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언젠가 지게 마련이고 삶은 언젠가 시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비극과 종말의 시간 뒤에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개화가 있다는 것은 진정으로 자연의 축복이요 기적이다. 종말이 꼭 종말인 것은 아니며, 비극이 꼭 비극인 것은 아니다. 그림자가 없이 빛이 있을 수 없고 빛이 없이 그림자가 있을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새벽이 진정으로 그리운 이라면 밤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할 거이다. 밤이 있기에 새벽이 있으니까.
저리도 어여쁜 꽃이, 저리도 아름다운 미인이 끝내 흙이 된다는 것, 그것이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홍순정의 작품을 볼 것이다. 또 저리도 무심한 흙이, 저리도 메마른 먼지가 언젠가 아름다운 꽃이 되고 어여쁜 미인이 된다는 것, 그것이 믿어지지 않는 사람도 홍순정의 작품을 볼 것이다. 그의 꽃은 흙이며, 그의 흙은 꽃이다.
―제1부 흐르는 물처럼 「꽃비 내리는 날」 중에서(본문 65쪽)
강경구는 숲을 즐겨 그린다. 마음의 숲이다. 당연히 그 숲은 특정한 시공간에 존재하는 숲이 아니다. 다소 거칠고 서툰 듯한 붓길로 그려진 그 숲은 소박하면서도 단순한 세상을 꿈꾼다. 복잡한 전략과 이해타산이 존재하는 세속적 욕망의 숲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가난한 숲이다. 그 숲이 화면을 다 메우다 못해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의 ‘올오버 페인팅(전면 회화)’처럼 끝없이 펼쳐지는 것은 관객에게 영원으로 이어질 기분 좋은 산책로를 제공하는 것이다. 관객은 이 소박하고 가난한 숲에 둘러싸여 걸으면 걸을수록 순수해지는 자신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제2부 마음의 풍경「내 안의 숲」 중에서(본문 71쪽)
진실을 지키는 일이란 이 구조가 지닌 비인간성과 모순을 폭로하는 일이다. 그것은 외롭고 힘겨울 뿐만 아니라 때로 공포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진실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야 하는 것은 저 차가워진 주검들을 더 이상 욕되게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실을 위해 내가 투쟁하는 것은 저 천국의 면류관이 탐나서가 아니라, 저렇듯 버려진 동료 인간의 차가운 몽뚱어리를 더 이상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광주와 80년대를 나름의 고통 속에서 겪은 작가가 그 시대를 위해 바치는 진혼곡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제3부 뭐가 보입니까? 「진실을 위한 진혼곡」(본문 215~2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