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막는 <유령인명구조대>
박진필 (bluecran@yes24.com)
최근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뉴스가 전해졌다. '2004년 우리나라의 자살율이 OECD국가 중 최고'. 더 정확히 통계를 살펴보면 하루에 3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매일 1.3명이 한강에 투신하고 있으며, 특히 40대 가장들의 자살율이 가장 높다. 영화배우 이은주, 정몽헌 전 현대 회장 등 유명인들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쯤에서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한다. 왜 사람들은 자살 하는 것일까? 무엇이 사람들을 자살로 몰고 가는 것일까?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 <유령인명구조대>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에서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다. 책을 펼치면 특별한 일을 해야 하는 네 명의 유령이 등장한다. 권총 자살한 야쿠자 야기, 음독자살한 사업가 이치카와, 건물에서 투신해 자살한 가정부 미하루, 대입의 압박감으로 목을 맨 유이치. 이 네 사람은 살아온 시대도, 자살한 방법도, 자살한 이유도 모두 다르다.
하늘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신’은 이들 네 명에게 ‘자신이 준 소중한 생명을 헛되이 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을 버린 애석한 짓을 저지른 죄’로 49일간 자살하려는 100명의 사람을 구하라고 명령한다. 대가는 천국행.
네 사람은 반 강제적으로 우주를 건너 지구로, 일본으로, 도쿄 한복판 신주쿠로 떨어진다. 오렌지색 구조복을 입고 헤드셋, 고글, 로프와 메가폰, 다이어리, 그리고 휴대폰만을 가진 채. 유령이면서 벽을 통과하지도 못하고, 현실 세계에 물리적 영향력을 전혀 행사할 수 없는 이 네 명의 유령들은 신주쿠를 뛰어다니며 자살하고자 하는 사람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구조해가면서 네 사람은 각자의 자살의 원인이 되었던 문제와 마주친다. 우울증으로 자살한 야기, 경제적 문제로 자살한 이치카와,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해 자살한 미하루, 마지막에서야 자신의 자살의 진짜 이유를 깨달은 유이치까지.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을 구해가면서 스스로의 문제에 해답을 얻는다.
이 소설은 초반에 다소 코믹한 설정으로 시작된다. ‘신’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네 명의 자살한 유령에게 100명의 사람을 구하라고 시키는 것, 거기에 유령들이 인명을 구조할 때 사용하는 도구의 용도 등은 일본 만화의 설정을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첫 번째 구조를 시작하면서부터 소설은 진지하면서도 깊숙하게 우리의 내면을,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 보인다.
이혼 이후의 절망감과 사회에서 느끼는 단절감, 고독감으로 인해 수면제를 삼키는 중년의 남자, 회사 내의 갈등으로 우울증에 걸려버린 회사원들. 주위의 시선, 냉대를 견디지 못해 장애를 가진 아이와 동반 자살하려는 엄마, 부모의 이혼과 학교에서의 왕따로 삼각자로 손목을 긋는 초등학생,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끊임없는 자기혐오에 빠져 수시로 손목을 긋는 젊은 여자, 쓸데없는 허영심이 불러온 낭비 혹은 주식 투자, 사업의 실패로 큰 빚을 지고 자살을 생각하는 남자들.
이들이 자살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나약한 정신의 소유자이기 때문일까? 저자는 자살의 문제를 사회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 타인과의 감정적인 소통이 줄어든,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관계, 새로운 경제위기에 놓여 치열한 생존경쟁을 거쳐야 하는 기업. 그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욕구와 불만을 표출시킬 방법을 잃고 억눌리고, 작은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서 자살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자살 심리와 정황의 묘사에 있다. ‘유령 인명 구조대’에 의해 구조되는 100명의 사람들은 각기 다른 사연과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자살을 생각한다. 그들의 상황, 그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저자의 시선은 어떤 ‘자살 심리학’ 책보다 정확하게 핵심을 짚어낸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문제들이 자살의 원인으로 등장하고, 소박하지만 특별한 방법으로 구조되는 것은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책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인 유이치는 100번째 구조자로 자살하려는 자신의 아버지를 구해낸다. 그 방법은 바로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대화하는 것. 자살을 막는 가장 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한 발 더 다가서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