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복을 입은 남자―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나는 그가 안토니오 코레아라고 확신하게 되었다―의 늠름한 자태와 그를 그린 루벤스의 행적, 그리고 전문가들이 그림 속의 남자는 조선 중기 경기도 서해안 지방 사람 같다는 고증을 기반으로 안토니오 코레아를 조선을 대표하는 개성상인의 후예로, 그의 활동무대를 당시 유럽 세계를 대표하는 상업도시 베니스로 설정하고 그림 속의 ‘한복을 입은 남자’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에 몰두했다. --- p.6, ‘작가의 말’ 중에서
안토니오는 고향생각이 날 때면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하늘을 보면 그리운 얼굴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명이……. 무역선들은 돛 끝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져 갔다.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배들과 함께, 안토니오의 기억도 9년 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 p.21, ‘안토니오 코레아’ 중에서
칠천량 해전에서 왜군에게 포로가 된 조선 수군들은 대마도로 호송되었다. 대마도에는 이미 포로로 잡혀온 조선인들이 많이 있었다. 그곳에서 포로들은 다시 배에 실려 이키[壹岐] 섬을 거쳐 하카타[博多, 후쿠오카]로 이송되었고, 하카타에서 일부 포로들이 내리고 나머지는 다시 사쓰마[薩摩, 가고시마]로 보내졌다. --- p.43, ‘사라미’ 중에서
승업은 사카이에서 담 대인을 따라 일단 나가사키로 갔다. 그곳에서 담 대인의 배에 동승하여, 명나라로 가는 이탈리아인 카를레티 부자(父子)의 노예로 따라가는 형식을 취해 무사히 일본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승업과 함께 카를레티 부자의 노예로 일본 땅을 떠나게 된 조선 사람은 4명이 더 있었다. 사실상 승업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담 대인은 일단 명에 도착한 후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주선해 주겠다고 했다. --- p.146, ‘신앙의 신비여’ 중에서
자신과 이름이 같고 또 고향도 비슷한 사람. 그리고 자신의 집안이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데 비해서, 민족의 수난인 임진왜란 때문에 고향을 떠나 먼 이탈리아까지 가야만 했던 안토니오 코레아.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이상했다. 한복을 입고 있는 그 남자의 잔잔하면서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유명훈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 p.259, ‘또 하나의 안토니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