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 사건이 지금 일어난다면 나는 그때처럼 쉽게 그들에게 지지 않을 것이다. 설사 지더라도 그때처럼 깊이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그때처럼 소설을 남기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그때 내가 그들에게 졌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졌기 때문에 세계문학상을 받고 작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지는 것이 반드시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실패와 좌절은 얼마든지 가치 있는 무엇인가로 뒤집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그때 체험한 인생의 묘미이자 문학의 묘미였다.
--- p.7 「리커버 개정판을 내며」
일기장을 보니 엄마는 당시 류마티스 관절염 진단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의사가 엄마에게 류마티스라고 진단 결과를 고지했을 뿐만 아니라 류마티스가 암보다 무섭다고 말했고, 관절이 뒤틀어진 사진을 보여주었으며, 자신이 류마티스의 최고 권위자인 H대학병원 김모 과장의 수제자라고까지 말했다. 그 후에 엄마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구 년 동안이나 그 병원을 다니면서 류마티스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도 엄마가 류마티스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진료 기록을 떼어보고 담당 의사를 만나볼 필요가 있었다.
--- p.43
백사자의 설명에 따르면 「보헤미안 랩소디」는 1975년 발표될 당시 여러 모로 획기적인 곡이었다. 최초로 오페라를 록에 접목시켰고, 최초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으며, 한 곡이 삼 분 안팎이던 시절에 나온 최초의 육 분짜리 곡이었다. 발표되자마자 영국 차트에서 구 주 동안 일 위를 했다. 호주, 뉴질랜드, 네덜란드에서도 일 위, 미국에서는 이 위, 아시아 국가인 일본에서조차 십구 위를 했다. 특히 신기했던 것은 오페라 부분을 네 명의 퀸 멤버들이 백 번도 넘게 녹음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부른 것처럼 연출했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금지곡이었는데 그 무렵 금지가 풀렸다는 점도 그 곡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 p.68
“하 판사, 판사는 사건이 법정에 왔을 때 재판하는 사람이지, 길거리에 나가서 악당을 물리치는 배트맨이 아니야. 그리고 리베이트, 과잉 진료 같은 문제는 국가 전체적으로 환경이 바뀌어야 손을 볼 수 있는 거지 일개 판사 혼자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야. 게다가 성모병원이잖아. 우리나라에서 제일 센 곳이 어딘지 아나? 재벌보다 더 센 데가 어딘지 알아? 종교 단체야. 섣불리 덤볐다가는 하 판사가 다쳐. 다 하 판사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 pp.95~96
엄마는 나를 판검사 만드는 것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 살던 분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기억을 할 수 있는 가장 오래전부터도, 엄마는 내게 우울한 표정으로 이런저런 넋두리를 했다. 세상 사람들이 엄마를 업신여긴다고, 엄마가 죽어도 아무도 눈 깜짝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 끝은 언제나 “네가 판검사가 되어 엄마의 한을 풀어다오”였다. 줄곧 침울하던 엄마의 표정이 그 말을 할 때만큼은 희망으로 밝아졌다. 마치 추위에 떨며 죽어가던 성냥팔이 소녀가 몸을 데우려고 성냥불을 켠 것 같았다. 엄마는 내게 “너의 총명한 눈빛이 나를 살고 싶게 한다”라고도 했다. 그 말을 할 때 엄마의 기분은 이례적으로 가벼워 보였으나 내 마음은 벽돌을 삼킨 것처럼 무거워졌다.
--- p.107
나는 신해성모병원장 앞으로 편지와 함께 녹취록을 보냈다. 편지에서 나에 대한 진정과 고소는 허위이니 정당한 법적 책임을 묻겠으며, 나는 법률 전문가라서 소송을 하는 것이 부담되지 않지만 다른 수많은 피해자들은 비용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담이 되니 가톨릭 병원답게 스스로 진상을 파악해서 피해자들에게 자발적으로 배상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얼마 후 신해성모병원 행정처장이 나에 대한 고소와 진정을 취하하겠다고 연락해 왔다. 다만 우동규의 사기 진료 여부는 소속 의사인 우동규가 완강히 부인하고 있으니 병원 측에서도 증거 없이는 어떻게 하기 어렵다며 경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조치하겠다고 했다.
--- p.139
“안 그래도 내한테 니 갈아달라고 찾아온 놈이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정색을 했다.
“누가?”
“그건 나도 모른다. 오더는 고객한테 다이렉트로 받는 게 아니라서. 나는 못 한다 했지만 내가 아니라도 딴 놈 시킬 수도 있으니까 니가 걱정돼서 함 보자 했다.”
그 누군가는 두말할 나위 없이 우동규일 것 같았다. 불안보다도 분노가 먼저 치밀어 올랐다. 판사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그냥 내 손으로 그놈을 해치워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당하기 전에 먼저 수를 써야 하는 것인가? 정말로 동혁이에게 그놈을 해치워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 과연 무탈하게 우동규만 삭제시킬 수 있는 것인가. 그런 비밀이 과연 보장될 것인가. 이제는 정의인지 복수인지, 세상과의 조화인지 자기만족인지를 따지는 것이 한가하게 남의 이야기 할 때나 할 법한 생각으로 느껴졌다.
--- pp.154~155
신해지청 검사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 사건의 진행 경과를 물어보았다. 사회적으로 떠들썩한 사건도 아닌데 경찰이 송치하기 전부터 검찰이 특정 사건의 진행 경과를 알아보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검사가 자주 전화하는 것으로 봐서 지청장에게 보고하기 위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신해지청장은 서울 출신이라 신해시는 물론이고 인근 지역에도 연고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 사건에 관여하려고 한다면 선배 검사의 부탁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신해지청장이 고참 부장검사급이기 때문에 지청장보다 선배라면 검사장급의 고위 간부일 터였다.
--- p.173
뜻밖의 무혐의 결정을 받고 보니 황망함, 분함, 좌절감, 무력감 등 온갖 나쁜 감정들이 밀려들었다. 따귀라도 맞은 듯한 모멸감도 들었다. 내가 믿었던 이 나라가 초등학생 불량식품 수준의 조악한 논리로 나를 우롱하려 들었다고 느껴졌다. 다른 피해자들도 검찰의 그 황당한 결정에 사기 진료 사실을 알았을 때보다 더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 이전에도 재판을 하면서 기록을 보다 보면 왜 이 사람은 기소를 하지 않았는지 석연치 않은 경우가 왕왕 있었지만 내가 직접 그 사건으로 경험을 하면서 비로소 생생하게 깨달았다. 검찰의 힘은 죄지은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기소권보다 죄 있는 사람에게 면죄부를 주는 불기소권에 있다는 것을.
--- p.183
류마티스 전문의에 따르면 류마티스는 면역 체계가 이상을 일으켜 발생하는 매우 희귀한 병으로, 아무리 많이 잡아도 유병률이 일 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신해시에만 류마티스 환자가 다른 지역의 열 배 이상이나 많은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첫째는 신해시가 신으로부터 저주받은 도시라는 것이고, 둘째는 피고 우동규가 류마티스가 아닌 환자들에게 류마티스라고 속여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사건 수사가 시작된 직후부터 수많은 환자들이 우동규로부터 류마티스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류마티스 전문의들은 류마티스는 완치가 거의 불가능한 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이 역시도 두 가지 가설로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첫째는 신해시가 신으로부터 축복받은 도시라는 것이고, 둘째는 피고 우동규가 처음부터 류마티스가 아니었던 환자들에게 거짓말로 다 나았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과연 어느 쪽이겠습니까?
--- p.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