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인류의 재앙 직후였다. 시선을 붙잡는 물체의 높이는 족히 몇 백 미터는 됨직했다. 고공에 거뭇거뭇한 물체가 낙엽처럼 날리고 있었다. 그것은 기우뚱 흔들리나 싶더니 어느새 꼬물꼬물 살아 움직이는 듯 파드득거렸다. 이내 그와 비슷한 낙엽들이 바람에 날리듯 우수수 휩쓸려왔다. 마치 그것들은 물살에 떠밀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실제로 그것들은 물에 떠밀리고 있었다. 하늘 위 수 킬로미터 높이의 상공이 거대한 수족관의 표면처럼 일렁였다. 세상은 하늘빛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하고 맑은 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수많은 사체와 부서진 배의 조각들이 수족관이 된 세상 속에서 검불처럼 휩쓸리고 있었다. 인류가 만들어낸 거대한 유산들이 수족관 속 액세서리나 물고기 떼의 장난감처럼 조류에 떠밀려 구르거나 가라앉았다.
아직 간간이 들리는 폭발음이 인간 문명의 잔해를 굉음으로 전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또다시 진동과 함께 폭발음이 들리고 2, 3킬로미터 반경에 달하는 우산 모양의 기체 기둥이 공기 방울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쏜살같이 세상의 표면으로 돌진했다. 2초, 3초,………7, 8, 9……! 빛이 작렬하는 세상의 표면에 거대한 공기 방울이 짙은 연기와 함께 솟구쳤다. 물 밖의 세상에 빛이 폭발하고 있었다. 물은 물에서 물로 이어졌다. 표류하는 물체들 외에 그 어떤 정착할 대상도, 정착을 시도할 생물도 보이지 않았다. 표면 곳곳에서 간혹 화염이 치솟았다. 세상은 물밑에 잠긴 인류의 역사 이래 가장 빛나고 있었다. 빛나다 못해 스스로 빛을 내는 하나의 별이 된 것처럼 보였다. 수면은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체처럼 출렁였다. 수면 위로 부서지는 태양빛은 흡사 거대한 물고기의 수억 개로 쪼개진 비늘 조각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태양. 태양의 출현.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이 예상하지 못했던 재앙이었다. 태양이 하나의 행성에 스스로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난 후에야 믿게 되었던 인류였다. 혜성과 같이 접근해오던 태양은 지구에서 보아 뜨고 지는 기존 태양의 꼭 열 배 크기가 되자 더 이상 접근하지도 뜨지도 지지도 않은 채 지구의 극지에 머물렀다. 그렇게 극지의 빙산이 녹아내린 것은 분명 멸종의 신호였다. 새로운 태양은 극지의 해빙을 기점으로 점점 더 접근해왔다. 기하급수적으로 오르는 기온과 전산 시스템의 과부하는 마천루의 도시를 무력한 고철 더미로 만들었다. 대륙의 거대한 댐 기지와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 장치 시스템이 마비되었다.
밤의 안식이 사라지자 각 도시의 인간들은 얼마 남지 않은 숲의 짐승들보다 먼저 혼란에 빠졌다. 광역 통신 시스템에서 1인 미디어로 이어지는 순차적인 마비는 방안에 갇힌 모든 무기력한 인간들을 불안의 공포에 빠뜨렸다. 그들은 자신의 불안함을 스스로 해소할 어떤 방법도 알고 있지 못했다. 인간은 재앙의 짧은 기간을 대부분 현실을 부정하는 데 허비했다. 어쩌면, 부정과 자포자기를 선택하는 인간의 힘은 자연의 생존본능보다 강한 것이었다. 그것은 도시를 지켜온 사회체계를 순식간에 허물어댔다. 인간은 세상이 거대한 수족관으로 변하기 전에 그들 스스로 죽어가기 시작했다. 신체면역력 결핍, 체력저하, 정신적 혼돈, 극도의 공포에 대한 무기력과 불안, 전산시스템의 마비, 사회체계 복구불능. 어리거나 늙었거나 신체가 자유롭지 않거나 약한 이들의 대다수가 며칠 사이 먼저 죽어갔다.
하지만 결국 인류를 치명적인 소멸의 상태로 몰고 간 것은 이 태양의 재앙으로 인한 자연적 원인이 아니었다. 지구사에 있어 인류를 몇 번째의 멸종으로 이어 간 결정적 원인은 바로 보호받아야 할 인류에 대한 책임이 있는 개체들의 자포자기 행위, 즉 자살이었다. 도시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시스템에 영향력을 발휘해오던 지배적 책임자, 사회 인사들의 죽음은 소멸을 선택하는 인간의 의지력을 낙엽 흩날리듯 퍼뜨려놓았다. 종교 인사, 정치인, 예술가, 기술자, 교육자, 지하조직의 우두머리, 관공서의 기관장, 사회의 각 분야를 막론하여 줄을 이은 죽음의 파동이 도처에 화염처럼 퍼져나갔다. 새로운 태양이 움직임의 기색을 보였을 때 세상은 집단적 혼돈과 회복 불능의 상태를 거의 고착시켰고 사회는 거의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전산 시스템의 붕괴는 인간의 사회를 완전한 적막 상태로 이끌었다. 이제 남은 인류는 그 어떤 회생의 시도도 하지 않았다. 현 상태에 대한 파악이나 새로운 태양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과 같은 소극적인 시도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관찰하건대, 확연하게 새로운 태양은 지구로부터 물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전멸의 운명과 마주하게 된 것은 오히려 이때부터였다.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자포자기의 힘은 원자력과 핵에 대한 관리체계 속에서도 예외 없이 퍼져갔다. 대륙 곳곳에 며칠 동안 계속된 핵폭발과 연이은 기상 변화는 지구 역사상 인류의 가장 짧은 멸종 일정을 기록했다. 새로운 태양은 이미 지구를 지나쳐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폭발음이 한결 잦아든 이후에야 더듬이를 세우고 정찰을 나섰던 것이었다. 나는 이 모든 일정을 수면 위에 비죽 나온 콘크리트 철근 사이 비좁은 구멍 속에 숨은 채 관측할 수 있었다. 그 틈은 1센티의 너비가 채 되지 않았지만 내겐 오히려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평안한 공간이었다. 우리는 인간과 달리 자신의 불안함을 해소할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좁은 틈에 몸이 납작하게 끼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인류의 진화와 멸종을 몇 번이나 관측하는 행운을 누렸던 우리의 조상과 조상의 조상으로부터 만들어진 여러 주성(*생물이 외부로부터 받는 자극에 대하여 행하는 무의식적인 행동) 중의 하나다. 열등한 진화단계인 인간들은 우리를 볼 때마다 “바퀴!”라고 소리 내어 불렀지만 사실 우리는 인간에게 동질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1장. 재앙 직후, 야간 지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