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는 열두 시가 넘으면 마법이 풀렸나?”
“음, 그랬었지?”
“……넌 왜 걔가 열두 시 전에 죽자 살자 도망갔는지 알아?”
“마법이 풀리니까?”
“마법이 풀리는데 왜 도망을 가게? 그건 걔가 여자이기 때문이야. 여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한테 추한 모습 보이는 거 죽기보다 싫어하거든. 맨날 재투성이에 허름했던 애가, 운빨이 좀 돼서 예쁜 옷 입고, 유리구두 신고……. 얼마나 들떴겠어? 게다가 왕자랑 춤도 추고 눈도 맞고! 꿈같았을 거야. 행복했겠지.”
“…….”
“근데 결국 걔도 깨달아. 그 꿈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거. 그래서 열두 시 되기 전에 도망친 거야. 왕자한테 자기 추한 모습 보이는 게 싫어서. 외모에 자신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그냥 그런 거야. 여자마음이.”
주원과 함께했던 3년이, 신데렐라가 왕자와 춤을 추었던 단 몇 분과도 같을지 모른다고 그녀는 순간 부질없는 생각을 해버렸다. 그녀는 억지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동화에서는 그렇게 걔가 도망치고, 다음 날 왕자가 유리구두 들고 짜잔, 나타나서 인생 역전하는 걸로 끝나지? 근데 말이야, 왕자가 찾아오기 전에, 그러니까 그 날 새벽에 신데렐라는 말이야.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 밤을 버텼을까?”
동화 속에서는 아무도 그런 신데렐라의 모습을 비추어 주지 않았다. 다들 무도회에서 춤추고, 왕자가 주는 유리구두를 신은 그녀의 모습만 알고 있지 기실 신데렐라가 왕자를 만나기 전까지 어떤 마음이었을지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다. 그 마음이 윤서는 너무나 궁금했다. 왜냐하면, 지금 그녀의 심정이 딱 그 동화 속 주인공과 흡사한 것 같았으니까.
“열두 시 좀 넘어서 집에 돌아갔겠지? 그때는 정신없었을 거야. 자기가 무도회에 갔다는 게 믿기지도 않았을 거고. 설레고, 왕자한테 반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그 날 새벽은 꼴딱 새웠을 거야. 설레서 잠이 왔겠어? 한, 새벽 한 시 쯤 까지는 그렇게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겠지. ……근데 있잖아, 새벽 두 시 쯤 부터는 어땠을까?”
술기운이 무겁게 그녀의 어깨와 머리를 짓눌러왔다. 하지만 그녀는 말을 멈추지 않았고, 앞에 앉은 성민은 그녀가 나직히 중얼거리듯 내뱉은 말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주의 깊게 들어주고 있었다.
“……그때도 그렇게 설레기만 했을까?”
윤서는 피식 웃었다. 그건 신데렐라가 아닌 자신을 향한 비웃음이었다.
“아니. 진짜 그때부터 비참한 게 시작되는 거지. 점점 실감이 나면서, 왕자랑 춤췄을 때와 지금 자기 모습을 비교하기 시작했을 거야. 그리고 자기가 얼마나 볼품없는 사람인지 뼈저리게 깨닫는 거지. 누더기 옷차림에,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하고. 계모가 내준 허름한 창고 방에서 웅크리고 자는 자기 신세가 얼마나 비참하고 초라해 보였을까. 이미 왕자는 좋아해 버렸는데, 그 왕자랑 자기가 너무 다르다는 걸 깨닫고 얼마나 좌절했을까. 두 번 다시는 왕자랑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하룻밤의 마법으로 얻은 행운이 아마 그 새벽엔 끔찍한 악운이었을 거야. 자기가 얼마나 초라한지를 깨닫는, 지독하게 잔인한 마법.”
“…….”
“……신데렐라는 그래도 원래 부잣집 딸이었긴 했지, 난 아니잖아.”
그나마 신데렐라는 원래 귀족이긴 했다. 그러니 왕자랑 결혼해서도 말 그대로 잘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신데렐라는 정작 새벽 두 시쯤부터 왕자가 찾아오기 전까지만 지옥을 경험했겠으나, 윤서에게는 주원과 함께하는 평생이 어쩜 그 이상으로 괴로울지 몰랐다.
“난 해봤자 새벽 두 시의 신데렐라밖엔 안 되니까…….”
왕자와의 차이를 깨닫고 괴로워하는, 가장 초라할 때의 신데렐라. 자신은 딱 그것밖엔 못 된다고 말하며 자조하는 윤서를 성민은 가만히 앉은 채로 내려다보았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