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가 사는 이 사회는 평등하지 않을까? 무엇을 위해 나는 공부하는 걸까? 이 사회를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는 도대체 누구일까? 강의실 밖에도 모두가 더불어서 행복하게 사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는 없을까?’ 몸 속에서 이런 질문들이 뒤섞이고, 나라는 존재가 세차게 흔들렸다.
--- p.30, 「1장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 중에서
서울에서 혼자 이렇게 살라고 했으면, 반나절도 안되서 분명 포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살아오던 삶의 방식과 전혀 달랐음에도, 어렵지 않게 이곳의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
--- p.60~61, 「2장 어떻게 살고 싶은가」 중에서
“저는 생태마을에서 사는 삶이야말로 페미니스트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과거 한국 여성들은 자신을 표현하며 살아가기 어려웠고, 사회적으로 많은 억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성들에게도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기회가 일상에서 자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p.100, 「3장 평범한 삶에도 가치가 있을까」 중에서
그 어느 때보다 국경을 넘나드는 셀 수 없이 많은 음식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이제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접하고 그곳에서 내면을 채우는 경험을 하는 데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 p.133, 「4장 아이는 무얼 보고 자라는가」 중에서
생태마을 프로젝트 이후 핀드혼 마을 사람들의 개인당 평균 생태발자국(음식, 주거, 에너지, 여행, 소비품, 자본 투자 등 포함)은 2.71GHA(global hectares)로 영국인들의 평균 생태발자국인 5.1GHA에 비해 약 50퍼센트 적은 수치로 조사되었다.
--- p.161, 「5장 나와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은 뭘까」 중에서
생태마을에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중요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10년 사이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듯 지구는 급속도로 파괴되었고, 이제 지속이라는 단어로는 더 이상 파괴된 자연환경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생태마을 사람들은 이제 ‘지속가능성’ 대신 ‘regenerative’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회생하는, 소생시키는, 재생하는’이라는 뜻이다.
--- p.202, 「6장 자연과 인간은 회복될 수 있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