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미야가는 에도시대부터 내려온 전통 있는 대필가 집안이다. 옛날에는 서사(書士)라고 했던 직업으로 지체 높은 사람이나 영주님의 대필을 생업으로 해온 것 같다. 당연하지만 달필이 첫 번째 조건으로, 예전에는 가마쿠라 막부에도 세 명의 우수한 서사가 존재했다. 에도시대에는 영주님의 성에서 일하는 여자 서사가 탄생했다고 한다. 그 성에서 일했던 서사 중 한 사람이 아메미야가의 선조다. 그 후 아메미야가는 가업으로 여성이 대대로 대필을 이어왔다. 십 대째가 선대이고, 그 뒤를 이어받아 어쩌다 보니 내가 십일 대째가 됐다. 참고로 선대란 혈연관계로 보면 내 할머니다. 하지만 할머니라고 제대로 부른 적은 한 번도 없다.
--- p.12~13
선대는 자신의 도구에 절대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붓으로 겨드랑이를 간질이며 놀다가 들킨 날에는 바로 창고에 가두었다. 때로는 밥을 주지 않은 적도 있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안 된다고 주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가까이 가고 싶고, 만지고 싶은 마음이 마구 솟구쳤다. 그중에서 내 마음을 노예로 삼은 것이 먹이었다. 그 검은 덩어리를 입에 넣으면 어떤 맛이 날까. 아마 초콜릿보다도, 사탕보다도 더 근사한 맛이 날 게 분명해. 나는 확신에 차서 그렇게 생각했다. 선대가 먹을 갈 때 흘러나오는 그 은은한,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향이 미치도록 좋았다.
--- p.21
글씨가 마음대로 써지지 않았다. 생각한 대로 글씨가 매끄럽게 써질 때도 있고, 백 장을 써도 이백 장을 써도 도저히 감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요컨대 글씨를 쓰는 행위는 생리 현상과 같다. 자신의 의지로 아무리 예쁘게 쓰려고 해도, 흐트러질 때는 어떻게 해도 흐트러진다. 몸부림치고 뒹굴며 아무리 칠전팔기를 해도 써지지 않을 때는 쓸 수 없다. 그것이 글씨라는 괴물이다. 그때, 문득 귓가에 선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글씨는 몸으로 쓰는 거야. 확실히 나는 머리만으로 쓰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 p.147~148
“내가 말이지, 포포한테 한 가지 좋은 것 가르쳐줄게.” 바바라 부인이 말했다. “뭐예요, 좋은 게?” “내가 줄곧 외워온 행복해지는 주문.” 바바라 부인이 후후후 웃었다. “가르쳐주세요.” “있지, 마음속으로 반짝반짝, 이라고 하는 거야. 눈을 감고 반짝반짝, 반짝반짝, 그것만 하면 돼. 그러면 말이지, 마음의 어둠 속에 점점 별이 늘어나서 예쁜 별하늘이 펼쳐져.” “반짝반짝, 이라고 하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응, 간단하지? 어디서나 할 수 있고. 이걸 하면 말이지, 괴로운 일도 슬픈 일도 전부 예쁜 별하늘로 사라져. 지금 바로 해봐.” 바바라 부인이 그렇게 말해주어서 나는 그녀에게 팔을 맡긴 채 눈을 감고 천천히 걸었다. 반짝반짝, 반짝반짝, 반짝반짝, 반짝반짝.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던 마음속 어둠에 별이 늘어나서 마지막에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 p.156~157
그때, 내 속에서 꼬물꼬물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혹시 화장실에 가고 싶은 건가,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무언가가 움직이는 곳은 내 뱃속이 아니라 마음속이었다. 마치 작은 씨에서 보드라운 싹이 터서 기지개를 켜듯이 희미하게 내 마음의 벽을 밀어 올렸다. 미미한 징조는 이윽고 또렷한 태동으로 바뀌었다. 나오지 못해서 줄곧 괴로워하던 그것이 지금 이곳에 와서 갑자기 출구를 찾았다. 쓰고 싶다. 꺼내주어야 해. 지금 당장 여기서. 갑자기 산통을 느끼는 기분이었다. 쇼타로 씨의 아버지 글씨가 내 손가락 끝에서 쏟아질 듯 몸부림쳤다. 그것은 그야말로 진통 같았다. 이 징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일 초라도 빨리 펜을 잡고 싶었다. 황급히 배낭을 열었다. 그런데 하필 필기도구를 갖고 오지 않았다. 꼭 이럴 때 이 무슨 어리석은 짓인가. 이것은 대필가로서 실격이다. 그러나 반성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지금은 어쨌든 쓰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 p.20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