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 끝날 무렵에 누구나 물어오는 말이 있다.
「결혼 예정은 없습니까? 혹 독신주의자는 아니신지요?」
둘 다 아니올시다이다. 당분간 결혼할 예정도 없고 독신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 당분간은 그런 질문 좀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혼여성에게 으레 결혼했느냐고 묻는 것은 한국 사람의 독특한 습성인 것 같다. 영어권에서야 호칭 앞에 붙는 미스와 미세스로 쉽게 구별이 되니까 물을 필요가 없기도 하겠지만, 서양에서는 특별히 여자에게 애정을 갖고 사귈 마음이 있어서 미혼인지 기혼인지를 확인하기 전에는 결혼 여부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런 분위기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꼭 알아야 할 사항인 것처럼 결혼했느냐고 묻는 사람들을 보면 좀 이상한 생각이 든다.
아주 친한 사이도 아니고, 내게 프로포즈할 것도 아닌데 내가 기혼이든 미혼이든 무슨 상관이람. 요즘은 우리나라도 여성의 사회 진출이 꽤 높아지고 사회적 지위도 향상되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중략>
서른이 넘어서도 이십대 초반과 똑같은 열정으로 음악을 한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어느 정도의 성공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이십대 초반에 여자들은 사랑과 일 사이에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왔다갔다 하게 된다. 눈앞에 닥친 일에 대해서는 남자들보다 더 성실해서 남녀공학의 경우 남자들보다 공부 잘하는 여자들도 얼마든지 있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이면 대충 어느 쪽인지 결정이 난다. 그때 적당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서 계속 연주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열의가 없다. 남자만 생기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서른이 될 떄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일을 계속하고 있거나, 결혼을 했더라도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면, 그녀는 누구의 아내가 아닌 자기의 이름으로 살아갈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 p. 47~
프랑스적인 음악이 열정적인 스페인 음악과 어울리고 화려한 춤과 퍼사 하나하나가 모두 빈틈없이 아름답다. 주인공 카르멘의 똑소리는 어두운 메조 소프라노여야 한다. 관능적인 연기와 함께 플라킹고 춤까지 추어야 하기 때문에 카르멘은 누구에게나 상당히 힝든 역이다. 그래서인지 <카르멘>을 볼 때만은 까다롭펀 비평가도 조금 머리를 숙인다. 가끔 실수가 있어도 말이다. 음악에 빠져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비평가로 음악을 듣는다는건 유쾌한 일이 아니다.
아마 음악분야 뿐만 아니라 모든 전문가의 고충이 아닐까 싶다. 보통의 독자라면 이만한 소설이나 시에도 쉽게 감동을 받겠지만 시인이나 소설가가 다른 사람의 작품을 잃는다면구성이써 주제를 따지게 될 게 분명하다.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다는 건 감동이 적어지고 그대신 깊어지는 게 아닐까. 웬만한 작품에는 쉽게 빠져들 수 없지만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는 그 감동을 감히 말조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이다.
--- p.11
-천상의 목소리가 만들어지기까지
성악가에겐 몸이 바로 피아노나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이다. 당연히 악기의 상태에 따라 소리가 다를 수밖에 없다. 최상의 건강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첫번째 조건이다.
-차마 버릴 수 없는 것들
무대에서 입기에 너무 낡은 옷이라고 생각한 다음부터는 집에서 평상복으로 입고 있다. 그러니까 올해로 꼭 12년짼가 보다. 그 세월만큼 손때가 묻어서 그런지 꽃무늬는 지워졌지만 좀처럼 버려지지가 않는다.
-선택한 길과 가지 않은 길
자신감이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어린 시절부터 자기 재능에 대한 확신과 주변의 인정을 받았을 때 형성된다. 한번 확고해진 자신감은 웬만한 실패에도 무너지지 않지만 그 대신 자신감을 굳히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 pp.227. 229. 285.
창 밖엔 여린 봄비가 촉촉히 내릴 때, 가족끼리 둘러앉아 먹던 그 부침개가 얼마나 맛있던지, 아무도 없는 호텔방에 틀어박혀 그 생각을 하면 내 마음에도 비가 내렸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구절이 기억난다. 아마 엄마가 부쳐준 책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일년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내 주소로 틈만 나면 책을 보내준다.
--- p.156
어느정도 실력이 향상되면 그때는 경쟁자가 사라진다. 대개는 경쟁자가 사라지는 순간 발전을 멈춘다. 주변을 둘러봐도 경쟁할 사람이 없으니 눌러앉게 되는것이다.자기가 서있는 자리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착각속이서 말이다. 그러나 세계는 넓고 까마득하게 높은 봉우리들도 무수히 많다.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사람들의 시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먼곳의 높은 봉우리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어딘가에 더 높은 봉우리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 옆에서는 보이지 않을때,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들여다 보게 된다.자기안에서 발전의 원동력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제 경쟁자는 밖에 있지 않고 내안에 있다.
--- p.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