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4명 중 1명은 65세 이상 노인이다. 추계대로면 2055년엔 거의 둘 중 하나(41퍼센트)가 노인인구다. 세계 최초의 ‘초고령사회’답다. 작년부터 전후 베이비부머인 1947~49년생이 65세를 맞아 정년은퇴에 가세해 노인 몸집은 한층 불어났다. 누가 봐도 확실한 고령국가다. 이런 인구변화는 자원배분의 물꼬를 바꿀 수 있다. 소비자의 갈증을 풀고 눈높이에 맞춘 재화, 서비스만이 생존한다는 점에서 경제지도의 판세교체까지 예상된다.
(중략)
위기는 기회를 낳았다. 요즘 일본 재계는 실버, 시니어, 고령자로 불리는 노인인구의 눈높이에 맞추고자 열심이다. 오류 시정과 전략 수정에 신중하다. 철저한 수요 분석의 결과다. 가령 노인고객의 소비행태는 자산보유와 무관한 소득비례라는 깨우침이 그렇다. 쟁여둔 돈보다 가처분소득이 결정적임을 배웠다. 소비방법이 동질적일 것이란 전망도 수정됐다. 노인고객 내부에서의 이질적인 소비트렌드가 목격돼서다. 즉 단순연령이 아닌 신체변화의 주목이다. 결국 실버 시장은 대분류로 나눌 범용마켓이 아닌 새로운 가치관이 체화된 다양한 미시시장의 집합체로 규정된다.
배웠으니 써먹을 때다. 최근 주요언론에 부쩍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시니어 시프트(Senior Shift)’다. 무게중심을 노인고객에게 맞춰 가중치를 옮겨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미래시장의 주인공이 누군지 인구변화로 확인했으니 기업전략도 여기에 맞춰 전환하겠다는 움직임이다. 대상은 광범위하다. 대표적인 게 편의점의 변신이다. 그간 청장년고객에 맞췄던 포인트를 점차 고령손님에게 옮기는 추세다. 진열전략을 바꾸고 노인 입맛에 맞춘 상품과 서비스를 대거 확충했다. 백화점, 할인점은 전담직원을 배치했고 게임센터, 테마파크는 노인 우대에 나섰다. ---pp. 7-11
종이기저귀 시장의 전환
우리 생활 속에서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수많은 ‘상식’이 뒤집히고 있다.
예를 들어 ‘종이기저귀’는 아기들이 쓰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유아용 종이기저귀 시장은 2011년 대략 1400억 엔 규모였다. 반면 성인용 종이기저귀 시장은 1600억 엔 규모에 달하여 마침내 유아용 종이기저귀 시장을 역전했을 뿐만 아니라, 2012년에는 1700억 엔을 넘어서는 등 매년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에서 1960년대에 생산을 시작한 종이기저귀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980년대였다. 하지만 천기저귀에서 종이기저귀로의 전환이 정착되자 이제는 핵가족화와 출산율 감소의 영향으로 시장 성장은 둔화되었고, 1995년부터는 매출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반면 성인용 종이기저귀는 최근 몇 년 사이 시장 전체가 연간 5퍼센트 내외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최대의 종이기저귀 제조사인 유니참은 성인용 종이기저귀 매출이 두 자릿수 성장세를 지속하자 2013년 생산량을 전년 대비 20퍼센트 이상 늘리기도 했다. ---pp. 27-28
‘할머니’가 등장한 리카 인형
일본의 ‘리카 인형’은 여자아이들의 소꿉장난 필수 아이템으로 유명하다. 1967년 발매 이후, 누계 출하수가 5000만 개가 넘는 스테디셀러 상품이다. 긴 세월 동안 리카 인형은 초등학교 5학년인 가야마 리카를 중심으로 아빠, 엄마, 언니, 여동생, 남동생, 사촌, 애완동물로 구성된 전형적인 핵가족이었다.
그런데 2101년 4월, 이 리카 가족에 ‘할머니’가 등장했다. 할머니 가야마 요코는 카페 겸 꽃집 주인으로 연령은 56세. 할머니의 연령을 56세로 설정한 이유는 리카 인형을 처음 발매한 1967년 당시 주요 타깃이었던 11세 소녀가 2012년에 56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맞벌이 세대의 증가로 외할머니가 손자를 돌보는 경우가 늘자, 리카 시리즈의 구매자들이 제작사인 다카라토미에 “손녀와 놀 때 내 역할을 맡을 할머니 인형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고 한다. ---pp. 28-29
대형 마트는 원래 상품의 다양성을 강조하기 위해 매장이 넓은 대형 점포에서 사업을 펼쳐왔다. 풍부한 상품 종류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기 위해 점포 규모를 서서히 키워나갔고, 토지 비용을 낮추기 위해 교외의 도로변에 점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교외의 대형 점포는 시니어가 찾아가기 어려운 장소다. 나이가 들수록 운전을 멀리하게 되고, 허리와 다리가 쇠약해지면서 행동반경이 자택을 중심으로 좁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넓은 점포에서 원하는 상품을 찾으려면 일일이 먼 거리를 걸어야 하므로 금세 지친다. 그렇게 되면 점포가 넓은 대형 마트에 쇼핑하러 가는 일이 귀찮아진다. 또한 사고 싶은 물건이 손에 닿지 않는 높은 선반에 있거나, 가격이나 상품 설명 글씨가 너무 작아 읽기 어려우면 물건을 사려고 마트를 찾았음에도 실제로는 구입하지 않아 기회손실 비용도 커진다. 고령화의 진전과 함께 시니어 고객이 서서히 대형 마트에서 등을 돌린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반성을 밑거름으로 각 대형 마트에서는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니어 시프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시니어 고객들이 좋아하는 매장, 상품, 서비스 개발 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고민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각 점포에서는 휠체어가 충분히 통과하고도 남는 넓은 통로, 보행이 어려운 사람도 쉽게 탈 수 있는 느린 에스컬레이터, 도중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의자를 설치했다. 또한 큰 글씨로 가격을 쉽게 알아보도록 했고, 원하는 상품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빼기 쉬운 선반을 도입했다.
---pp. 4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