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화가 들은 하얀 종이 위에 짙은 자국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을 공유하고 있다. 타자기와 지금의 워드프로세서가 등장하기 전, 펜과 잉크는 그림을 그리고 생생한 서술을 하는 수단이었다. (……) 요즘 중산층 남성들이 모두 카메라를 다룰 줄 아는 것처럼, 예전 신사의 재주에는 종종 인물이나 풍경을 묘사하는 능력까지 포함됐기에 푸시킨이나 괴테 같은 작가들은 스케치 능력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_26쪽, 「작가와 화가에 대하여_존 업다이크」에서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19세기 소설가들 가운데 가장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작가 중 하나인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원고에 교회 지붕이나 다양한 고딕 양식의 건축물을 그려 넣거나 캘리그래피를 연습하곤 했다. 하지만 그가 주로 그린 것은 초상화였다. 자화상, 노승과 어린 수도승 들, 표트르 1세 밀랍 조각, 그리고 자신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얼굴들이 남아 있다. 그중 『백치』의 주요 등장인물의 스케치는 특기할 만하다.
_128쪽,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에서
가오싱젠은 초기작에는 색채를 썼지만, 중국 문화대혁명 동안 정부가 소작농의 모습을 흑백사진에 담아낼 것을 지시하자 그것을 계기로 수묵화에 강하게 끌리게 된다. 가오싱젠의 말을 빌리자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예술가의 본능으로 귀환하는 것이자, 감정에 충실한 것이다. 삶에 귀환하는 것이자 활력을 되찾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영원한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_149쪽, 「가오싱젠」에서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하늘이 내린 천재요, 한 시대의 중심이자 독일 문화의 기념비적인 인물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재능을 지닌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괴테는 또한 예술가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회화에, 그다음으로는 데생과 에칭에 몰두했다. 그의 자서전, 『내 삶의 밖에서―시와 진실』(1811~33)을 살펴보면, 괴테가 시각예술에 얼마나 심취했는지 알 수 있다. 괴테는 “시각적인 것이 나의 삶을 지배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_168쪽, 「요한 볼프강 폰 괴테」에서
19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는 자신을 “신중한 성격의 미술가이며 자수성가한 작가”라고 설명한다. 1947년에 수습 조각가로 1년을 보낸 후 그라스는 1948년부터 1952년까지 뒤셀도르프의 예술 아카데미에서 조각과 그래픽아트를 공부하면서 암시장 거래와 드럼 연주로 생계를 유지했다. 1953년에 베를린으로 옮긴 뒤 예술대학교에서 조각 공부를 계속했다. _184쪽, 「귄터 그라스」에서
헤세의 인생에 있어서 그림 그리기는 큰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그의 인생 구심점이 되었다. 이는 헤세가 1925년에 쓴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림을 그린 첫 시도들이 나에게 위안을 주어 내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나를 구하지 못했다면, 이미 오래전에 살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_208쪽, 「헤르만 헤세」에서
작가가 수많은 페이지에 걸쳐 말하고, 또 자연주의자는 여러 날에 걸친 관찰과 잡무 후에야 이해할 수 있는 것을, 화가는 단숨에 전체에서 세부까지 모든 것을 파악해 5분 만에 요약해 그려낸다. 내가 음악에서 맛보는 굉장한 즐거움을 그림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너무나 놀라고 기뻤다. (……) 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숙고했고, 새로운 세상과 갑작스레 조우했으며, 새로운 세상으로 옮겨갔다. (……) 누군가 삶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름다운 그림 속에 있다.
---pp.353~354, 「조르주 상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