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이의 마음속에서 과거와 현재는 서로 항상 색깔을 입히고, 맛을 내며, 독특한 놀이를 하곤 했 다. 그는 과거의 한 지점으로 돌아가서 그때의 시점으로 현재의 삶을 재구성하는 상상을 즐겼다. 예를 들자면, 열여섯 살에 여기에 와 있다면, 나는 피렌체에 대해 뭐라고 할까? 이런 시간 이동은 현재의 순간에 줄곧 풍부한 감정을 부여했다. 현재로부터 출발해 과거를 만드는 것, 또 그 반대도 가능했다.
--- pp.95~96
인간은 방황의 시기에 더욱 소심해지고 겁이 많아지며, 가장 좋은 기회를 잃어버린다.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시절에 대한 회상은 영원히 남는다.
--- p.142
방황하던 시절로 여행하는 것, 그 회귀는 단지 시간을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것은 더 아래로 내려가야만 하는, 그리고 더 먼 과거, 자신의 개인사로 가야만 하는 계단일 뿐이다. 방황하던 시절은 그냥 쓸모없는 방황으로 채웠던 시간인 것처럼 낯선 여인은 항상 낯설 뿐. 그는 집으로, 낯설지 않은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만 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세상 곳곳을 떠돌던 바람이 그들을 휩쓸어버렸다.
--- pp.154~155
그 권태가 심장신경증으로까지 고조되었을 때 그녀는 스스로 미하이를 선택했다. 미하이는 완전히 순응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내부에 시민적 삶의 틀과는 전혀 다른 생소한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다. 미하이를 통해 나중에는 그녀도 그 벽들을 넘을 것이라고, 벽을 넘어 알 수 없는 먼 곳을 향해 펼쳐져 있는 침수지, 야생의 숲이 자라나 덮고 있는 그곳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미하이는 그렇게 하기보다는 그녀를 통해 순응하고자 했다.
--- p.218
그는 로마에 머물러 있으며, 이것은 매우 큰 모험과 다름없다. 그의 가족에게는 물론 중산층 시민이라는 신분에도 어쩌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실수를 저지르는 일일지 모른다. 그는 아주 불확실한 날들과 직면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한순간도 들지 않았다. 이 모험과 상실감, 그 또한 게임에 속하는 것이다. 내일도 아니며 모레도 아닐 테지만, 언젠가 한 번 그들은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살고, 또 살 것이다. 지나간 세월 속에서 비춰진 그런 모습이 아닌 채로 말이다.
--- p.234
아직 마음은 아프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야. 계속 나아가자. 계속. 사람들이 내린 저 자동차처럼 텅 비어 있으나, 우리는 나아가야 해.
--- p.269
“하지만 당신도 봤잖아. 나는 이 세상에 순응하고자 몇 년 동안 모든 것을 다 했어.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제대로 되었다고, 이 세상과 화해했다고 생각했을 때 당신을 아내로 맞아들였지.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보상이었어. 그때 내게서 그 모든 악령, 나의 청춘 시절, 그리고 향수와 반항심이 터져 나왔던 거야. 향수에는 어떤 치료제도 없어. 어쩌면 이탈리아로 오면 안 됐었는지도 몰라.”
--- p.320
“내 삶은 지금도 매우 충만해. 아직도 얼마나 대단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겠어. 파리에서 나는 나 자신을, 그리고 세상에서 내가 찾고 있던 것을 조금 찾았어. 단지 유감스러운 것은 당신이 내 인생에서 낙오되었다는 거야.”
--- p.321
인간은 망상과 상실감에 사로잡혀 지옥과 죽음의 경계에 섰을 때는 누군가를 갈망한다. 그 누군가를 찾고 쫓아가지만, 그것은 헛된 것이며, 그의 삶은 향수에 잠긴 채 위축되어간다. 미하이가 로마에 머문 이래 그는 계속해서 이 순간을 기다렸고 준비했으나, 에버와 다시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이제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 p.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