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이 지나도록 나는 믿었다. 남몰래 확신하고 있었다. 내가 사는 이 아주 작고 특별한 별에서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보통 사람들한테는 일어나지 않지만 예외적으로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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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을 차곡차곡 쌓아나갈 수 있다고 믿었고 지금도 믿는다. 인내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심지어 사랑에 빠지는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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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이라면 시작이 안 좋아도 끝이 행복하다는 거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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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스타성 있는 아시아 배우가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하는 할리우드 캐스팅 감독님들? 한국으로 가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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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드라마는 매혹적이고 진실된 사랑을 열 시간 내지 스무 시간짜리의 중독성 있는 포장 속에 꾹 눌러담아놨다. 나는 순수한 첫 키스에 심장마비를 일으킬 정도로 반응했다. 커플들이 헤어질 때, 그들 중 하나가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때면 목놓아 울었다. 캐릭터들이 마침내 해피엔딩을 맞으면 멍한 눈으로 행복하게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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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한 가지 길만 있는 건 아니잖아. 내 삶의 연애를 통제하는 것도 완전한 페미니스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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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남자애들 앞에서 멋지게 굴라고 말하던 내 안의 목소리가 이제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진정성 있게. K드라마의 여주인공은 언제나 미칠 만큼 진정성 있으니까. 그들의 사랑스러운 매력 첫번째가 어설픈 성격, 두번째가 진정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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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진정한 로맨스였다. 착한 여자는 나쁜 남자한테 빠지는 법이다. 그들은 모든 역경을 함께 견뎌나갔다. 나는 자라면서 아빠가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듣고 나서야 그들에게 진정한 것, K드라마가 늘 꿈꾸는 바로 그것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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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서는 K드라마의 그 모든 대담한 여주인공의 모습이 빠르게 돌아가다가 〈오 나의 귀신님〉의 봉선의 모습에서 멈췄다. 그녀는 술 취한 대학교 친구에게 이야기중인 핫한 요리사를 몰래 엿본다. 훔쳐보기는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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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순간이 왔다. 키스 타임. 이럴 수가. 우리 사이로 열기가 파도처럼 몰아쳤다?우리 몸의 원자와 분자가 열을 뿜어내면서 생겨난 진동. 그래, 딱 전도를 통한 열전달 같다, 데시. 아주 로맨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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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부드럽고, 약간 부르튼, 그리고 따뜻한 입술이. 진짜 K드라마 여주인공처럼 눈이 떠졌다. 세상에, 뭐지? 내 머리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접수하고 있었지만, 내 심장은 미친듯이 뛰며 빙글빙글 돌았다. 첫 키스, 경적이 울리고 있었다. 맙소사, 진짜 첫 키스야!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세상에나, 지금 입을 벌려야 하나? 잠깐, 먼저 눈을 감아, 이 바보야. 좋아, 눈은 감았고. 잠깐, 지금 나 숨쉬고 있지? 아아아아아아. 그러다 온 세상이 멈춘 듯했고 사방의 소리가 잦아들었다?파도가 고요해졌고 주변에 있던 자동차들도 사라졌다. 혼란에 빠진 내 마음속도 꽁꽁 얼어붙었다. 그리고 루카와 나 단둘이서, 우주에 떠 있었다. 내 입술이 벌어졌고 그의 손가락이 내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존재하는 거라곤 그의 손과 우리의 뒤섞인 숨결뿐이었다.
--- p.242
지난밤의 키스는 확실히 K드라마의 그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웠다. 그 모든 계획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순간에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키스의 의미가 무엇인지?루카가 나를 좋아해서인지 아니면 그저 순간의 기분에 따른 건지?하룻밤을 고민하다가 이제 그와 손을 잡고 있으려니, 어제 내 심장을 쿵쾅거리게 했던 아드레날린이 다시 솟구쳤다.
--- p.249
그가 내 머리에 얼굴을 맞대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너 좋아해.” 그리고 그게 다였다. 그렇게 간단한 말로 너무나 복잡했던 몇 주가 끝났다. K드라마 사랑 공식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불안이 깃든 안도가 찾아들며 그 모든 계획으로 인한 부담이 사라졌다.
--- p.253
내 여드름을 몹시 가까이에서, 바로 앞에서 보면서도 루카는 여전히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경이로운 듯 이렇게 말한다. 정말 예뻐.
--- p.272
온 미래가 몇 초 만에 지워지는 기분은 기이하다. 마치 우주 같다?엄청난 공허. 투지와 부정 이후에 남겨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 모든 것의 끝에는 당신의 미래였던 블랙홀뿐이니까.
--- p.352
그 순간 깨달았다. 루카와 함께라면 내가 나일 수 있다는 것을. 루카는, 내 기분이 엉망진창이고 함께 있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걸 알아챌 수 있는 사람. 루카는, 내가 아플 때 찾아와주는 사람. 루카는,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는 걸 싫어하는 사람. 루카는, 나에게 마음을 쓰는 사람이었다. 몇 주, 몇 달 동안 이어진 불안감이 한 겹씩 녹아내렸다. 그는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 이제 정말 완성된 것이다. 날개 달린 열쇠로 내 가슴의 문을 열어젖힌 것처럼, 깨달음이 찾아왔다.
--- p.359
“네가 누굴 사랑하는 것까지 통제할 순 없어, 데시. 하지만 얼마나 열심히 싸워나갈지는 언제나 통제할 수 있어, 알았지?”
--- p.378
그 어이없는 규칙과 단계가 적힌 리스트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내가 왜 그토록 그 드라마들을 사랑하게 되었는지가 더욱 와닿았다. 도움이 되거나 목표 달성에 유용한 도구라서가 아니었다. 변명이 필요 없는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터무니없는 사건은 재밌었고, 상투적인 사건은 사람들의 진을 빼놓았으며, 드라마틱한 사건은 드라마틱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일이 잘 풀릴지 안 풀릴지 모를 때도 언제나 꼭 붙어 떨어지지 않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진실한 사랑. 그것은 위험에 관한, 신뢰를 갖는 것에 관한 문제였다. 아무것도 보장된 건 없었다.
--- p.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