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씨, 근사하게 나이 들어가는 사람 중에 겉모습이 초라한 사람은 없죠?”
“네, 확실히 그러네요.”
“그게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의 기본 아닐까요.”
단호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아닐까요’를 붙여서 조심스레 표현해뒀다.
--- p.109
돈이 없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 정말로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반적인 노인은 어째서 돈이 없는가? 저금하기 때문이다. 연금을 변통하고 생활비를 절약해서 ‘노후를 위해’ 저금하기 때문이다. 나 원, 지금이 노후잖아. 젊을 때 절약해서 모아둔 돈은 지금이 쓸 때잖아. 여든이 코앞인데 장래의 ‘노후’에 뭐가 있다는 거야. 장례식밖에 없을 텐데.
--- p.25
연일 이어지는 불볕더위에 이와조는 매일 투덜대고 있다.
“아아, 난 어차피 곧 죽을 거지만 이 더위를 견뎌야 한다면 지금 죽고 싶어. 늙은 몸에는 너무 가혹해.” 정말이지 시끄럽다. 투덜거려봤자 뭐가 달라지나. 여름은 더운 거야. 물고기는 헤엄치고, 갓난아기는 울고, 뛰면 숨이 차는 거지. 옛날부터 그런 거야. 투덜거리지 마.
--- p.67
“이즈미, 할머니 보폭이 좁아졌어?”
“딱히 잘 모르겠지만, 작년보다는 좁아졌나. 왜?”
이즈미는 솔직하다. ‘보폭이 좁아지는 것’과 ‘노화’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 알았다면 “전혀 안 그래”라고 대답했겠지.
……그런가, 작년보다는 좁아졌나.
몸에서 힘이 빠졌다. 확실히 한 걸음씩, 쇠퇴는 가차 없이 다가오고 있다.
--- p.98
“유미, 고마워. 초대해주는 것만으로 기운이 나는걸. 이치고도 이즈미도, 할머니는 걱정할 필요 없어. 할아버지는 오랜 병을 앓지도 않고, 온몸을 튜브로 연결하지도 않고 꼴깍 죽었잖아. 그런 좋은 죽음은 없거든. 그리 생각하면 할머니는 행복해서 평소와 다름없이 지낼 수 있단다.”
세 사람은 안심한 듯 돌아갔다. 전부 거짓말이다. 평소와 다름없을 리 없다. 나는 ‘겉모습이 중요하다’가 신조이므로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을 뿐이다.
--- p.141
이와타로가 돌아가자마자 이치고가 족자 상자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어쩔 거야, 이거.”
“첩 본인한테 되돌려줄 거야.”
“뭐엇?!”
네 사람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안 그럴 거면 받아두지도 않았어. 너희 아빠는 족자를 직접 손에 넣었다고 했지만 그것도 거짓말이었어. 대체 이와조는 어떤 남자람. 그렇게까지 아내를 바보 취급했던 남편이라니. 그 자식이 푹 빠졌던 첩을 보러 갈 거라고. 당연하잖아.”
--- p.239
“밥 먹으러 가자고 불러도, 쇼핑하러 가자고 권해도 ‘붐비는 덴 싫어’라고 하고. ‘몸이 안 좋으면 병원에 같이 가줄게’라고 해도 ‘내버려 둬. 폐 끼치고 싶지 않아’라며 싹 거절하고. 먹을 걸 들고 가도 ‘못 먹겠어’라고 하고. 흥을 깨잖아.”
“응…….”
“그러면 우리도 ‘맘대로 해, 망할 할망구’라고 생각한다고. 엄마, 아직 일흔여덟이야. 이 세상에는 팔십 대, 구십 대가 건강하게 살고 있는데.”
“응…….”
“하지만 자기 방치가 심해지기 전에 아빠한테 애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다행이었지. 엄마, 구원받은 거야. 심해지면 집이 쓰레기 천지가 되기도 한대. 버릴 의욕도 사라져서 보건소나 복지과 사람이 찾아온대.”
이치고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 여자 덕분이야. 그 여자랑 아빠가 사십이 년이나 속였다는 걸 알고 여봐란 듯 다시 일어선 거지.”
“다시 안 일어섰어.
--- p.265
거실 창문으로 첩이 홀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조그만 등이었다.
나는 선 채로 호두 센베이를 와작와작 먹으며 그 모습이 어둠에 묻힐 때까지 바라봤다. 문득 내가 이 첩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럴 때 일부러 선물을 들고 오는 것도 묘하게 특이해서 우습다.
첩까지 용서하다니 보살을 초월해 대일여래다. 이렇게 해탈해서야 나는 곧 죽는 게 아닐까.
--- p.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