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면 그의 친구들을 보라는 영국 속담이 옳다면, 제정신을 지닌 사람이 민족주의에 대해 환호할 수는 없다. 장-마리 르펜에서부터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거쳐 블라지미르 지리노프스티에 이르는 극우 선동가들, 외국인 사냥을 업으로 삼는 독일과 프랑스의 스킨헤드들, 유럽 곳곳의 축구 경기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는 영국의 애국적 관중들, 민주당 정권의 '좌경화'에 분노하는 미국의 민병대들, 요컨대 가장 위험스러운 파시스트들이 바로 민족주의의 벗들이다. 실상 정치적 민족주의는 늘상 파시즘과 군국주의의 형제였고, 지금도 그렇다.
나폴레옹의 민족주의도, 심지어 히틀러의 민족주의도 그 초기에는 해방의 너울을 쓰고 있었다. 그 해방적 민족주의가 공격적 민족주의로 치달으며 나라 전체를 병영으로 만들고 유럽 전체를 전장으로 만들기까지는 별다른 사정 변경이 필요치 않았다. 그러니, 되풀이하건대, 공격적 민족주의에 대한 올바른 처방은 해방적 민족주의가 아니다. 올바른 처방은 개인주의, 즉 세계 시민주의다. 자신의 자연적 문화적 소속집단 바깥으로까지도 관용과 이해의 눈길을 보낼 수 있는 개인주의 말이다.
만국의 개인들이여, 흩어져라! 흩어져서 싸우라! 민족주의의 심장에, 지역패권주의의 뇌수에, 모든 집단주의의 급소에 개인주의의 바이러스를 뿌려라! (p. 2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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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꿈; 공감 속의 생성 실천 -김현
이 시대의 문단 전체가 김현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생전에 부르좌 문학의 가장 강력한 수호자라는 혐의를 받았고, 사후에는, 동어반복이겠지만, 자유주의 문학의 시발점으로 평가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당대의 군사파시즘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심리주의로 도피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자기 문학의 초창기부터 새것 콤플렉스의 극복을 내세웠으면서도 그 자신 끝내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들은 모두 다 제 나름의 근거를 지니고 있었다.
사실, 그가 강철 같은 사유인으로서의 김우창에게, 실천적 지성인으로서의 백낙청에게, 그리고 탐욕스런 학인으로서의 김윤식에게 미치지 못하는 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과 김현이 함께서 있는 문학(비평)의 자리에서라면 어떨까? 아마도 김현은 이 자리에서라면 남들에게 성석을 양보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마흔여덟 해 생애가 뿜어낸 문학적 열정은 그의 이 욕심을 정당화시키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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