 압박하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를 통틀어 왕권이 강했던 시기는 태종과 세조 그리고 숙종과 군주는 아니지만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대원군 이하응 때가 전부다. 조선사를 군주의 이어달리기로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리학과 사대부의 나라가 조선이라는 나라의 실체인 것이다.
--- p.21~22
대청황제공덕비는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맞은 기록이지만 교훈으로 삼자, 뭐 이런 이유였겠다. 의문이 생긴다. 그럼 중앙청은 왜 날려버린 건데? 딴 데로 옮겨서 보전해도 되지 않았나? 근대 대표 건축물이라는 측면에서 함부로 허물 수 있는 만만한 건축물로 아니고 6·25전쟁 당시 9·28 서울 수복 후 태극기를 달며 조국의 소중함을 되새긴 역사적인 건물인데? 중국에게 맞은 것은 교훈이라 사적(史蹟)이고 일본에게 맞은 것은 치욕이라 적폐인가? 하여간 일관성이 없다. 일재 잔재 청산, 민족정기 세우기라는 명분으로 중앙청 폭파를 지시한 김영삼도 참 대단한 인물이고.
--- p.71
조선왕조실록도 어쨌거나 책이다. 모든 책에는 주인공이 있다. 그럼 조선왕조실록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을 주인공의 기준으로 할 때 조선왕조실록의 주인공은 단연 송시열이다. 그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무려 3천 번 가까이 언급된다. 원문에 2,559회, 국역에 2,847회다(한글 성명 입력의 경우). 중요한 건 살아생전이 아닌 죽어서도 이름이 9백 회 가까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서인, 노론의 영수였다지만 일개 선비이자 신료가 사후 220년이 지난 고종과 순종실록에도 나온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이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진 이유는 딱 하나다. 송시열, 그가 바로 조선이었기 때문이다. 송시열은 조선 성리학이 육화된 인물이었으며 그를 빼고는 조선 후기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조 때 태어나 4명의 임금을 섬기고 1689년 83세의 나이로 사망한 송시열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 p.87
임진, 병자 전쟁을 거치면서 조선의 신분질서는 뿌리부터 흔들린다. 왕은 왕답지 않았고 사대부는 사대부스럽지 못했던 처신이 불러온 결과였다. 여기에 농업 기술의 발달과 상공업의 발전이 가세하면서 위기는 심화된다. 부유한 평민과 가난한 양반은 굳건했던 사농공상의 질서에 들어온 빨간불이었다. 이때 조선 성리학이 이 신분질서를 사수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매달린 게 예학(禮學)이다. 예학, 어렵게 말하면 한없이 어렵지만 쉽게 말하자면 삼강오륜의 재확립이라 봐도 별로 틀리지 않겠다.
--- p.94
우리는 향후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안다. 전지적(全知的) 후대인의 시점에서 앞선 이들의 행적을 평가하는 것은 후대에 태어난 자들의 오만이다. 앞 장에 이어 다시 복거일의 글을 인용한다. “이승만이 한 일도 위대하지만, 하지 않은 일도 위대하다. 무엇보다도, 이승만은 북한에 항복하지 않았다. 침공한 북한군은 막강하고 우리는 싸울 힘이 없었다. 어차피 지는 전쟁이라면, 빨리 항복해서 피해를 줄이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실은 항복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6월 25일 밤이었다. 미국의 지원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패전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항복 대신 결전을 택했다. 정보가 부족하고 서로 엇갈리는 정보가 올라오는 상황에서도 그는 원칙을 지켰고, 위기를 관리했고, UN군의 참전을 이끌어내 대한민국을 살렸다.”
--- p.136
좌파 상업단체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택적 선별력’이 있다는 점도 분석 사항이다. 대한민국의 가장 나쁜 점과 북한의 가장 좋은 점을 억지로 골라내어 이를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이는 데는 이들만큼 전문성을 갖춘 집단이 없다. 대한민국은 잘못을 지적하면 돈을 내는 사람이 있고, 북한은 아무리 잘못을 지적해 봐야 돈을 내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생각은 좌파처럼 생활은 우파처럼(thinking left living right)’ 영위하는 사람들과 주체사상이라는 사이비 종교의 포로가 된 자들은 어떤 경우든 북한 인권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 p.179
할리우드에는 좌파가 많고 메이저리그에는 우파가 많다. 사실인가? 사실이다. 왜? 예술과 스포츠가 갖는 속성 때문이다. 이 둘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적 쌍생아다. 둘 다, 인간이 먹고사는 문제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활동이지만, 현대 사회의 주요한 제도 가운데 하나로 산업화에 성공했다. 재능이 뛰어난 개인이 부와 명예를 독점하는 승자독식구조(winner take all)라는 점도 같다. 궁극적으로는 대중들이 판관 역할을 수행하는 ‘대중 의사 결정 시장’이라는 점도 동일하다. ‘뛰어난 개인’이라는 것도, 바로 아랫단계의 재능과 비교하면 아주 미세한 차이를 보일 뿐이지만, 이 ‘아주 미세한 차이’에 거액을 지불하는 고객이 존재한다는 점에서도 예술과 스포츠는 서로 닮았다. 하지만 승자가 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 이 둘을 좌우로 가른다.
--- p.231~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