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아버지가 일어나셨다. 그 오랜 행패 속에서도 조용하던 아버지가 그날만큼은 외삼촌에게 다가오더니 한마디 하셨다.
“네가 이 장롱 때문에 마음이 많이 불편한가 보구나. 그럼 이걸 우리 부숴버리자.”
그러고선 밖으로 나가시는 것이다. 나지막하고도 무서운 한마디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지켜보니 아버지가 마당에서 도끼를 질질 끌고 들어오시는 거다. 우리를 비롯하여 외삼촌도 놀라 눈만 휘둥그레 뜨고 있는데, 아버지는 머뭇거리지도 않고 도끼를 번쩍 들어서는 새로 산 장롱 문짝을 사정없이 찍어 내려쳐 버리셨다.
--- 「집안마다 천덕꾸러기 한 명 쯤은 있는 법, 작은아버지와 외삼촌」 중에서
조그마한 인화는 큰어머니가 들락거리던 따뜻한 주방 곁에 몸을 녹이고 있는데, 손을 씻기 위해 들어온 아버지가 식사를 준비하던 어머니와 장난을 치시다 갑자기 어머니의 귀를 잘근잘근 깨물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수줍은 웃음을 터뜨리시고, 아버지가 흐뭇해하시며 밖으로 나가는데, 인화는 구석에서 어른들의 그런 모습을 목격하고 어린 마음에 기분이 얼마나 야릇했는지 모른단다. 인화 말로는 큰아버지가 저를 너무 어린 꼬마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신 것 같은데 보는 꼬마는 얼마나 설렜는지 나이가 든 지금까지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하여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 「부부, 애정행각의 모범을 보이다」 중에서
쌀자루도 있고 어머니랑 큰어머니랑 매일 저녁 동태국이며 배추전이며 소소한 요리를 해 먹으며 여자들끼리 도란도란 수다 삼매경에 빠졌으니 내가 생각해도 불행했다고 말할 날들은 아니었다. 그땐 심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웃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소소한 갈등일지라도 두 분이 보내온 가난한 세월들을 빤히 아는 나는 사실 웃음을 짓다가도 금세 표정을 가다듬게 된다. 나도 어머니 마음처럼 행복한 마음 한구석 숨겨둔 서러움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화가로 우뚝 섰는데, 두 분은 그것을 누리지도 못하고 너무 가난한 젊은 날을 보내다 가셨다.
--- 「어머니도 가출을 한다」 중에서
아버지는 이런 와중에도 술을 끊지 못하셨다. 지속되는 간의 통증을 버티며 한쪽 눈으로 꾸준히 그림을 그리셨고, 오후에는 외출하신 후 술을 잔뜩 먹고 들어오셨다. 병원에서도 술을 끊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듣지 않았다. 그러다 큰일 난다며 모두가 말려도 소용없었다. 감정의 기복 없이 담대한 모습은 예전이나 그때나 다름없었지만, 그 무렵 아버지의 모습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꿋꿋하다기보다는 모든 걸 체념하거나 혹은 초연한 사람 같았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속으로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계실까. 술을 마시면서 또 얼마나 많은 슬픔을 잊어내셨을까.
--- 「병마는 떠날 줄을 모르고」 중에서
나는 당시 대학 생활을 즐기느라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집에 있을 때면 아버지가 일부러 나를 불러 시키는 것이 있었다. 붓 빠는 일처럼 평범한 심부름이 아닌, 이를 쑤셔달라는 특이한 부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일부러 나를 콕 찍어 부탁한 것이, 꼭 내가 해줬으면 싶어 나를 부른 것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는 “인숙아, 이리 들어와 봐라,” 하고 방바닥에 누우신 다음 입을 크게 벌리고 안쪽 어금니 사이에 뭐가 낀 것 같으니 잘 좀 파보라고 하신다. 나는 이쑤시개를 들고 아버지의 커다란 입을 들여다보며 아버지가 가리키는 곳을 살살 긁어드렸다.
--- 「그저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