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비인가 하교를 위한 수칙 그 첫 번째 기억해? 거짓말쟁이의 가장 큰 무기는 진실이라는 거. 두 번째 수칙을 가르쳐 줄게. 거짓말쟁이의 가장 큰 약점은 거짓이야. 자기가 말한 거짓말에 스스로조차 속아 버릴 때 그 거짓말은 최악이 되는 거야. 요즘 선생들이 딱 그 짝이라고. 자기가 이미 죽었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기어다니는 좀비라고. 청춘과 추억을 모조리 임용 시험에 꼴아박느라 제대로 된 것은 무엇 하나 배우지 못한 채 늙어 죽은 좀비. 학교는 지옥이야. 좀비들만 활보하는. 하지만 밖으로 나가는 문은 항상 열려 있는 지옥이지.”
--- p.33, 〈비인가 하교 자문위원 선홍지의 청춘개론〉
“컴 온, 컴 온. 마이 그랜드마더 이즈 슬리핑.”
형이 소곤거렸다. 그러자 검정색 천으로 온몸을 가린 자그마한 소녀가 병실로 걸어 들어왔다. 길고 짙은 속눈썹이 에워싼 커다란 눈동자가 나와 증조할머니를 차례로 훑었다.
“앗살람 알라이쿰.”
소녀의 목소리가 뉴스 속보와 뒤섞였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중동 발 호흡기 증후군 메르스가 공기로도 전염될 수 있다는 소식이…….”
--- p.78, 〈각시〉
“그거 알아? 가장 어려운 문제의 오답은 정답보다 더 정답 같다는 거.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답을 고르고, 정답을 고르는 사람은 정말 얼마 없다는 거.”
“그래서 내가 틀렸다는 거야”
“아니…….”
연희가 말했다.
“틀린 답은 있어도 나쁜 답은 없다고 생각해.”
예은은 연희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디지를 보며 희게 번들거리던 눈은, 지금 보니 눈동자가 유난히 진한 검은색이었다.
--- p.112, 〈첫사랑 위원회〉
상자 안에는 예쁜 유니콘이 있었다.
아주 작은, 주먹보다도 작은 말이었다. 쪼그리고 앉아 잠들었던 유니콘은 고개를 들고 선동을 올려다보았다. 일어나서 몸을 흔들자 빛나는 파란색 털이 흔들렸다. 상자 밖을 내다보다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다시 상자 안에 몸을 웅크렸다. 선동은 손가락을 넣어 유니콘의 등을 살짝 쓰다듬었고, 유니콘은 곧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 p.136, 〈유니콘은 내 거〉
“가지 마. 새끼 고양이도 다치고 겁에 질렸을 때는 가까이 가는 거 아니야.”
“새끼 고양이가 다쳤으면 돌봐 줘야지.”
“새끼 고양이도 육식동물이야! 하물며 지수는 랑인이라고! 저 꼴을 보면서도 못 알아들어? 지수랑 어울리니까 네가 이런 일을 겪은 거야!”
“지수랑……어울려서”
연진은 지수를 보았다. 아까 그 늑대인들은 연진을 미끼로 지수를 불러냈다. 지수는 연진을 구하러 달려와 정체를 드러내면서까지 싸웠다. 연진은 지수에게 가까이 갔다.
“괜찮아, 나야, 겁먹지 않아도 돼.”
--- p.221, 〈우리 반에 늑대인간이 있다〉
중원중학교에서는 해마다 중간고사 직후 2학년을 대상으로 특이한 시험이 열린다. 바로 커닝이 공공연히 허락되는 한자 시험이었다.
규칙은 간단했다. 커닝은 할 수 있다. 단, 들키면 빵점이 된다. 그야말로 누구의 기술이 더 우월한지를 겨루는 시험. 물론, 점수가 성적에 반영되지는 않는다. 허나 만점을 받은 이에게는 ‘커닝 왕’이라는 영예로운 칭호와 함께 뷔페 2인 식사권이 제공된다.
다음달 열하루라면 마침 여자 친구와의 백일 즈음이다. 게임 머니에 용돈을 탕진한 윤에게는 뷔페 2인 식사권이 꼭 필요했다.
--- p.230, 〈커닝 왕〉
“삼촌은 사실 시키는 대로 한 것 뿐이고 우 역관이 밀무역을 주도했대요.”
이시현이 덧붙였다.
둘의 얘기를 들은 장영실이 빙그레 웃었다.
“어디 우 역관뿐이겠느냐. 배후를 캐면 더 많은 역관들이 관여하고 있을 것이다.”
“걸리면 크게 처벌 받을 일을 왜 하는 거죠”
아람의 물음에 장영실이 거의 완성되어 가는 자격루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어른이 되면 욕심도 같이 자라난단다. 그 욕심의 방향이 사람마다 다른 것이지. 내 욕심은 시간을 찾는 데 있고, 우 역관의 욕심은 재물을 모으는 데 있던 거지.”
--- p.291~292, 〈조선 소년 탐정단-사역원 피습 사건〉
X처럼 있어 주는 것만으로 긴장감을 풀어 주고 불안을 덜어 주는 선택받은 룸메이트들이 이 도시에 흔하지 않게 서식하고 있다. 그건 정말이지 의학, 과학, 심지어 미신의 힘으로도 입증된 바가 없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편하게 말해 위로생물체라 불리는 X와 같은 녀석들은 알고 있다. 자신들이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코앞에 테스트를 둔 나와 같은 사람들의 불안 지수를 현저히 줄게 해 준다는 사실을.
--- p.300, 〈역사는 그 방 옆에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