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아까 그 다큐멘터리는 코로나와 기후위기가 같은 데서 비롯되었다는 걸 이야기하고 있어요. 세계 곳곳에서 장기간 진행되는 산불, 원자력 발전소, 해양 오염 등도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회적 재해라는 거죠. 제 식으로 말하자면 너무나 도를 넘어선 산업화, 파괴와 생산의 양축이 어느 순간 균형을 잃어버린 문제 아닌가 싶거든요. 우리가 만든 문명이 지구 전체를 병들게 한다고 봐요.
이현주 불, 지진, 화산 같은 것들은 옛날에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게 총체적으로 다 오는 게 하나의 사인sign이라 생각돼요. 좀 다른 각도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는데, 언제부턴가 사람이 자기가 이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는 거 같아요. 저 산에 사는 짐승과 자기가 같은 운명, 같은 생명체라는 아주 간단한 사실을 잊어버렸어요. … 저는 ‘하느님’이란 단어를 쓰고 싶은데, 암튼 하느님이 더는 그렇게 살면 안된다, 크게 회개하라, 안 그러면 내가 이 지구 포기한다,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인간들이 그렇게 바보 같진 않아서, 가까운 시일 안에 소위 말하는 정신적인 변혁, 그런 게 일어날 것 같아요.”
---「팬데믹과 그 이후」중에서
“김진호 이런 현상에서 희망과 가능성을 읽어내는 목사님의 안목이 놀랍지만, 저는 자꾸 문제가 보여요. 그런 문제들에 제가 공모자라는 게 슬프고 안타까워요.
이현주 문제의 주인공이 ‘저 사람’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을 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고 소중한 일이죠. 그러지 않으면 돌아설 수 없어요. 저도 지금까지 이렇게 비틀거리면서 왔지만,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해준 것은 아주 멋있는 스승도 아니고 책에서 본 말도 아니었어요. 간단히 말하자면 내가 저지른 실수, 내가 저지른 잘못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거예요. …그래요.”
---「기후위기와 우리의 삶」중에서
“김진호 바울은 그것을 좀 다르게 신학화했어요. 종교적 영성은 사랑으로 완성되는 것이고, 사랑은 배려인 동시에 내 것을 내려놓는 일이라는 거죠. 제 생각에는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영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해서, 나름 부연해보았어요.
이현주 사랑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사랑’이에요. 사랑이 나를 통해 자기를 살아가는 거예요. 굳이 말한다면 ‘당신의 사랑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길 바란다’ 정도죠. 내가 막으면 저분도 못해요. 그러니 ‘저로 하여금 당신의 사랑을 막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 바람까지는 내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해요. 그분 앞에서 나를 완전히 비울 때, 그때 사랑은 나를 통해서 자기를 살아가는 거예요. 그게 정말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감히 내가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어요. 사랑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나’라는 것이 앞서면 아직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영성이에요. 제가 조금 경험해보니까 감히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영성이란 무엇인가」중에서
“이현주 다들 이미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볼 땐 인간들이 애써서 모를라 그래요. 이게 참 묘한 거예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 자체는 문제가 아니고 그 문제에 내가 어떻게 응답하느냐, 이게 답이라고 생각해요. 각자가 자기 길을 찾아야 해요. … 세상은 언제나 엉망진창이에요. 처음부터 그랬어요. 문제로는 문제를 풀 수 없고, 그 안에서 전혀 다른 시선이 필요한 거죠.”
---「갈등과 혐오를 풀어가는 법」중에서
“이현주 그래도 오늘 할 일은 아주 분명해요. 내일은 불분명하지만 오늘 내가 할 일은 너무나 분명해요. 그러니 그걸 하면 돼요. 그야말로 일용할 양식이에요. ‘양식’이라는 게 내가 ‘할 일’이죠.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나에게 있어. 내 아버지 뜻을 이루고 완성하는 게 내 양식이야.’하면서 내게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게 나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죠. 지금 내게 보람 있는 일, 할 수 있잖아요. 선생님 만나 이야기하는 것, 이것이 내가 먹을 것이에요. 분명하잖아요. 지금 이 자리에서 무슨 생각,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이건 애매하지 않아요. 아주 간단하고 분명해요. 매일매일 그걸 하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오늘이 내일로 이어지고, 그러다 보면 가나안에 도착하는 것 아닌가.
어떤 젊은 신부님이 마더 테레사한테 이런저런 인생 문제가 골치 아프고 복잡하다고 했대요. 수녀님이 다 듣고 나서 젊은 신부님 어깨를 톡톡 치면서 “신부님, 그래도 우리는 기도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잖아요. 뭐가 그리 복잡해요?” 그랬다는 말이 자꾸 떠오르네요. 내 앞에 있는 게 뭐든, 기도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면 그보다 분명한 게 무언가 싶어요. 기도는 내가 하늘하고 소통하는 거고, 사랑은 내 이웃하고 통하는 건데, 그거면 됐죠. 너무나 분명해요.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정말 가나안에 왔구나’ 하는 날이 오겠죠.”
---「배우고 가르치는 일」중에서
“김진호 제 생각도 그래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고 죽는 것이 뜻대로 안되잖아요. 그래도 그 안에서 기쁨을 누리고, 삶을 이어나가 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그 사이에 두 존재의 ‘소통’이 있었어요. 죽지 못하는 자와 죽은 자의 대화가 있었죠. 그 두 존재가 서로 얽혀있고, 서로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화하는 거예요. 죽음이 무엇인지, 죽음을 성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드라마를 통해 읽을 수 있는 메시지는 ‘대화’라고 생각해요.
이현주 사거리에 있는 붉은 신호등은 ‘멈추시오’, 푸른 신호등은 ‘가시오’라는 뜻이잖아요. 이 붉은 신호등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냥 거기 있으라는 얘기인가? 아뇨, 잘 가라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결국은 둘다 교통이 잘 돌아가게 하려고 있는 거죠. 죽음도 결국 그런 것 아니겠는가. 저는 붉은 신호등이 ‘붉은색 푸른 신호 등’이라고 봐요. 결국은 잘 가게 하기 위한 것, 색깔이 붉게 보이지만 본질은 푸른 신호등이죠. 죽음과 삶도 그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있는 것은 생명이고, 죽음은 생명이 부족한 것이다. 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죽음이 필요한 것이다.’ 죽음이 없으면 삶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요.”
---「죽음을 대하는 태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