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는 검둥이를 숨길 만한 데를 찾았다. 참나무 고목의 구멍이 눈에 띄었다. 참나무 구멍에 마른 풀잎을 깔고 검둥이를 앉혔다. 이곳이라면 할머니의 눈길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송화는 참나무 고목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팔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서 피곤한 몸을, 솔내음 실은 바람이 어루만졌다.
''내 이름 송화는 소나무꽃이란 뜻이래.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 얼굴이 소나무꽃처럼 노오랬대. 니 이름이 검둥이인것처럼. 참, 니 진짜 이름은 뭐니? 니네 집은 어디야? 다리는 왜 다쳤고...... 니가 말을 할줄 알았으면 좋겠다. 너도 답답하지, 그치?''
송화가 손가락으로 검둥이의 턱밑을 간지럽혔다. 검둥이는 사르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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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 너머로 흰 눈 이불을 덮어쓴 나무와 집들이 떠밀려 갔다. 눈에 덮인 안들과 절골산이 등허리를 잡아당기는 듯, 송화는 자꾸 뒤돌아보았다.
아버지가 라디오를 켰다. 할머니와 송화의 말 없는 속에 바어지 혼자 콧노래를 불렀다.
먹, 새터 다리를 달릴 때였다. 영기가 검둥이를 데리고 나와 연을 날리고 있었다.
"잠깐만요. 저기 검둥이가 나와 있어요."
송화가 차창에 바싹 얼굴을 갖다 대었다. 연 꼬리에 굵다랗게 쓴 글시가 너울너눌 춤을 추었다.
" 잘 가, 송화야. 안녕.'이라고 씌어 있구나."
아버지가 싱긋 웃으며 돌아보았다. 영기 곁에 아무것도 내밀고 마주 손을 흔들던 송화가 무릎 짬에 얼굴을 묻어 버렸다.
"제 살붙이하고도 떨어져 사는 세상인데 그깟 짐승하고 이별이 별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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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가 부럽다, 우리 아버지 술주정이 얼마나 고약한지 니가 몰라서 그래. 술만 먹으면 아무나 보고 욕하고 때리고 부수고.....그래서 울 엄마도 도망갔잖아. 이건 비밀인데....."
영분이가 갑자기 말소리를 낮추고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송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 난, 울 엄마 있는 데 알어. 서울 외삼촌 집에서 일하는데 돈 벌면 나랑 영희랑 데려간댔어. 아무도 몰래 도망갈거야. 아버지가 알면 쫓아와서 우리를 죽일지도 몰라."
송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영분이의 비밀을 지켜 주겠다고 속다짐을 하였다. 무당집 아이라도 따돌리던 영분이가 자기에게 비밀을 털어놓은 것이 고맙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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