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어떤 사람에게 선을 잇고 어떤 언어에 줄을 그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다. 세상의 많고 많은 말들 중에 내가 밑줄을 그은 말들이 나의 언어가 된다. 이 책 안에 쓸모 있는 문장들이 있어서 단 몇 줄이라도 그대의 것이 된다면, 나는 메밀꽃처럼 환히 흐드러지겠다.
--- 「Prologue - 내가 만난 최고의 문장」 중에서
‘믿는다’는 말은 진짜 믿기 어려운 말이다. 예전에 나도 참 많이 쓴 말인데 이 말에 점점 거리를 두게 되었다. ‘이 좋은 말을 왜?’ 하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실상 이 선량한 말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늘 그렇듯이 본뜻과 달리 왜곡해서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다. (…) 나는 믿는다는 말의 속뜻을 헤아려보았다. 약속을 지켜라, 기대를 저버리지 마라, 실망시키지 마라, 내 뜻을 거스르지 마라, 기필코 해내라.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이토록 숨 막히는 말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버젓이 해대고 있었다.
--- 「믿는다는 말에 대하여」 중에서
바쁘다고 핑계를 대고 만나주지 않는 사람과 바쁘더라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는 사람의 차이가 관계의 진정성을 가른다. 시간이야말로 확실한 진심의 지표다. 오늘 생을 마감하는 사람에게 내일이라는 시간은 전 재산을 주고도 사지 못하는 가치를 지닌다. 우리 모두는 시간 앞에서 유한한 존재들이다. 내가 가진 시간의 양이 목숨이다. 그러므로 내가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고 있다는 말은 내 목숨의 일부를 내주고 있다는 의미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을 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도 내 목숨이 사용된다. 그래서 인생에서 시간은 어느 것에 더 목숨을 소비하고 사용했느냐의 결과를 말한다.
--- 「진심을 알아보는 법」 중에서
돌이켜보면 우리의 사랑이 실패한 이유는 상대방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었다. 내가 쓰는 언어와 다르지 않다고 판단해 모든 것을 내 관점에서 말하고 내 언어 체계로 이해하려 들었다. 상대의 말을 그만의 은어라고 여기지 않았다. 탐구하며 배우려 하지 않았고 시간과 인내가 소요되는 일임을 고려하지 않았다. 자꾸 다른 데서 관계의 하자를 찾으려 했으므로 실패를 반복했다. (…) 은어를 직역할 수준이 됐을 때, 드디어 우리는 속삭일 수 있게 된다. 아주 낮은 목소리로도 몇 마디의 짧은 밀어로도 사랑의 본질에 닿을 수 있게 된다.
--- 「은어의 세계」 중에서
우리는 매일매일 말의 연금술에 몰두한다. 오늘 어떤 사람은 당신이 미치도록 보고 싶다는 화학의 말로 상대의 심장을 설탕물같이 녹이는 데 성공하고, 어떤 아이는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예쁘다는 화학의 말로 엄마의 허파에 헬륨가스 같은 물질을 불어넣는 데 성공한다. 어떤 말들은 일산화탄소를 잔뜩 머금고 있다. 그 말들은 색깔도 향기도 맛도 없이 스며들어 숨 막혀 죽게 만든다. 살려면 신선하고 맑은 말을 쐬어야 한다. 활짝 열리는 창문 같은 사람을 만나 마음을 환기해야 한다.
--- 「언어의 화학」 중에서
모든 인생은 와중이나 도중이나 진행 중에 있다. 그 삶이 끝나면 더 이상 중을 쓸 수 없다. 죽음에는 중을 붙일 수가 없다. 입원 중, 수술 중, 회복 중의 반대는 사망이나 영면이지, 사망 중이거나 영면 중은 없다. 그래서 살아서 하는 모든 행위는 ‘중’이다. 그게 너무 당연해서 중을 생략한다. (…) 나는 지금 어떤 도중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 와중인가? 인생이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모아놓은 것이다.
--- 「삶에 응답하는 중」 중에서
“사랑해.” 사랑의 관성을 알아채는 때가 있다. 설렘도 없고 눈빛도 흔들리는데 입에서는 사랑한다고 나간다. 사랑에 대한 모독이 분명한데 무슨 사정인지 사랑의 실낱을 붙들고 있다. 이 말이 사랑의 현재가 아니라 사랑해야 한다는 의지를 다잡는 말일 때, 아플까 봐 이별을 늦추고 있는 말일 때,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린 사랑의 그림자를 본다. 아득하고 공허한 사랑의 발설, 아직은 사랑이라고 믿고 싶은 미련의 잔량. 그 사랑은 거짓말이면서 지독한 연민이다.
--- 「그 거짓말, 정말인가요」 중에서
우리는 적당히 외로웠어야 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적당히 생산해내고 적당히 소비했어야 했다. 마음이 오고 가는 궤도를 파괴하고, 서로 숨 쉴 수 있는 존중의 거리를 무시했다. 모든 개체는 생존 공간이 필요하고 상생을 위해 지켜야 할 경계가 있다. 각자의 궤도가 있다. 그 물리적 거리는 가깝게 느껴지거나 멀게 느껴지는 감각의 차이가 있을 뿐, 결코 변하거나 사라진 적이 없다. 우리는 독립된 행성이기에 각자의 궤도를 돌며 자기의 위치에 존재한다.
--- 「우리는 적당히 외로웠어야 했다」 중에서
주기적인 보살핌 혹은 기계적인 관심, 나는 이것을 정확한 사랑이라고 부른다. 이 사랑은 정해진 약속을 잘 지키면 유지된다. 상당히 편리하고 예측 가능해서 괜찮은 사랑법이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걸까. 식물이나 사람은 변화무쌍한 날씨 같은 존재들인데. (…) 정확하게 말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관리다. 양육이 아니라 사육이다. 식물 화분이 내게 오면 요즘은 끊임없이 묻는다. 네 이름은 뭐니? 넌 어디서 왔니? 네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니? 네 친구들은 누구니? 내가 널 어떻게 해주길 바라니? 그러면 식물은 조금씩 자기에 대해 들려준다. 잎이나 꽃으로 신호를 보내오기도 한다. 그럴 땐 가슴이 좀 뭉클해진다.
--- 「식물의 은어」 중에서
좋아하는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은 자주 망설인다. 그것 앞에서는 마음도 행동도 쉽게 결정하지 못해 머뭇거리곤 한다. 이런 유보적이고 우유부단한 태도는 사람들 사이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결단력과 추진력이 있어야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그런데 무언가를 아끼는 사람에게 이 머뭇거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이런 사월의 행간이 필요하다. 모든 관계가 직선 구간처럼 시원하게 거침없이 뚫려 있으면 좋겠는데, 조금 돌아가야 하고 조금 참아줘야 하고 조금 기다려줘야 하는 커브 구간이 있다. 지리 시간에 배운 게 있다. 기름진 삼각주는 유속이 빠른 강 상류가 아니라 하류의 느린 커브 지대에 형성된다. 머뭇거리는 마음의 하류에 퇴적되는 아름다운 관계를 나는 ‘봄’이라고 부른다.
--- 「주저하는 마음」 중에서
삶은 더하기인 줄 알았다. 무엇이든 가지고 무엇이든 배우고 무엇이든 채우려고 했다. 그런데 더할수록 비어 있음이 많이 보였다. 인생은 더하고 채우는 것이 아님을 점차 알게 됐다. 과식이 비만을 데리고 와서 나를 가르쳤다. 빼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자 또 빼는 일에 과욕을 부렸다. 살도 점도 사랑니도 무분별한 관계도 뺐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애초에 덜 가지는 게 더 현명한 일이라는 것을.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글을 쓰면서 열심히 뺀다.
--- 「빼기의 미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