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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고을 제13선집

: 봄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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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4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528쪽 | 626g | 132*212*22mm
ISBN13 9791192635224
ISBN10 119263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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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말 한마디
느낌 한구석

폭풍 전야
공감대

사랑의 회오리
뿌리마저 흔드는

또 다른
사랑 공식

이젠 포기했어

너의 눈으로
너의 속으로
나를 던진다
--- 「폭풍 사랑/ 강원빈」

늦은 밤
현관문 열리고
피곤한 모습으로 퇴근하는 아들

주방에 있는 아내와
소파에서 책을 보고 있는 나에게
번갈아 가며 포옹을 한다

멋쩍어 한마디 했다
“울 아들! 무슨 일 있니?”

“결혼 준비하면서
우리 엄마 아빠가
얼마나 감사한 존재인지 알았어요
제가 참 행복한 아들 맞죠?”

행복의 의미를 알아가는 아들
긴 겨울밤이
너로 인해 짧아졌다
--- 「행복 / 김선규(담현)」

밤새 빗소리는 심지를 헤집어
내 속에 작은 틈도 남김없이
그리움으로 채운다

너를 안고
하루를 견뎌 볼까
너에게 깃든 시야를
잡아두고 주저했다

남은 밤은 여전히 소중한 고독
하염없이 흐르는 고백
봄이 오는 소리에 내내 설친다

지난밤 그리움은 산수유 터뜨리고
오늘 나를 키운 건 시작도 끝도 봄비
--- 「봄비 / 염혜원」

이 비 그치면
목련 개나리 진달래
시새워 피어날 꽃밭

푸른 보리밭 길
종달새는 무어라
속삭일까

일시에 쏟아지는 봄의 향연
목마름에 눈 뜨려는 빗소리
기다리는 생명은
봄비를 흠모하며 부활을 엮는다
--- 「봄비 / 신기순」

[시조]

달빛이 빚은 호수 은어들 춤춘다
낚싯대 세월 펼치니 가장의 무게 손맛 쓰다
천 갈래 한숨 망태기 천근만근 펄떡인다
--- 「무게 / 해연 김순호」

[동시]

사자 같은 세훈이가
머리 치며 놀릴까 봐
여우 같은 영철이가
눈 흘기며 깔볼까 봐
자리를 뜨지 못하고
너와 놀고 있다.

반 애들은 왕따라고
멀리해도
넌 나의 친구
넌 나의 단짝
--- 「손과 놀기 / 강영란」

[수필]

서울에서 세 시간을 넘게 달려 서산 터미널에 내려 다시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사십여 분 리아스식 해안의 꼬불 길을 달려가면 닿는 곳 대산이다. 처음 근무했던 작은 학교, 서향의 목조 건물로 학생들 하교 후 뒷정리를 하러 들어간 교실 창가에서 바라본 경치가 너무 고와서 학생들 퇴교 후에는 날마다 다시 올라가 창가로 들어오는 석양 풍경을 즐기는 일상을 보냈다.

교문을 벗어나 좁은 솔밭을 지나면 나오는 영탑리 바닷가 그 길에 길게 비치는 황금빛 노을이 학교까지 이어지고 망일산과 어우러지는 붉은 하늘과 구름은 커다란 하늘 벽에 그려지는 풍경화였다.

서해안으로 휴가를 가던 길에 떠난 지 근 40년 만에 학교를 들어가 보았다. 휴일 오후 텅 빈 교정을 편한 마음으로 둘러보는데 예전과 다르게 운동장이 두 개다. 교문에서 바로 들어오던 본래의 운동장과 북쪽에서 들어오던 솔밭 길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또 하나의 운동장이 만들어져있다.

아침 출근 때는 비포장 큰길을 피해 솔숲 사잇길로 다녔는데 아침 햇살이 솔잎 사이로 비추면 나도 모르게 청아한 음색으로 가슴을 차분히 가라앉히던 박인희의 노래 ‘오 맑은 아침 밝은 태양 비치네 높은 저 산과 같이 맑은 바다처럼…’의 가사가 아름다운 노래가 절로 나오던 긴 숲길이 휑한 운동장으로 바뀐 것이 아쉬웠다. 학교 건물도 목조가 아닌 21세기 학교 환경으로 바뀌기는 했어도 오랜만에 찾아간 교정에서 바라보는 석양빛은 변함없이 고왔다.
--- 「첫정 / 신경희」

요즘은 모든 것들을 최대로 작게 압축하고 긴 것을 짧게 줄이는 것이 대세인 모양이다.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 줄임말이 대유행인 것 같다. 알지도 못할 말들을 방송국에서 그대로 내보내면 나처럼 나이 좀 있는 사람들은 말뜻도 모르는 채 갸우뚱만 할 뿐이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친절하고 상냥한 딸들이 있어 그 말들을 다 설명해줄뿐더러 특히 큰 딸애는 엄마도 요즘 젊은 사람들의 생각과 트렌드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며 많은 신조어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멍멍이가 댕댕이가 된 이유 명작을 왜 띵작이라고 하는지 등등. 그래서 난 친구들 사이에서 그들 말에 의하면 어느 정도는 앞서가는 트인 아줌마라고 한다. 오로지 딸들 덕분이다. 나쁘지는 않다. 모르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아는 것이 좋으니까. 나의 친구들은 유행어나 신조어 등 낯선 것들을 때때로 나에게 물어보는데 그 뜻을 얘기하면 우리들은 또 한 번의 웃음보가 터진다. 그와 함께 덧붙이는 말은 ‘역시 젊은 애들은 기발하다니까.’

요즘 카페를 자주 가는데 둘러보면 노트북을 펼치고 뭔가를 하는 사람들에 눈이 간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다. 일명 카공족이라고 일컫는단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줄임말이겠지 싶다. 우리 기성세대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하나. 내가 그랬었다. 여기저기 자리 잡고 앉은 젊은이들은 오랜 시간을 공부도 하고 리포트도 작성하고 일도 한다고 한다. 그 시끄러운 곳에서 무슨 공부가 될 것이며 일을 할 것인가. 우리 집의 가끔은 카공족인 아이들한테 물어봤다. 그 소란스러운 곳에서 공부가 되고 일이 되냐고. 그리고 긴 시간을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은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대단한 민폐 아니냐고. 그래서 자리가 널찍한 곳에서 카공족도 하는 거란다. 공중을 떠도는 소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백색소음이라고 하는 잔잔한 생활 소음들은 공부하는 데 있어 머리에 쏙쏙 들어오며 집중이 되게 한다나. 음악을 들으며 공부를 하면 집중이 잘된다고 하는 아이들이 있는 것처럼 과학적으로 그렇단다. 참 희한하기도 하고 나로선 이해가 안 됐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 「이유있는 카공족 / 정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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