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미스터 쿠. 콜업이야. 내일 아침 바로 이동할 수 있겠어?”
강타는 자기 귀를 의심한다.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인가. 콜업이라니.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리는 느낌이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든 채 그대로 얼어붙는다. 정신없이 뭐라고 한두 마디 대답을 하고는 통화가 간단히 끝나 버린다.
“뚜, 뚜, 뚜~”
전화의 기계음이 메아리처럼 울린다.
“여보, 무슨 일이에요?”
아내 미혜가 똥기저귀를 삼각으로 만들어 밀봉하면서 묻는다. 강타가 돌아보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콜업이래. 내일 아침 바로 로 와 달라는데?”
“어머, 정말이에요?”
기저귀가 미혜의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미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뛰어가 강타의 품에 안긴다. 거실에서 자석 놀이를 하던 첫째 필승이가 무슨 일인가 싶어 덩달아 아빠에게 달려든다. 눈이 유난히 크고 얼굴빛이 복숭아같이 뽀얀 일곱 살배기 아들이다. 필승이가 작지만 야무진 입술로 또박또박 묻는다.
“아빠, 콜업이 뭐예요? 누가 불렀어요? LA엔 왜 가는데요?”
강타가 아내와의 포옹을 풀고 무릎을 굽혀 아들과 이마를 맞댄다.
“콜업은 마이너리그 선수를 메이저리그로 불러올리는 걸 말해. 누가 불렀느냐고? 에인절스 팀에서 아빠를 오라고 하는구나. 그러니까 가야겠지?”
“그럼, 아빠가 이제 진짜 빅리거가 되는 거예요? 정말? 정말?”
필승이가 들떠서 깡충깡충 뛴다. ---[Game#1 꿈의 무대] 6년 4개월만의 콜업
다음 날부터 필승이는 입만 열면 네 글자만 반복해서 말하며 몸서리쳤다.
카.트.리.나.
처음엔 필승이가 아는 누군가의 이름인 줄 알았다. 그래서 주변에 캐서린이나 카트리나라는 이름의 여자아이가 있는지 알아봤지만 그런 아이는 없었다. 왜 그 이름만 부르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한 달 반 동안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카트리나”만 중얼거렸다.
미혜의 알 수 없는 통증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아이가 울면 미혜는 통증을 느낀다. 마치 하나의 몸처럼. 아이가 심하게 울면 울수록 미혜는 형언할 수 없는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마치 혈관 속에 고슴도치가 한껏 가시를 돋운 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것만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그런데 8월 23일이 되자 아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울음을 그쳤고 미혜의 고통도 거짓말처럼 멎었다. 안도하는 것도 잠시, TV 뉴스에서 흘러나온 이름에 강타와 미혜는 기절할 듯 놀랐다. 플로리다 주 동쪽에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발생했는데 그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필승이가 손가락으로 TV 화면을 가리키며 “카트리나” 하고 중얼거렸다.
미국 남동부가 카트리나로 인해 거의 궤멸되다시피 했다. 초속 75m의 강풍과 홍수로 뉴올리언스 주 80% 지역에서 모두 2,541명의 목숨을 앗아 간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한 달 반 전에 필승이는 무얼 봤던 것일까? “카트리나”를 중얼거리며 늑대처럼 울부짖다가 서럽게 울기도 했다. 어떻게 알았을까?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을 어떻게 알고 먼저 울었던 것일까? ---[Game#1 꿈의 무대] 엘살바도르 홍과의 통화
드디어 닥터가 침묵을 깬다.
“미스터 쿠. 자네 몸이 배트가 되었다고 상상해 보게.”
‘나보고 배트가 되라고? 이런 이미지 트레이닝은 처음인데? 보통은 경기 상황을 떠올리라고 하는데 이번엔 좀 다른걸?’
강타가 속으로 중얼거린다.
‘흠, 생각해 보니 배트가 돼서 좋을 게 없겠는걸. 온몸으로 공을 때리는 인생이라니. 되게 아프겠군.’
강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닥터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
강타는 자신이 배트가 된 상상을 계속한다. 병살타를 날린 메이저리그 첫 타석의 배트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타자의 손바닥에 지독한 통증을 남기고 배트는 두 동강이 났다. 쓰라린 기억이다.
‘내가 배트가 된다. 가끔 부러지기도 하는 배트, 그게 내 인생이라면 어떤 느낌일까? 파울볼을 날릴 때 타자의 손바닥이 울리고 아픈 만큼 배트 자신도 꽤나 아플 것이다. 그렇다면 통쾌하게 우월 루타를 날릴 때는 어떨까? 내친 김에 홈런까지 날린다면? 공이 제대로 맞았을 때에는 맞는 소리가 경쾌할 뿐 아니라 손바닥도 전혀 안 아프다. 배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배트의 중심에 공이 제대로 맞으면 결과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아프지 않아서 좋다. 시원한 느낌, 상쾌한 기분이다. 아마 틀림없이 배트가 느끼는 기분도 딱 그럴 것이다.
“지금쯤 자네 머릿속에는 배트의 중심이 떠올랐을 거야. 그렇지 않나?”
강타가 깜짝 놀라 눈을 뜬다. 닥터와 눈이 마주친 강타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닥터 홀랜드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젠체하며 말을 잇는다.
“배트에는 분명히 중심이 있지. 물리적으로 머리끝에서부터 몇 인치 아래에 그 중심이 있다고 콕 짚어서 말할 수는 없네. 타자가 배트를 잡은 손의 위치나 스윙의 궤적에 따라 그 중심이란 것의 위치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으니까 말일세.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분명히 중심이 존재한다는 거야. 그리고 그 중심에 공을 정확히 맞추게 되면 고통이 없을뿐더러 그 결과가 기막히지.”---[Game#2 진정한 소망] 강렬한 점화
“필승아, 공을 잡아! 뽀로로 쿠, 파이팅! 공을 봐! 머리, 머리 위에 떠 있어.”
미혜가 소리치자 필승이가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들어 공을 쳐다본다. 그리 높지 않은 평범한 플라이볼이다.
지루했던 수비가 이제야 끝날 모양이다. 미혜와 클럽의 학부모들이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쟈니는 심술 난 표정으로 알루미늄 배트를 땅바닥에 내던지고 1루를 향해 쿵쾅쿵쾅 뛰어간다. 그동안 공은 이미 파울라인을 벗어난 채 날고 있다. 분명한 파울볼이다.
미혜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마조마하게 필승이를 바라본다.
5m
3m
관람석의 모든 눈길이 공이 떨어지는 궤적을 좇아 움직인다.
2m
1m
뽀로로 쿠가 두 손을 쭉 뻗는다. 떨어지는 공을 잡기 위해 글러브를 낀 왼손을 활짝 펼치면서 몸을 앞으로 쭉 뻗는다.
50cm
30cm
10cm
“퍽!”
이건 공이 글러브에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아니다. 둔탁한 파열음, 뭔가 깨진 듯한 소리다. 관중들이 모두 벌떡 일어선다. 이어서 미혜의 비명 소리가 공기를 가르고 올라간다.
“아아악!”
공이 글러브를 스친 채 뽀로로 쿠의 고글을 정통으로 때리고 나서 튕겨 오른다. 파울 라인에 툭 떨어진다. 필승이는 그대로 뒤로 넘어진다.
미혜의 옆에서 곤히 잠자던 연승이가 엄마의 비명 소리에 놀라서 깼는지 울음을 터뜨린다. 미혜가 날듯이 계단을 서너 개씩 건너뛰어 경기장으로 내려간다. 코치가 달려오고, 여기저기서 학부모들이 루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누구, 의사 없어요?”
미혜가 날카롭게 소리 지른다. 코치가 휴대전화로 구급차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고글의 오른쪽 렌즈가 깨져 있다. 아이의 눈에서 피가 흐른다. 관람석에 혼자 남겨진 연승이가 빽빽 울어 댄다.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강한 통증이 미혜를 훑고 지나간다. 혈관 속에 고슴도치 다섯 마리가 동시에 뛰어다니며 할퀴고 있다.---[Game#2 진정한 소망] 중심을 건드리는 순간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중심을 건드려야 하고, 중심에 소망이 맞닿는 순간 이미 이루어졌다는 확신이 들게 되는 법이지.”
닥터 홀랜드는 배트를 보물처럼 잘 감싸 자신의 가방에 넣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이것이 자기가 강타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했다.
드림 센텐스를 반복하면 어느 순간 임계점에 다다르게 되는데 바로 그때 확신의 문이 활짝 열린다고 했다. 그러나 임계점을 지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드릴이 중심으로 뚫고 내려가는 과정에서 엄청난 장애물들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란다. 그 장애물이란 부정적인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학습한 부정적인 생각들이다. 이것이 바로 내면의 적이다. 드림 센텐스는 그 적들을 깨부수는 유용한 창과 검, 때로는 방패가 되는 셈이다. ---[Game#2 진정한 소망] 드림 센텐스
"몰인정한 놈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지?“
미혜는 남편이 왜 씩씩거리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무슨 일인지 차근차근 설명해 보라고 눈짓으로 말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자네 실력은 이미 빅리거감이다. 이렇게 질질 끌어 놓고는 이제 와서…….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배신자들,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들.”
강타는 계속 씩씩 거친 숨소리를 내며 분을 토한다.
“구단이 나를 방출하기로 결정했대. 어젯밤 12시에 나를 팔아 버렸다고 하네.”
미혜는 강타의 말이 꿈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아득하다.
‘꿈일 거야. 꿈을 꾸고 있는 걸 거야. 인생이 왜 이렇게 잔인해. 이건 분명 그냥 악몽일 거야.’---[Game#3 소중한 약속] 마이클 조셉이 떠나요 아빠도 떠나요
“필승아, 아빠랑 다시 만날 때까지 더 아프지 말고 싹 나아야 한다. 알았지?”
아이가 대답 대신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빠. 혹시 나 때문에 떠나는 거예요? 내가 아파서?”
“무슨 소리야! 필승아, 그런 거 아니야. 아빠는 이제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거야. 조금만 참고 기다려. 알았지? 아빠가 빅리그에 올라가서 날마다 최고의 경기를 보여 줄 테니까. 돈도 많이 벌어서 우리 필승이의 아픈 눈도 싹 고쳐 줄게.”
둘째가 큰 소리로 우는 소리가 들리자 미혜가 달려가서 등에 둘러업고 달래기 시작한다. 엄마가 자리를 비우자 필승이가 아빠에게 귀를 빌려 달라고 한다.
“아빠한테 부탁할 게 있어요.”
강타가 필승이의 키에 맞춰서 자세를 낮추자 아이가 아빠 귀에 대고 속삭인다.
“아빠는 좋은 곳으로 가요. 머리에 깃털을 꽂고 야구해요. 내가 봤어요. 분명히.”
순간적으로 강타의 머릿속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로고가 떠오른다. 머리에 깃털을 꽂은 빨간 인디언이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 고맙구나. 꼭 그렇게 될 거야. 그런데 우리 아들, 부탁은 뭐지?”
필승이가 고개를 숙인 채 망설이다가 말한다.
“아빠, 나를 위해 홈런을 쳐 주세요. 딱 한 번이라도 좋아요. 아빠, 내 생일 기억해요?”
전기가 오른 듯 가슴이 찡해 온다. 아이의 생일은 9월 11일이다.
“생일 선물로 홈런을 받고 싶어요. 아빠는 할 수 있어요. 아빠는 홈런을 칠 거예요. 그 사람 머리를 훌쩍 넘는 큰 홈런을요.”---[Game#3 소중한 약속] 필승이와 아빠의 약속
“바실리 알렉세예프는 러시아 역도계의 떠오르는 혜성이었어요. 하지만 250kg에서 신기록 행진이 멈추고 맙니다. 체육계와 의학계는 250kg이 인간의 한계라고 선언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스포츠심리학자가 트레이너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원반을 251kg 올리고 바실리에게는 249.5kg이라고 말하세요.’
자, 어떻게 됐을 것 같습니까? 물론, 이런 사실을 알 턱이 없는 바실리가 251kg을 번쩍 들어 올렸지요. 바실리 본인도 믿지 못할 일이었어요. 그 후로 7년 동안 세계 신기록을 80여 차례나 경신했지요.
‘할 수 없다’는 마음의 벽을 무너뜨리고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바꾸자 잠자고 있던 능력이 깨어난 것입니다. 99%의 사람들은 머리가 지나치게 잘 돌아가기 때문에 ‘상식’의 벽에 부딪힙니다. 근사한 꿈일수록 이루기 힘들다고 하지요. 왜? 과거의 자료들을 찾아보면 그렇거든요. 그래서 얼마든지 깰 수 있는 벽인데도 불구하고 쉽게 좌절하고 마는 것입니다.”
---[Game#4 근본적인 이해] 분명한 소망이 있는 인간의 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