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까요, 이런 느낌은? 두려움이 느껴지니까 바로 눈을 돌려야 하는데 희한하게도 계속 바라보게끔 만드는 그 무엇. 이게 뭘까요? 이런 ‘이상한 멋있음(?)’을 미학에서는 숭고미라고 한답니다. 경외감이 묻어나는, 어떤 범접할 수 없는 대상에게서 약간의 공포와 함께 느껴지는 아름다움이죠. 아름다운데 왜 두려운 느낌이 드는 걸까요? 이유는 그 대상을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 무슨 짓을 할지, 어떤 존재인지, 어느 정도인지 모르기 때문에 겁이 나는 겁니다. 공포는 무지에서 기인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무서움은 ‘앎’과 관련되는 감정입니다. (또 하나, 공포의 원인은 고독입니다. 혼자 있을 때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예쁘다’라는 건 뭘까」중에서
칸트 이후로 사람들은 이제 미/추란 결국 사람 마음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이미 오래전에 있었는데 그만 잃어버렸다가 먼 길을 헤맨 끝에 되찾은 게 아닐까 합니다. 제가 보기엔 칸트의 미학적 통찰과 유사한 것이 신화에서 발견되거든요. 바로 그리스 신화의 잘 알려진 삼미신(三美神) 이야기입니다. … 저는 이 신화에서 미의 여신을 판정하는 부분을 눈여겨볼 것을 주문합니다. 이상하지 않은가요? 신의 아름다움을 인간이 선별하다니요! 상식대로라면 최고신 제우스가 판정을 내려줘야 할 텐데 그렇지가 않다는 겁니다. 아니면 제우스가 다른 신을 심판관으로 지목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우스는 신 아닌 하찮은 인간을 심판관으로 내세웁니다.
---「미학은 언제 생겨나 어떻게 흘러왔을까」중에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 유명한 말을 한 사람이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바로 히포크라테스가 한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술’이란 ‘아트art’가 아니라 ‘테크네techne’입니다. … 고대의 예술 테크네는 의술은 물론 방직술, 요리술, 구두 만드는 기술, 하다못해 전술이나 마술까지도 아우르는 넓은 개념의 것이었습니다. 이 모두 이성적 상태, 지식, 규칙 등이 개입되는 행위들이니까요. 오늘날의 예술, 아트하고는 무엇이 다른 걸까요? 현대의 우리에게 ‘예술’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들이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상상력, 영감, 환상, 직관, 개성 같은 것들이 개입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고대의 예술 테크네였던 겁니다. 의술도 테크네였는데, 만약 의사가 상상력을 발휘해 환자의 병을 진단한다거나 수술을 할 때 어떤 환상에 따라하고 독창적으로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상상력, 영감, 환상, 감성 같은 것들은 한마디로 비이성적, 비합리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테크네에서는 배제해야 할 요소였지요.
---「예술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중에서
모방은 예술을 설명하는 아주 오래되고 권위 있는 원리였죠. 근대에 이르러 이 전통은 깨지거나 심각하게 도전을 받게 됩니다. … 예술, 특히 시의 근원은 외부 대상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 영혼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술가의 내면을 예술의 출발지로 보자는 것이지요. 이런 선구자들의 외침과 함께 18세기 이후 예술은 모방에서 표현으로 점차 변화합니다. 이는 예술이 외부 대상 비추기에서 내면의 표출로 돌아섰음을 의미하는데, 미국의 저명한 문학 이론가 에이브럼즈는 이런 현상을 ‘거울과 램프’로 비유합니다. 과거 모방 원리의 예술이 외부 대상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근대 이후 표현 원리의 예술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램프라는 것이죠. 인간의 정신은 이제 객관적인 세상을 반영하는 수동적 지위에서 벗어나 스스로 외부를 밝히는 능동적인 것이 되었다는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예술작품 창조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중에서
또 다른 시각에서 볼 때, 잘된 예술작품이란 개별적인 것을 통해 보편적인 것을 성취해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 자신만의 새롭고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되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 개별과 보편의 결합인 셈입니다. 이것을 성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너무 강조하면 작품이 예술가 개인의 특수한 것이 되고 말아 널리 공감을 얻는 데 실패하고, 반대로 보편성에 지나치게 치우치면 자신만의 고유한 시각을 제시하는 데 실패하여 뻔하고 식상한 작품이 되고 말지요. 위대한 명작은 흔치 않은 법입니다. 예컨대, 피카소의 ?게르니카 Guernica? 같은 경우가 여기에 성공한 명작입니다. 작가만의 개성적인 목소리로 우리 모두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훌륭한 작품이란 어떤 것일까」중에서
현대예술의 특징 중 하나는, 실제 그려놓은 것은 빈약한 데 비해 거기 동반되는 설명은 넘친다는 점입니다. 극단적으로, 유명 화가가 캔버스에 달랑 점 하나만 찍어놓아도 이론가들이 구구절절 그럴듯한 철학적 해설을 곁들여줌으로써 어엿한 미술작품이 됩니다. 빈약한 형상을 관념적으로 포장하고 보충함으로써 작품이 되는 것이지요. 이론가들의 지원사격이 동원되지 않는다 해도 그렇습니다. 작품에서 실제로 감각되는 것은 별로 없는데 거기 관련된 관념은 차고 넘칩니다. 과거의 예술은 어떤 기막힌 솜씨의 경합이었는데 이제는 관념적인 사유의 경합 또는 기발한 아이디어의 경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즐기던 것이 생각하고 고민해봐야 하는 것으로 바뀐 겁니다. 예술이 철학이 된 셈입니다. 그러니 관객들이 어렵다고 느낄 수밖에요. 예술의 묘사 대상을 밖에서 안으로 전환시킨 데 따른 후폭풍이랄까요. 20세기 초에 일어난 표현주의는 현대예술에 끼친 영향이 엄청나다 할 것입니다.
---「현대예술은 왜 이해하기 어려운 걸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