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 요절한 시인에게는 특권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 젊음이나 순결을 그대로 동결시킨 것 같은 맑고 깨끗함이 후세의 독자까지 매료시켜 항상 수선화와 같은 좋은 향기가 풍긴다. 요절이라고 하지만, 윤동주는 사고나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 바로 반 년 전, 만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처음에는 릿쿄대학 영문과에 유학, 이윽고 도지샤대학 영문과로 적을 옮겼고, 독립 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시모가모 경찰에 붙잡혀 후쿠오카로 보내졌다.
거기서 매일 정체 모를 주사를 맞다가 죽기 직전, 모국어로 어떤 말을 큰 소리로 외친 후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 말이 무엇인지, 일본인 간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동주 씨는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큰 목소리로 외치다가 절명하셨습니다” 라는 증언은 남았다. 말하자면 일본 검찰의 손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다. 통한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 시인 가까이에 다가설 수 없을 것이다. 윤동주는 일본인 스스로 그 죽음의 전모를 밝히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의 존재를 알았기 때문에 나도 조금씩 윤동주의 시를 번역하기 시작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9년째가 되는 1984년에 이취향 씨에 의해 그의 시 전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완역되었다.
내 의욕은 꺾였지만, 이취향 씨의 훌륭한 번역과 연구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스러운 동요까지 일본어로 읽을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기뻤다. 윤동주의 원시를 아는 사람은 예사가 아닌 노작(勞作)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윤동주의 배경을 알기 위해 철저하게 발로 걷고 조사한 그 정열에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그가 유학했던 도쿄, 교토, 후쿠오카 형무소 등 그 족적을 거슬러 올라가며 80대가 된 전직 특별 고등 형사와도 만나는 등 모든 노력을 동원했지만 끝내 옥사의 진상을 밝혀낼 수 없었다고 적고 있다. 안타깝지만, 전모를 밝히고자 했던 그 실증 정신은 신뢰할 수 있다. 언젠가는 부정할 수 없는 확고한 증거를 찾아 명료해졌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도 있다. 이취향 씨가 보았던 곳, 조사하는 과정에서 느낀 일본 검찰의 높은 벽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윤동주의 죽음은 40여 년 전의 일이다. 왜 그렇게 비밀주의, 은폐주의로 일관하는 것일까.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진지한 연구자에게는 자료를 더욱 많이 공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pp.215-217, 5장. 역사에 깃든 한국문화의 표상들, 「비운의 청년 시인, 윤동주」 중에서
고대어가 남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고대어 그 자체가 이웃 나라 말과 자매어였다고도 할 수 있다. 언제 분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어, 조몬 시대라고도 야요이 시대라고도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확실히 알 수 없는 모양이다. 그저 쇼나이 지방뿐 아니라 이즈모, 호쿠리쿠, 에치고, 데와, 아키타, 쓰가루 등 동해 부근의 지방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이웃 나라와 깊은 인연이 있는 듯하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하지만, 의외로 보수적인 측면도 있다. 특히 방언에서 그 보수성을 찾아볼 수 있는데, 도호쿠의 쇼나이 사투리를 벗어나, 다른 지방과 대비한 부분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한글일본 방언 일본어 의미사용 지역
-줘얏테, 쵸해줘나고야
벌다보루, 봇타나(돈을) 벌다각지
달리다타리이, 후다루이기력이 없다, 따분하다나가노, 기후, 아이치
마려워시코마루, 시코마리따이화장실에 가고 싶다아이치, 시즈오카, 나가사키, 이와테
안기다안키다마음이 편하다미카와
총각총가아젊은 독신남머리 모양인 ‘총각’의 음. 방언이 아닌 공통어인지도 모른다.
바보아호바보각지
언어학의 엄밀한 음운 법칙에 비춰 보면, 일본어와 이웃 나라 말이 대응되는 경우는 거의 200개 정도밖에 없다고 해서, 그 적은 수에 놀라게 되지만, 일본 각지의 방언을 포함한 대비라면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규슈 사투리나 간사이 사투리에서도 많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귀에 익숙한 말이 아니라 아무래도 내 안테나에는 걸리지 않고, 내가 자란 미카와 지방, 어머니 쪽 고향인 도호쿠 사투리만이 삐, 삐, 삐 하고 반응해 왔다. 상당수가 우연의 일치,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같은 뿌리라고 짐작하게 하는 것들도 있다.
초보의 방담을 겁도 없이 적는 것은 내 마음속 어딘가에, 언어는 곧 모두의 공유물이며, 언어학자만이 다룰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좀 더 제멋대로 떠들기도 하고 논하기도 해도 된다, 하는 생각이 잠복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웃 나라 말에도 사투리가 있고, 사전에도 실리지 않은 이들을 포함해서 생?하면 아직 발굴되지 않은 에메랄드 광맥을 어렴풋하게나마 발견한 것 같은 두근거림을 느낀다. --- pp.93-94, 2장. 일본어와 한글 사이,「일본 사투리와의 묘한 앙상블」 중에서
한국의 여자들은 밥상에 앉을 때, 무릎을 세우고 앉는 것이 정식이기 때문에, 한쪽 무릎을 세운 채 밥을 먹는다. 치마 아래에는 바지 모양의 속옷을 입고 있고, 치마는 풍성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조금도 지장이 없지만, 청바지를 입고서도 무릎을 세운 자세로 식사를 한다. 롱스커트를 입고 있는 여성이 많은데, 이것도 평소의 식사 양식과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치마와 롱스커트는 같은 것이다. 타이트한 스커트라면 어떻게 자세를 잡아도 곤란할 듯싶다.
일본에서는 식사 시에 자세가 밥상이나 테이블 쪽으로 가까이 기울어지는 것은 ‘이누구이(犬食い, 개처럼 고개를 숙여 먹는다는 말)’라고 하여 천히 여기는데, 왼손을 쓰지 않고 오른손만으로 식사하고 몸통이 음식 쪽으로 가까이 가 버리는 한국의 식사법은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이누구이’로 보인다.
여자가 한쪽 무릎을 세우고 먹거나 하면 일본에서는 반드시 “버릇이 없구나!” 하면서 누군가의 꾸짖음이 날아들 것이 분명하다. 오랜 세월 이어진 습관이나 미의식의 차이를 가늠하다 보면,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라 하더라도 습속의 차이가 이렇게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가정에서 손님을 대접할 때, 부인은 객석에 있으면서 술을 따르는 일이 없다. 대접은 오로지 주인의 몫이다. 유녀와 선을 긋는다는 의미인 모양이다. 인사를 하거나, 자리에서 잠시 대화를 나누는 정도가 손님을 대하는 주부의 몸가짐이다.
남성이 상대에게 술을 따를 때, 반드시 왼손을 오른손 팔꿈치 근처에 대는 행동도 독특한 것으로 내게는 이 행동이 굉장히 절도 있고 아름답게 여겨졌다. 옛날, 양반들이 음주를 즐길 적에 왼손으로 긴 소매를 여몄던 게 이 자세의 기원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지금까지 남아 있는 양반의 풍속 중 하나일 것이다. 일본에서도 기모노를 입고 술을 따를 때에는 자연스럽게 그러한 모양이 된다. 양복이나 와이셔츠 차림의 남성이 해도 폼이 나는 게 보기 좋다. 거스름돈을 내밀 때 이렇게 행동했던 젊은 아가씨가 있었는데, 이 역시 아름다워 인상에 남았다.
사람에 대한 동작에는, 한손보다는 양손을 쓰는 편이 예의바르고, 게다가 양손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왼손을 살짝 오른쪽 팔꿈치에 대는 그 언밸런스한 선이 아름답다고 느끼고 나서부터는, 나 역시 이 매너를 이따금 흉내 내기도 한다. --- pp.151-152, 4장. 여행길에 마주친 풍경, 「식사는 ‘푸짐하게, 절도 있게, 신명나게’!」중에서
불고기가 워낙 유명한 탓에 한국 요리는 고기 요리가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상 메뉴는 채소 요리가 중심이고, 요리 방법도 다양하다.
김치는 절임 음식인데, 마늘, 고춧가루, 새우젓, 멸치젓, 생굴, 배, 채 썬 무, 밤, 대추 등을 함께 버무려 배춧잎 사이에 이 양념을 채워 만든다. 자연의 발효 작용을 이용해 각종 비타민과 유산균이 합성되는 구조이다. 소금이나 된장에 살짝 절인 것과는 전혀 다른, 복잡한 맛의 하모니를 이룬다.
가정마다 김치를 담그는 방법이 제각각이고 그만큼 맛도 천차만별인 모양인데, 고춧가루의 강력한 펀치에 정신을 빼앗겨 버리는 까닭일까, 먹어보고 그 특징이나 차이를 판별하는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김치 맛에 까다로운 사람들도 많아서 제 어머니가 담가야 진짜 김치, 다른 건 가짜 김치라고 호언하는 남성도 많았다. 어머니의 손맛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 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잡곡의 활약도 눈부시다. 밤, 수수, 피, 보리, 대두, 팥 등은 밥이나 죽, 떡, 과자 등에 풍부하게 쓰인다. 대용식의 하나로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맛을 조화롭게 활용해 밥을 짓는다. 오곡밥이 그 예로, 쌀로만 밥을 받드는 것이 아니라 오곡을 골고루 집어넣어 영양과 풍미를 배가시킨 게 특징이다.
서울에는 동대문 시장, 남대문 시장이라는 큰 시장이 있고, 이곳의 활기는 압도적이어서 눈이 핑핑 돌 정도다. 오곡을 비롯해 어패류, 건어물류, 육류, 돼지머리, 채소류, 의류, 생활에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춰져 있다. 말하는 가격대로 사는 건 바보인 듯, 가격 흥정은 필수이다. “깎아주세요” 하고 에누리를 시도하면 대개는 값을 깎아준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그렇게 비싸면 사지 않겠어요” 하는 표정으로 손님이 떠나려 하면 가게 주인이 먼저 에누리를 제안하는 경우도 많다.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은 꽤 볼 만한데, 쌍방이 서로 이 과정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럭비처럼 서로 부딪치고 에누리를 하는 동안 시장에는 활기가 넘쳐흐르고 사람 냄새 자욱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 pp.159-161, 4장. 여행길에 마주친 풍경, 「마늘과 잡채, 김치의 비밀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