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아이의 경우에는 아이가 장애 진단을 받는 순간, 장애라는 고정 관념과 편견에 갇힌다. ‘장애인은 평생 남의 돌봄을 받아야 한다’, ‘장애인은 무능력하다’, ‘장애아는 이상하다’와 같은 생각은 우리가 특별한 아이에 대해 가지는 흔한 고정 관념과 편견 중 하나이다. 특별한 아이를 가까이 접하지 못한 사람은 물론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교사나 부모도 특별한 아이에 대한 고정 관념과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런 고정 관념과 편견은 특별한 아이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 또 다른 장해가 된다. …… 특별한 아이의 행동에는 장애 특성으로 인한 ‘특수성’도 있지만 모든 사람이 가지는 ‘보편성’도 있다. 특별한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수성과 보편성을 모두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이가 가지고 있는 보편성보다는 장애라는 특수성을 먼저 바라본다. ‘자폐 성향을 가진 아이는 사회성이 없다’와 같은 특수성이라는 안경을 통하여 아이를 바라보면 아이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즉 김은실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폐아 김은실, 지적 장애 김은실이 보일 뿐이다. --- pp.17-18
부정적인 자기 진술을 긍정적인 자기 진술로 바꾸어 부모와 분리되는 두려움을 극복한 사례가 있었다. 현수는 부모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 해서 아무 곳도 가지 못했다. 그래서 교실에서 어머니와 함께 수업을 받았고 화장실도 어머니와 같이 갔다. 그런데 어느 날 현수가 혼자 상담실을 들어왔다. 놀라서 현수를 바라보았는데, 현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무언가 중얼거렸다. 자세히 들어보니 “나는 참을 수 있어”, “이곳은 위험한 곳이 아니야”, “엄마는 밖에서 기다리고 계셔”라고 중얼거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상담실에 오기 전날 밤에 어머니가 아이에게 연습을 시킨 것이다. 물론 어머니는 자신의 행동이 이론적으로 긍정적인 자기 진술법이라는 심리 치료의 한 방법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지만 아이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준 것이다. --- p.113
이런 선주의 행동은 선택적 함묵증(selective mutism)이라고 불린다. 선택적 함묵증은 가족이나 친한 친구 등 특정한 대상에게는 말을 하지만 특정 대상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기질, 불안, 심리적 손상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이들의 마음에는 타인에게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즉 ‘다른 사람에게 나의 생각을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비난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놀릴 수도 있다’, ‘나는 말하지 않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라는 생각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다. 선주의 마음에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 p.165
아이의 애착 유형이나 애착 정도는 아이가 보이는 행동을 통해 알 수 있다. 주 양육자, 즉 어머니와 떨어질 때 보이는 행동이나 어머니에게 평소에 하는 행동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아이의 애착을 알 수 있다. 에인스워스(Ainsworth)라는 학자는 낯선 상황에서 아이가 보이는 행동으로 애착을 ‘안정 애착’과 ‘불안정 애착’으로 구분하였다. 안정 애착은 아이의 적응에 도움이 되는 애착 유형으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안정 애착을 형성한다. …… 불안정-저항 애착의 아이는 전체의 10%정도를 차지하는데, 낯선 상황에서 어머니와 분리되는 것에 대해 강하게 저항한다. 그래서 어머니와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어머니가 옆에 있어도 낯선 사람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 …… 불안정-회피 애착의 아이는 낯선 상황에서 어머니를 안전기지로 사용하지 못하고 어머니와 분리되어도 별로 어머니를 찾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사람 대신에 사물에 관심이 더 많아서 사물에 의지하고, 어머니와의 분리로 인해 생기는 슬픔을 숨긴다. --- pp.234-236
한번 정해진 규칙을 고수하려는 것은 아스퍼거 증후군만의 특성일까? 그렇지 않다. 일반인들도 일단 사람이나 사물, 사건에 대해 규정을 내리면 그 틀로부터 잘 벗어나지 못한다. 틀은 우리의 이전 경험에 의해 형성되고 잘 바뀌지 않는다. 설사 자신이 가지고 있는 틀과 다른 경험을 하더라도 우리는 예외라는 것을 만들어 자신의 틀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 이와 같은 현상을 실험을 통해 밝혀낸 학자가 있었다. 그는 5세, 7세, 10세의 아이들에게 받아쓰기를 하도록 하고, 종이, 칼, 자, 고무, 빵이 들어있는 상자를 준 다음 상자의 물건을 이용하여 잘 못 쓴 글자를 수정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러자 대부분의 10세 아이들은 지우개가 없어서 지울 수 없다며 지우는 것을 포기하였다. 그러나 5세 아이들은 고무나 빵과 같은 다양한 물건들로 글자를 지우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처럼 우리는 수많은 틀로 세상의 많은 사건과 상황,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다만 그 틀이 많거나 적고, 견고하거나 유연한 사람이 있을 뿐 누구나 틀은 가지고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틀이 좀 더 견고할 뿐이다. 그들의 행동이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더라도 그 행동이 가진 장점을 생각해 본다면 그들의 행동이 훨씬 이해가 잘 될 것이다. --- pp.252-253
ADHD는 그들의 기질적인 특성 때문에 타인에게 비난이나 야단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로 인해 내면에 화나 분노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ADHD는 적대적 반항장애를 비롯해 청소년기에는 비행이나 학교 부적응, 품행 장애와 같은 문제들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모든 ADHD가 적대적이고 폭력적이며 반항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내면에 화나 분노감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에만 적대적이고 폭력적이며 반항적인 행동을 한다. 필자는 ADHD를 가진 아이의 부모에게 “ADHD는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선택할 수 있을 때가 되면 사라진다. 하지만 그 때가 되었을 때 아이의 마음에 다른 사람이나 자신에 대한 화나 분노가 있다면, 아이는 계속 ADHD에 사로 잡혀 살아야 한다”라는 조언을 해 주곤 한다. ADHD는 하나의 증상이다. 증상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거나 환경이 바뀌면 사라진다. 하지만 ADHD로 인해 아이의 내면에 자신을 무능하게 생각하고 타인에게 화와 분노를 가지고 있다면, 그 부정적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아이의 삶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 pp.283-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