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꿈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아직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사는 것은 어떤 꿈이 우리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갖는 대부분의 두려움은, 내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상실할 때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내 인생의 마당에 임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 인생이 사면초가 같아도 언제나 하늘은 우리를 향해 열려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단순한 인간적 야망으로 인생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마음의 충동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인생 이상으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고 싶다면, 창조주가 설계하신 최선의 인생을 갈망한다면, 지금 당장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엎드려 하나님의 인도를 구해야 합니다.
-비전과 야망은 다른 것입니다. 인간적인 야망은 단순히 우리의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성경적인 비전은 우리의 기도에서 태어납니다.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노래는 노래할 때까지 노래가 아니고, 사랑은 사랑할 때까지 사랑이 아닙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할 때까지는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기도가 바로 믿음을 경험하게 하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우리에게 가장 먼저 주어지는 선물은 자유입니다. 이 자유는 죄책감으로부터의 자유요, 형벌로부터의 자유요, 우리를 압박하던 모든 관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분의 땅에 떨어지심, 그분의 희생과 죽음, 그로 말미암아 오늘날 무수한 성도가 열방 중에 그분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이웃과 주님의 사랑을 나누고 그들로 복음을 듣게 하는 최소한의 수고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마저 주저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전도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축 늘어진 개구리처럼 삶의 의욕을 잃고 무언가를 찾고 있는 이웃을 긍휼히 여겨서, 그들의 영혼에 키스해 주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인들의 영혼에 키스해 주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하나님의 왕자와 공주로 태어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은혜’의 뜻이 무엇인가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도 일방적으로 조건 없이 베풀어지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 이 은혜로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아기는 엄마에게 젖을 달라고 보챕니다. 엄마의 젖은 아기의 생명 줄이요 건강 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목마름과 배고픔을 아직도 갖고 있나요?
-성서적 가정의 권위는 하나님입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을 함께 섬기며,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사랑합니다. 은혜가 다스리는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함께 모시기로 선택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억울하게 달리시면서도 우리를 용서하시고 축복하신 분입니다. 십자가를 준비하시면서, 마지막 만찬에서 떡을 떼며 잔을 나누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감사로 구원받은 빚진 인생들입니다.
-예수님만이 소망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인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예스(Yes)이십니다. 즉, 삶의 긍정이요, 인간에 대한 긍정이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삶을 믿고 긍정하십시오. 인간을 믿고 ‘아멘’ 하는 삶, 긍정의 삶을 사십시오.
-우리는 어떻게 긍정의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요? 해답은 명확합니다.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고, 날마다 성령의 감동으로 산다면 이 냉소적인 부정의 광야에서도 요셉처럼 긍정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인생의 시간은 우리를 기다리지 않고 저물어 갑니다. 좁은 마음으로 등을 지고 있던 가족, 친지, 교우가 있나요? 대화를 시도하세요. 편지를 쓰세요. 중보 기도를 하세요.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세요. 넓은 마음으로 그들을 품으세요. 주님이 그분에게 상처를 준 나를 품으시고, 대신 십자가에 달려 용서하시고, 축복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은 넓은 마음, 주님의 마음을 선택할 시간입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