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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결혼
중고도서

아찔한 결혼

: 어느 검사의 결혼 이야기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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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3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380쪽 | 534g | 140*210*3mm
ISBN13 9788961597548
ISBN10 896159754X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약간 있으나, 대체적으로 손상 없는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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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윤의 눈동자가 서서히 어두워지며 짙어졌다. 딱딱해진 태윤의 얼굴에 상처 입은 혜나는 망연자실했다. 쓸데없는 거라니. 난 알 자격도 없다는 걸까? 자격 미달인 걸까? 조용히 왔다, 조용히 가주면 좋은 사람인 걸까? 가슴이 먹먹해져 견디기 어려웠다.
“내가 아무리 서류상의 부인이라지만 그래도 일 년 반을 함께 살았는데…….”
이러지 마. 아픈 사람한테 무슨 짓이니? 참아왔던 격앙된 목소리가 터졌다.
“아까 통화할 때 어떻게 한마디도 안 할 수가 있어요?”
원하지 않게 목소리도, 숨소리도 울먹거린다.
우는 건 질색인데, 정말 싫은데. 나약하면 도움 하나 못되는데.
울음을 참기 위해 턱을 단단히 굳혔지만 울고 싶은 입술이 대신 떨렸다. 서태윤이 표정이 굳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게 싫었다. 엉망으로 상처 난 얼굴은 더더욱 싫었다.
“강한 척은 다 하더니 얼굴이 그게 뭐예요? 나한테는 괜찮다 말하고. 아무렇게나 챙겨 먹고, 새벽마다 잠 안 자고 같이 영화 보자더니 이게 뭐예요?”
알고 있다. 정말 철없는 아내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걸. 그래도 멈출 수가 없었다. 주먹만 부서지라 쥐고 있을 뿐 터진 말은 막을 길이 없었다. 그래도 가까워졌다 생각했는데, 아니라는 결론만 났다.
“괜찮아. 오늘 저녁 한 끼만 잘 먹고 잘 자도 괜찮아지는 건데 영석이가 오바한 거다. 넌 내가 그 정도로 약한 남자로 보여?”
“옷이 그게 뭐냐고요. 온통 피투성이잖아요!”
태윤의 엉망이 된 하얀 와이셔츠를 바라보다 서글퍼 기어이 울고 말았다. 그의 셔츠처럼 붉어진 눈으로 울었다. 철부지처럼 보일 게 뻔한데 눈물이 꾸역꾸역 쏟아졌다. 서태윤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쩌냐? 울려서, 이게 그렇게 슬프십니까, 이혜나 씨.”
우느라 대답을 못했다. 서럽게 울어대는 혜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태윤은 한숨이 났다. 머리를 조용히 당겨 가슴에 안아 주었다. 포옹한 채 자리에서 못 박혀 움직일 줄 몰랐다.
“그렇게 울면 밤에 파란 도깨비가 잡아간다.”
“아직도 애 취급이에요?”
“애 취급이라니, 누가, 내가?”
불빛조차 꺼진 병원 한편, 분해서 씩씩거리느라 우는 것도 잊어버리고 서태윤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다치고서도, 옷이 엉망이라도 지나치게 멀쩡한 서태윤이 미웠다. 형의 죽음이란 끔찍한 사건을 겪었으면서 태연한 척 농담을 해댔던 그가 미웠다.
“아닌 척하지 마요. 하루같이 애 취급이잖아요.”
어처구니가 없다. 태윤은 손을 뻗어 혜나의 볼에 흐른 눈물 자국을 닦아 주었다. 애 취급이라는 말에 헛웃음이 날 정도다. 내가 널 어떻게 보는지 말해 주면 아마 기겁해 도망가겠군. 태윤은 턱과 볼의 아픔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혜나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찢었다.
밤이 어둑어둑 내린 병원 안은 새파랗게까지 보이는 몇 개의 형광 불빛을 제외하고 소등된 상태였다. 나이트 업무 중인 간호사 중 겨우 한두 명만 환자들의 혈압을 체크하고 떨어지는 링거액을 조절했다. 시간이 갈수록 병원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아까 서태윤 씨 친구분이 그랬는데, 서태윤 씨 겉보기만 멀쩡하다 그랬어요. 환자복 다시 입고 아침까지 링거 맞고 가요.”
“그런 걱정이라면 접어도 될 거다. 안팎으로 다 멀쩡한데 영석이가 오버한 거야.”
“아뇨, 지금은 내가 서태윤 씨 보호자니까 제 말대로 해요. 자정 넘었으니까 그냥 여기서 자고 내일 가요.”
“그럼 넌 어디서 잘 건데? 집으로 혼자 가기라도 할 거야?”
“보호자 침대 있으니 거기서 자면 돼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데?”
“서태윤 씨가 환자니까요. 의사가 쉬어야 한다 말했어요.”
“의사 아니라 친구야. 사람을 완전히 약골 취급하고 그 녀석 안 되겠네.”
“그 녀석이 아니라 의사분이에요. 서태윤 씨는 의사가 아니라 검사니까 그분 말을 들어야 해요.”
“상세한 설명 매우 고맙다만 왜 내 말은 안 믿는 건데. 나 괜찮다니까.”
딱딱하기 그지없는 보호자 침대에 혜나를 재울 생각이 없는 태윤으로서는 병원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병실에서 밤을 보낼 만큼 몸에 이상이 있지 않았다. 안정제 때문에 강제로 잠든 까닭에 기분이 나른한 것 빼고는 심하게 멀쩡했다.
“제가 안 괜찮아요. 지금 다친 그 턱도 굉장히 아파 보여요.”
태윤은 불안해하는 그녀를 향해 모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절전으로 꺼진 형광등 때문에 어스름한 그림자가 병원 곳곳에 깔렸다.
“내가 그렇게 거짓말을 많이 했나? 거슬리긴 하지만 지금 네 걱정스러운 얼굴만큼 아프지는 않다.”
태윤은 하얀 거즈로 보호되고 반창고로 밴딩 처리된 자신의 턱을 슬쩍 쳤다. 혜나는 그러지 말라고 손을 잡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다치지 마요. 서태윤 씨 때문에 굉장히 속상했어요. 다쳐서 속상하고, 아무것떵 알려주지 않아서 속상하고…….”
“그럼 앞으로 다치지만 않으면 됩니까.”
그렇게 묻는 태윤의 얼굴이 한층 가까워졌다. 한 발짝 성큼 다가섰을 뿐인데 놀라 잡고 있던 소매를 놓아버렸다. 공중으로 떠버려 잠시 부유하던 손을 서태윤이 낚아챘다. 목소리는 은근해지고 눈빛은 깊어졌다.
“궁금하다. 이혜나는 왜 그렇게 속상했을까?”
“또 놀리는 거죠?”
“놀린다고? 누가? 내가?”
착각 탓일까. 서태윤이 눈빛으로 입술을 더듬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빗장뼈와 귓등을 차례대로. 느릿했지만 확실하게. 혜나는 숨이 가빠왔다.
“아까 애 취급이라고 했어? 모르는 소리다, 난 애한테는 이런 마음 절대 안 먹어.”
“무슨 마음을요?”
“나쁜 마음이지.”
태윤의 얼굴에 흐르는 물처럼 묘한 일렁임이 일었다. 혜나의 눈에 어린 치기를 읽으며 그는 잠긴 음성으로 말했다.
“물론 키스도 절대 안 한다.”
숨소리도 들리는 거리. 서태윤의 손가락이 손가락 사이사이를 남김없이 파고들며 깍지를 꼈다. 혜나는 미묘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로 묵묵히 응시했다. 이윽고 태윤의 손이 턱을 그러쥐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누가 누굴 애로 본다고? 네가 날 남자로 안 보는 거 아녔어?”
혜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미간이 구겨지는 순간 작고 여린 입술에 태윤의 뜨거운 입술이 겹쳐졌다. 순간 텅 비어버린 가슴이 소리 내며 떨었다. 연이어 터지는 불꽃처럼 키스는 순식간에 두 사람을 아찔한 전율로 이끌었다. 태윤은 이성을 버렸다. 본능이 사타구니를 타며 넘실거리고 머릿속에서 하얀 섬광이 터졌다. 잔잔한 파도처럼, 혹은 거친 사막처럼, 뜨거운 키스의 불구덩이에 혜나를 이끌었다. 조금씩 화답해 오는 사랑스럽고 작은 혀를 낚아채고 마음껏 유린했다.
난생처음 겪는 은밀한 감각에 당황한 혜나는 턱을 잔뜩 뒤로 빼려 했지만 태윤은 허락하지 않았다. 작은 뒤통수를 감싸고 그녀의 입안 깊숙한 곳까지 침범해 들어갔다. 흥건하게 미끌대는 달콤하고 진한 타액을 낱낱이 빼앗아왔다. 찢어진 턱 부위가 말썽이었다. 따끔따끔 거리며 규칙적으로 통증을 호소해왔지만 진한 욕망에 사로잡힌 사내는 키스를 끝낼 생각이 없었다. 작게 파닥이는 호흡을 가져오고 되돌렸다. 혜나의 혀를 아이스크림처럼 음미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키스는 부드러워졌다. 뒤통수를 감쌌던 태윤의 손이 그녀의 하얀 목덜미로 내려왔다. 고개를 좀 더 기울인 태윤은 혜나의 치열을 부드럽게 훑어 나왔다. 하나로 주고받던 숨이 떨어지자 태윤이 놓아준 혜나는 거칠게 숨을 들이셨다. 거침없이 빨려 부푼 작은 입술은 유혹적이었다. 혼란스러운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렸다. 눈동자에는 ‘왜 나한테 키스를?’이라고 적혀 있다. 그 모습에 허기가 진 태윤은 생각했다. 영양제는 됐으니 야식은 이혜나 너였으면 좋겠다고.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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