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을 그리면서 스님께서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들이쉬고 내쉬고, 높음이 있으면 낮음이 있고, 젊음이 있으면 늙음이 있고. 보이는 모든 것이 다 그렇죠. 나고 죽고 나고 죽고….” 그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집중하고 있던 노블 교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스태프들에게 통역을 해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다. “알아들을 것 같아요. 스님, 지금 생명의 순환에 대해 말씀하시는 거죠?” 그리고 한동안 각자의 언어로 기이한 대화를 이어갔다. (중략)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 순간 나는 인간이 쌓아 올린 모든 장벽은 충분히 우리 스스로 무너트릴수도 있다는 것, 그렇게 무너트린 벽 너머에 새로운 소통의 차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질문들」중에서
여기 아주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있어요. ‘저 나쁜 놈.’ 부처님도 이것까지는 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거기서 더 나아갑니다. ‘저 나쁜 놈’ 하면 곧바로 분노, 증오, 적개심이 이어지죠. 소위 정의감이 강하다는 사람일수록 그런 감정이 더 강하게 표출됩니다. 이게 두 번째 화살인 거예요. 이렇게 두 번째 화살, 세 번째 화살을 맞으면 점점 나의 고통이 불어납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사소한 시비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죠.
---「1부 | 삶은 왜 괴로운가?」중에서
훗날 제가 좌절한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해보니,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깨달음이나 참선 수행을 잘못 이해하고 접근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선방 안에 틀어박혀서 좌선하고 용맹정진하고 오랜 시간 도를 닦으면 뭔가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믿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그런 깨달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략) 깨달음에 자꾸 신비한 의미를 부여해서 아주 특별하고 대단한 무엇인 것처럼 여기도록 만들었던 거예요. 분명 깨달음은 있습니다. 하지만 환상적이고 신비하고 심오한 깨달음 같은 건 없습니다.
---「1부 | 삶은 왜 괴로운가?」중에서
우리는 죽음과 함께 생명이 끝난다고 믿는 사고방식 때문에 극심한 슬픔과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윤회설 같은 온갖 가짜 이야기들을 만드는데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와는 다른, 또는 진짜에 대해서 잘못 알거나 무지해서 만들어낸 이야기를 우리는 진짜처럼 받아들이고, 거기에 길들여져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두려워하고 전전긍긍하는 겁니다.
---「1부 | 삶은 왜 괴로운가?」중에서
오른손과 왼손은 나라는 한 몸을 기준으로 보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손으로 보면 두 개인 거예요. 그렇다면 이걸 하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관점에 따라 하나이기도 하고 둘이기도 한 거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이와 같은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너와 내가 서로 독립된 존재이기만 한 게 아니라, 동시에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 결국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는 거죠.
---「2부 | 나는 누구인가?」중에서
이 세상에 또 다른 나는 절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특별해요. 모든 삶은 귀중한 거예요. 자신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고 진지한 태도로 삶을 대해야 합니다. 스스로 자기 삶의 방향을 찾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해요. 이런 생각은 불교 철학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만난 스님들께서는 “부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어찌하라고 말씀하신 게 아니라,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에 책임감을 가지라고 하셨다”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2부 | 나는 누구인가?」중에서
문제는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은 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나 집착, 그 행위에 따른 보상이나 기대 같은 탁한 마음이 일어나면, 그에 고통스럽게 얽히게 되는 거죠. 걱정이나 불안, 이기심, 괴로움은 본래 마음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음에 때가 묻게 된 거죠.
---「3부 |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중에서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려 노예로 살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창조하는 주인으로 사는 것이 옳은 길이다. 너의 삶은 네가 마음먹고 행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네 마음대로 해라.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습니까? 신한테 묻지 않아도 괜찮고 사주팔자 안 따져도 괜찮고 전생에 죄가 있나 없나 하고 시시비비 안 따져도 괜찮고. 놀랍지 않습니까? 신의 종으로, 운명의 종으로 살지 않아도 되는 거죠.
---「4부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중에서
유전자라는 건 좋고 나쁜 어떤 이분법적인 존재가 아니고 이기적인 존재는 더더욱 아닙니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존재 역시 그렇습니다. 시스템 생물학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그런 사실들을 쉽게 깨닫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자연은 경쟁이 아니라 협동 속에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4부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