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님을 잠깐 볼 수 없을까요?"
"그건 좀..."
주부는 활기차게 대답했다. 대화는 곤란하지만 편지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이 집은 체크해두자. 죽은 여자애의 친구가 쓴 눈물 어린 편지. 상투적인 수법이지만, 독자의 수요는 확실하다. 야마자키가 미무라 가의 막내 이름을 메모하고 있는데, 현관에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녀왔어요."
돌아보니 150센티미터 정도 돼 보이는 자그만 남자애가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신문사 분이셔. 인사해."
"안녕하세요, 미무라 미키오라고 합니다."
소년은 눈길을 돌린 채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짧게 깎은 머리에 요즘 아이치고는 보기 드물게 여드름이 창궐한 얼굴. 내리뜬 눈이 너무 작아서 감정을 읽어내기가 힘들다. 물 빠진 청바지에 돌고래가 그려진 티셔츠, 어깨에는 메는 가방.
"이애가 장남 미키오입니다. 밤의 왕자에 대해 말 좀 해드리지 그러니."
밤의 왕자라는 말에 야마자키의 안색이 바뀌었다.
"안돼. 숙제가 많아. 그럴 여유 없어."
소년은 노골적으로 거부했지만, 야마자키는 어머니의 표정을 살피면서 말했다.
그럼 다른 날 찾아오면 안 될까. 토요일 오후는 어때? 내가 빙수라도 살게."
소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요즘 애들은 다 이렇게 무뚝뚝하다. 야마자키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토요일 오후 다시 오겠습니다. 미키오랑 이야기 좀 나누어봐도 될까요? 어머님이 계시면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그런 나이니까요."
"취재를 하면 사진도 찍는 거죠? 그렇다면 여동생 미즈하도 같이 하면 어떨까요? 미즈하는 모델을 하고 있어요. 아주 예쁜 애랍니다."
사진은 안 찍는다고 하려다가, 어머니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까부터 복도에서 이쪽을 엿보는 저 시선은 무엇일까. 검은 셔츠 그림자가 언뜻언뜻 눈에 들어온다. 숨을 죽이고, 취재하는 모습을 엿보고 있는 것 같다. 가족 구성으로 보면 이 집의 차남일 텐데, 왠지 음침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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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은 나가사와와 미치와 나, 셋이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자 뉴타운 쪽 광장에 삼각대를 세운 카메라맨 몇이 멍하니 서 있었다. 그들은 내 얼굴을 발견하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이 담배를 비벼 끄고는 카메라 앞으로 달려갔다. 미치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감자, 스타가 됐어."
나가사와가 미치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나가사와. 완전히 침묵을 지키는 것보다는 미치처럼 농담이라도 해주는 게 마음 편해."
"미안해, 감자."
"괜찮아. 저 아래서 헤어지자. 우리 집까지 카메라맨이 따라오면 곤란하니까."
우리는 광장에서 헤어졌다. 평소라면 내가 할 역할이지만, 그날은 나가사와가 미치의 휠체어를 밀었다. 둘과 헤어지면서 카메라맨들의 얼굴을 흘끗 바라보았다. 카메라 가방을 메고 나를 따라올 태세를 갖춘 카메라맨이 다섯 정도는 되어 보였다. 나는 고개를 까닥하며 인사를 하고 나서 유메미산을 일주하는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천천히 오쿠노야마 뒤편까지 와서는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산길로 들어섰다. 흐린 하늘 아래 활엽수 숲속은 밤처럼 어둡다. 뒤에서 낙엽 밟는 소리, 나뭇가지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이 산에서 나를 따라잡을 사람은 없다. 예의 비밀기지의 미로에서 카메라맨을 따돌리고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나의 승리감은 새로 얻은 연립주택 앞에 이르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논 사이에 덩그러니 서 있는 연립주택 앞에 벌써 수많은 카메라맨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철계단을 올라갔다. 이것이 스타의 비극인가. 나는 괜찮지만 아직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미즈하를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현관문을 열었다. 좁은 현관에는 미즈하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커튼은 닫혀 있고, 불과 텔레비전도 꺼져 있었다. 미즈하의 이름을 부르면서 좁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 미즈하는 없었다. 벽장문을 열었다.
미즈하가 수건을 덮고 잠들어 있었다. 허옇게 마른 눈물 자국이 빛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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