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는 우리가 살고 있으면서도 잘 알지 못하는 빛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물 위에 어른거리는 달의 은빛, 해질녘의 마지막 붉은 빛, 등불 밑 고양이의 털빛, 어두운 방에 켜진 촛불 속 동그란 불빛 ― 이 모두는 늘 우리 곁에 있지만 간접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대상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작품들은 놀라운 시각적 여행의 기록을 남긴다. 석탄 채광소와 플란다스 지방의 어둠에서 시작해, 물체와 색채가 무게, 밀도, 굴절, 움직임에 의해 놀랍도록 재평가되어 인식되는 남부 프랑스 지방에 이르는 여행이다. 빛은 흩어지고, 발산되며, 때론 하나로 모아져 태양의 두꺼운 노란색 광선처럼 빛난다. 그가 죽던 달에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 쓰인 강렬한 노랑은, 잔뜩 찌푸린 하늘과 대비되어 주위를 둘러싼 어둠에 맞서는 생명력을 부여한다.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빛의 선물인 색色 자체가, 고흐에게는 걱정스런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자신의 소명을 듣고 그에 “예”라고 답한 사람의 담대하고 기쁜 선언으로 가는 길을 제공해 준 것이다.
그리고 고흐 역시 우리에게 같은 초대를 남겼다. “예”라고 답하라. 그의 그림들은 우리의 동의를 구하고 있다 ― 쥐고 있던 것을 놓고, 생각의 틀을 바꾸며, 다시 한 번 상상하고, 자세히 살펴보며, 끝내 꿰뚫어볼 것을. 우리가 보는 대상을 명사名詞 가 아닌 동사動詞로 만들기 위해, 또 올리브 나무 속에 깃든 생의 의지와 보랏빛 야생 아이리스가 자라는 강둑을 깨닫게 하기 위해.
반 고흐가 삶의 마지막 고비 속에서 그려낸 그림들에 대한 명상에서 비롯된 이 책의 시들은, 그가 영적으로 가장 힘겨웠던 시간들에 대한 내 조용한 동의의 몸짓이기도 하다. 이것은 결코 학문적인 코멘트가 아닌, 다만 나로 하여금 사물을 새로운 빛 가운데 볼 수 있게 해 준 그 값없는 선물에 대한 감사의 표시다.
---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