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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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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7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282g | 128*188*20mm
ISBN13 9791198386502
ISBN10 1198386509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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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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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울이 점점 배에 가까이 다가와 배를 위로 들어 올렸다가 툭 떨어뜨리기를 반복하는데, 배가 올라갈 때에는 내가 서 있는 곳이 위로 번쩍 들렸다가 떨어질 때는 바다를 마주보듯 기울어지며 물속에 잠긴다. 그러면서 큰 거품을 토해낸다. 배가 뿜어낸 거품은 거센 바람에 작은 물방울로 부서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낸다. 배가 요란하게 흔들려도 망망대해 한가운데여서 기수를 돌려 출발했던 항구로 돌아갈 수도 없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곳, 아니 잠시 정박하는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무조건 견뎌야 한다. 사방을 둘러봐도 의지할 곳 하나 없다. 오직 바다, 바다뿐이다. 하지만 우리 배를 졸졸 따라다니는 갈매기들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거센 바람, 비, 파도가 휘몰아쳐도 갈매기들은 늘 똑같은 모습으로 날고 있다.
---「1. 물 위의 집」중에서

오늘은 하루 종일 GPS만 들여다보고 있다. 적도를 지나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다시 날이 흐리고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지는데, 습한 공기가 폐 안으로 깊숙이 밀려들어온다. 선내 방송에서 모두 헬리데크로 모이라고 한다. 이제 적도에 가까워져 통과하는 시간에 기념촬영을 하려는 것이다.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 차림을 하라기에 나는 방으로 들어가 박스 깊숙이 넣어두었던 옷을 꺼내 입은 후 위에 빨간색 단체복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간다. 조금 전까지 “후두둑” 쏟아지던 비는 오지 않는다. 내 옆에 있던 승조원 한 분이 손가락으로 먼 바다를 가리키며 “저기 저쪽에 적도를 표시한 빨간색 깃발이 보인다”고 말한다. 나는 ‘어디 있지?’ 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바다 위를 훑다가 ‘도대체 여기서 보일 게 있을까?’ 하며 승조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고 있었던 것이다.
---「4. 적도 페스티벌」중에서

태양은 너무도 찬란한 빛을 쏟아냈다. 남극대륙은 우리 배를 밝고 따뜻하게 맞아주고 있었다. 우리는 12월 3일 오전 7시 54분에 남극대륙에 도착했다. 배가 해빙에 처음 닿는 순간 진동과 함께 얇은 얼음이 순식간에 지그재그로 갈라졌고, 배의 왼편 얼음 위에서는 한 무리의 펭귄이 갈라지는 얼음 틈새를 피해 우르르 달아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달아나지 않고 서 있는 몇 마리 펭귄이 있었는데, 그 녀석들은 깨진 얼음 위에 균형을 잘 잡고 서서 흰 배를 우리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배가 펭귄들의 휴식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6. 이번 정류소는 ‘장보고기지’」중에서

“문명의 욕망은 결국 인간을 더욱더 큰 자극에로 휘몰아가며, 인간은 결국 삶의 정로正路를 잃게 된다.”

이 글은 남극에 가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경쟁을 통해(어느 때보다 경쟁률이 낮았지만) 선발되어 좋은 시설을 갖춘 장소에서 자가격리를 한 후 배에 올라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 받고, 남극을 향해 가는 길에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는 나 자신 말이다. 밤새 쉬지 않고 달리는 배의 왼쪽 동녘 하늘을 은은한 주홍빛으로 물들이던 아침놀, 산호해의 수평선 구름 사이로 보이던 옅은 분홍빛 석양, 줄을 맞춘 듯 낮게 드리워진 남태평양의 뭉게구름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거친 파도 위를 유유히 날던 갈매기들, 수면 위를 쏜살같이 날아가는 날치 무리, 브릿지에서 처음 마주쳤던 장엄한 남극대륙, 대륙과 해빙이 하나인 듯 온통 하얗게 펼쳐져 있던 설원, 바다의 얼음을 깨고 대륙에 다가가던 쇄빙선의 요란함, 갈라지는 얼음을 피해 도망가던 펭귄들, 장보고기지 앞바다에 출몰한 바다표범, 로스해역 활동 중에 마주친 끝이 보이지 않던 거대한 빙벽 등 이 모든 것들을 과연 누가 경험할 수 있을 것인가.
---「9. 난득지화難得之貨」중에서

세종기지 부두의 평평한 땅에 발을 디딘 순간 그동안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기지의 주황색 건물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33차 대원들이 부두에서 우리를 맞아주었고, 나는 인사를 나누면서 두터운 구명복과 조끼를 벗었다. 뒤이어 조디악이 도착했고, 34차 대원 모두가 부두에 올라왔다. 우리는 태극기 게양대 아래에 서서 고 전재규 대원의 흉상 앞에 고개를 숙였다. 17차 대원으로 활동하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의인 앞에서 묵념을 하며 앞으로 이곳에서 일 년을 지낼 대원들 모두가 안전하기를, 건강하기를 기원했다. 길고도 험한 여정의 목적지, 세종기지에서의 내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2. 엄마와 딸」중에서

지금은 걱정된다.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지난번 교육 때 “대피가 필요할 정도의 큰 지진이 일어나면 소각장 왼쪽 공간으로 모여라”고 하셨다. 쓰나미가 몰려오면 소각장 옆이 아니라 바위언덕으로 냅다 도망쳐야겠지만 말이다. ‘메렛 백’도 점검했었다. 지진이든 화재든 이 가방만 들고튀면 바로 치료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그 안에 필요한 게 다 들었는지 확인했다. 그런데 모든 재난상황에서도 적용되겠지만 ‘사람’이 우선이라 그렇게 대피해 생명을 건졌다 하더라도, 메렛 백을 어깨에 둘러메고 언덕으로 잘 뛰어올랐다고 해도, 집도 없고 옷도 없고 먹을 것이 다 없어진 상황에서 나는 남극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13. 다시, 흔들리는 집」중에서

옷을 마구 주워 입고 밖으로 나갔다. 눈발이 섞인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바람에 등 떠밀리듯 서쪽 세종곶을 향했다. 누군가에서 도망치는 사람처럼 해안 자갈 위를 달렸다. 바람은 더 거세지고 파도는 해안으로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자갈길이 점점 물에 가까워지면서 파도의 거품이 내 발로 튀어 올랐고,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이 저려왔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기 시작했다. 왼쪽에 호수가 나타나면서 바다 사이의 길이 더 좁아져 천천히 걷는데, 저 앞 오른쪽 해안에 스쿠아 두세 마리가 머리를 조아린 채 무언가를 먹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을 지나가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스쿠아들이 작은 펭귄 한 마리를 사정없이 뜯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화가 치밀었다. ‘불쌍한 펭귄을 먹어?’ 그놈들의 모습에 질려 얼굴을 돌리고 서둘러 지나쳐 가려는데 스쿠아 두 마리가 길을 막고 서 있었다. 난 화가 나 그놈들을 향해 돌을 던졌다. “이놈들아, 꺼져!” 하지만 그놈들은 내가 던진 돌을 피하더니 하늘로 날아올라 오히려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20. 인생은 비극이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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