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삽화책은 BC 1980년경의 이집트 파피루스 두루마리라고 한다. 모래에 묻힌 덕분에 우연히 살아남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런 공예품들은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이다. 데이비드 블랜드(David Bland)의 1958년 역작인 『책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A History of Book Illustration)』(Faber, 1958)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말을 인용한다. “인간의 형태와 신체 기관의 모든 면을 글로 표현하려 하는 그대, 그 생각을 포기하라. 상세히 서술하면 할수록 그대는 독자의 정신을 더욱 가둘 것이며, 서술된 것에 대한 독자의 깨달음을 더 방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서술해야 하는 것이다.” 현대 그림책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누가 이보다 더 뛰어난 소개를 할 수 있을까?
---「제1장 ‘그림책의 역사’」중에서
그래픽의 한 형태인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자 이렇게 묻는 이들이 있다. “그림책도 예술이에요?” 더욱 자유로운 형식과 폭넓은 주제가 이 장르에 슬그머니 들어오자 이렇게 묻는 이들도 있다. “아이들에게 이런 걸 보여줘도 되나요?” 문화가 다양한 만큼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도 제각각이지만, 그림책이 서사적이며 표현적인 그래픽 아트에서 빈 곳을 메우기 시작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적합한지 아닌지는 5장에서 다루겠지만, 그림책이 주로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출간된다는 사실이 그림책의 예술적 가치를 평가하는 요소로 작용해서는 안 되며, 대량 생산된다는 상황 또한 그런 요소가 될 수 없다.
---「제2장 ‘그림책 작가에게 필요한 요소들’」중에서
그림책이 ‘어린이에게 가장 중요한 경험’이라 해도, 물론 그것이 어린이에게 끼치는 그 모든 미묘한 영향을 우리가 모두 알 수는 없다. 어린이는 그것을 전달할 언어 구사력이 없는 데다, 시각적 경험에는 말로 전달하기 어려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반응을 정확히 표현하기가 더 힘들다. 『그림 읽는 아이들』의 바탕이 된 연구에서, 대 상 어린이들은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는 것 외에도 똑같은 책을 여러 번 보고 같은 또래 집단과 토론하게 했다. 그 후, 그림책을 본 뒤 아이들에게 반응을 (시간제한 없이) 그리게 하니, 텍스트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는지 더 잘 알 수 있었다. 전에는 아이들이 그런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정형화된 인터뷰보다는 그림과 자유 토론에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제3장 ‘그림책과 어린이’」중에서
대부분의 경우, 일러스트레이션은 글의 시각적인 동반자 역할을 하거나, 책을 전체적으로 더 깊이 경험할 수 있도록 상상력의 불씨를 당기거나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림책의 경우, 글과 그림은 책의 전체적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둘 중 어느 것이라도 혼자라면 크게 와 닿지 않지만, 함께라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장 만족스러운 그림책은 글과 그림 간의 역동적인 관계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이원성은 종종 이들이 서로 유혹하거나 등을 돌리며 즐겁게 춤을 추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글과 그림 간의 경계는 점점 도전을 받고 있는데, 그 까닭은 글 자체가 그림처럼 바뀌고 있어 전체적으로 ‘시각 텍스트’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림책 작가들은 이러한 관계의 연구 가능성을 깨닫고 점차 정교하게 이용하고 있다.
---「제4장 ‘글과 그림, 그림의 역할을 하는 글’」중에서
그림책이 점점 모든 나이의 독자를 위한 소통 매체가 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고도 반가운 현상이다. 서점으로서는 이 책들을 어느 서가에 배치해야 할지 고민스럽겠지만 말이다. 유년기의 의미에 대한 인식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다. 많은 동화를 비롯한 유럽의 어린이 옛이야기에는 교훈적 성격이 담겨 있어, 잔인하고 어두운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이 보호받아야 할 경우와 노출되어도 되는 범위에 대한 논란은 늘 계속될 것이다. 가정 폭력, 죽음, 성, 인간관계, 슬픔과 전쟁이 모두 그림책의 주제가 되기도 했으나, 시각 문학과 언어 문학의 주류에서 유년기를 점점 더 감상적으로 다룬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문화권?특히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나라들?의 그림책들은 삶(과 죽음)의 불편한 면들이 흔히 등장한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영어권 그림책 시장까지 번져나갔다. 우리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세계의 문제들과 정치 및 환경적 어려움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제5장 ‘난해한 주제를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할까’」중에서
매우 정교한 디지털 방식으로 스캔과 인쇄를 하면 어떤 형태의 원화든 복제할수 있는 시대에, 그림책 분야에서 이토록 많은 작가들이 그 한계를 알면서도 일부러 상대적으로 거친 판화법을 써서 디지털 이전의 시각적 효과들을 일부 복제한 뒤, 이것들을 디지털 기술과 함께 이용하는 것은 왠지 역설적이기도 하다.
이제부터는 주요 판화법의 기법과 심미적 특성을 글과 그림을 통해 설명해 보겠다.
---「제6장 ‘전통적인 인쇄 방식과 제작 과정’」중에서
지난 10년간 어린이 그림책 출판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논픽션 그림책의 부상이었을 것이다. ‘부상’이란 표현은 늘어난 인기와 판매량뿐 아니라, 판형의 크기에도 적용될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표준 판형보다 더 큰 많은 그림책 구상안은 서점에 진열하기 어렵고 판매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제조 원가가 높아지면 따라서 소비자 가격까지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책을 가치 있는 실체적 물건으로 중시하게 됨에 따라 크고 아름다운 판형으로 제작된 논픽션 그림책들이 급증했다. 이 책들은 정보와 즐거움을 주기 위해 다양한 구조 기법들을 사용하고 있다.
---「제7장 ‘논픽션’」중에서
열정적인 그림책 작가들에게 출판 산업은 무시무시하게 크고 복잡한 존재로 느껴질 것이다. 그 안에 끼어드는 것은 쉽지 않다. 일단 자신이 만든 것을 보이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소규모 독립 출판사들이 떠오름에 따라 대기업의 지배력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것은 현재 출간된 그림책들의 범위와 다양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번에는 크고 작은 여러 출판사들을 살펴보되, 시장에 영향을 미친 새로운 독립출판사들에 특히 중점을 두겠다. 또한 기획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그림책 들이 어떤 과정으로 나와 시장에서 팔리는지 살펴볼 것이다. 또한 출판사들이 저마다 가진 철학과 더불어, 그림책이 판매점에 진열되고 독자의 손에 들어가는 과정을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알아볼 것이다.
---「제8장 ‘그림책 출판 산업’」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