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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여성 첫 세계일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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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여성 첫 세계일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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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296g | 120*200*14mm
ISBN13 9791187949152
ISBN10 118794915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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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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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 화가 나혜석 씨는 예술의 왕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동서양 각국의 그림을 시찰하고자 오는 22일 밤 10시 5분 차로 경성역을 떠나 1년 반 동안 세계를 일주할 예정으로, 오늘 오전 7시 45분 경부선 열차로 동래 자택을 출발하여 경성에 도착 지금 조선 호텔에 체재중인바, 여사는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먼저 노농勞農 사회주의 공화국 연합인 적색 러시아를 거쳐 장차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덴마크, 노르웨이, 터키, 페르시아, 체코, 태국, 그리스, 미국 등을 순회할 터이라 하며…”
--- p. 14

나는 지금 유명한 바이칼 호반을 통과하는 중이다. 듣던 바 이상의 경승지다. … 지평선이 푸른 하늘과 닿은 듯한 황무지에는 은방울꽃이 반짝이고, 양떼와 소떼가 한가로이 거닐고 있다. 그윽한 이 한 폭의 그림은 네가 항상 말하던 집터를 연상하게 한다. 이곳에서 모든 벗들과 한잔의 술을 나누고 춤이나 추어보았으면…
--- p. 29

하루는 물랭루주에 구경 갔다. 나체의 여자 하나가 은색과 청록색 의상을 입고 뛰어나와 경쾌하게 춤을 추고, 날개옷을 두르고 붉은 새털을 머리에 꽂고 금색 구슬을 번쩍이는 여신 군상들이 좌우 2인씩 엉덩이를 흔들며 노래 부르면서 나온다. 7색, 5색의 금빛, 은빛 의상이 황홀한데, 웃옷은 얼굴을 파묻고 바지는 땅을 덮는다. 길게 늘인 털 부채 장난감 같은 조그마한 우산을 휘두르며 좌우에 갈라서 있는 군상은 이내 방울 달린 작은 북을 흔들며 춤을 춘다. 동시에 중앙의 여신은 타조털을 휘두르며 근육적이요 진기한 예술적인 춤을 춘다. 나는 이 그리스 식 육체미에 취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또 이 시대 동판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원근법과 색채, 초점을 취한 구도법에 눈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 p. 83

고야는 만년에 시력이 쇠약해지고, 귀머거리가 되고, 궁핍하였다. 판화를 그리려고 조국을 떠나 멀리 적막한 남프랑스 보르도에 우거하였다가 1828년 4월에 파란 많은 삶을 마쳤다. 그의 나이 82세였다. 그는 죽었다. 그러나 살았다. 그는 없다. 그러나 그의 걸작은 무수히 있다. 나는 그의 묘를 보고 아울러 그의 걸작을 볼 때 이상이 커졌다. 부러웠고 또 나도 가능성이 있을 듯이 생각 들었다. 내 발길은 좀체 떨어지지를 아니하였다. 내가 이같이 감흥해 보기는 일찍이 없었다.
--- p. 180

워싱턴을 떠나 도중에 필라델피아에서 내렸다. 서재필 박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자동차로 시외 한적한 곳에 위치한 병원을 찾아갔다. 응접실에 앉아 기다리니 강건한 모습의 중노인 서박사가 나와 반가이 악수하여 준다. 우리는 잠깐 동안 조선 문제에 대하여 토론한 후, 병원 구경을 하고 거기를 떠났다.
--- p. 199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 들어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 가서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가 텅 빈 나는 미래로 나가자.
--- p. 227
시베리아 통과

만주리에서 여권 검사를 받고 기차는 소비에트 연방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창망한 광야를 질주하는 동안 곳곳에 낙타의 무리, 브리야트인의 작은 집이 차창으로 보인다. 오논강을 건너니 여기서부터 궤도는 복선으로 되어 있다.
치타Chita 역에 도착하니 정오가 되었다. 소낙비가 끊임없이 쏟아지는데 러시아 농민 여자들이 머리에 붉은 수건을 쓰고 아이를 안고 서서 승객들이 나와 거니는 것을 유심히 구경하고 있다. 이곳은 농산물로 유명한 곳이다. 여기서 13시간 동안 가서 공장이 많은 베르흐네우딘스크에 도착하였다.
지금부터 유명한 바이칼호 호반으로 기차는 질주한다. 물은 언제 보던지 반갑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친근한 맛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하물며 망막한 대평야에 있는 바이칼 호수의 경색이랴. 지리해 못 견디던 승객은 차창에 모여 섰다.

크라스노야르스크Krasnoyarsk에 이르려 할 때 반가운 것은 송림 사이로 은은히 보이는 교회 첨탑이었다. 시베리아의 아테네라고 하는 톰스크와 정치경제 중심지인 노보시비르스크를 지나 옴스크에 도착하였다. 이 부근에는 쓰러진 오두막집과 부서진 차량이 많이 있어 혁명 당시 참극의 자취를 볼 수 있다. 이곳에서부터 흙빛이 점점 흑색으로 변하여가고, 식물 파는 여자들의 복장이 차차 깨끗해진다.
여기는 스베르들로프스크*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일가가 비참한 최후를 마친 곳이니, 니콜라이 일족은 죽기 전에 이 부근을 소요하였을 것이다.
지평선과 푸른 하늘이 맞닿은 황망한 들판에 푸른 잔디가 끝없이 깔려 있고, 비단실로 수놓은 듯한 흰 은방울꽃과 붉은 장미꽃이 섞여 있었다. 뭉툭 잘린 자작나무 고목, 한숨에 뻗쳐오른 적송은 무한히 많다. 흰빛 검은빛이 섞인 얼룩소 떼는 목을 늘여 한가스럽다. 이곳이 겨울이 되어 백설이 희디 흰 대평야에서 시베리아인이 썰매를 타고 질주할 것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로라

자작나무 삼림 위에는 석양이 냉랭했다. 온 하늘빗이 황색이 되었다가 진홍색으로 바뀌더니 청회색으로 변한다. 하늘은 확실히 둥근 형상이 보이고, 밤낮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하늘은 거울같이 투명하고 어지러이 빛난다. 그리고 거기에는 갖은 형상이 다 보였다. 이것이 우리가 부르던 오로라다. 우리는 익히 알던 노래 〈오로라〉를 불렀다.

갈까 보다 말까 보다
오로라의 아래로
러시아는 북쪽 나라
끝이 없어라
서쪽 하늘엔 석양이 타고
동쪽 하늘엔 밤이 샌다
종소리 들리누나
중천으로부터

오려니 너무 밝고
가려니 어둡다
멀리서 불빛이
반짝반짝해
섰거라, 헌 마차여
쉬어라, 백마여
내일 갈길이
없는 바 아니나

나는 나는 뜬 수풀
바람 부는 그대로
흐르고 흘러서
한없이 흘러
낮에는 길 걷고
밤엔 밤새껏 춤추어
말년엔 어디서
끝을 마치든

어느 곳에 이르면 하의를 넓게 껴입고 붉은 수건을 머리에 써 늘어뜨린 집단농장 여자들의 무리가 늘어서 있고, 어느 곳에 이르면 몽골인의 무리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점잖이 서 있다.
정거장마다 그곳 농민 여자들이 계란, 우유, 새끼돼지 훈제를 들고 판매점에서 여객에게 사가기를 청하고, 소녀들은 들판에 피어 있는 향기 높은 꽃 다발을 가지고 여객에게 권하는 특수한 정취를 맛보게 된다. 기차 보이가 갖다 주는 꽃을 먹고 남은 통조림 통에 꽂아놓고, 구매한 음식을 탁자 위에 벌여놓고 부부가 마주앉아 먹을 때, 우리 살림살이는 풍부하였고 재미스러웠다.
모스크바에 가까이 다가가자 농촌은 온통 감자로 깔렸다. 선로 주변에는 걸인이 많고, 정거장 대합실 바닥에는 병자, 노인, 어린이, 부녀들이 신음하고, 울고, 졸고, 혹은 두 팔을 늘어뜨리고 앉아 있거나 담요를 두르고 바랑을 옆에 끼고 있는 참상이니, 러시아 혁명의 여파가 이러할 줄 어찌 가히 상상하였으랴. 러시아라면 혁명을 연상하고 혁명이라면 러시아를 기억할 만큼, 시베리아를 통과할 때는 무엇인지 모르게 피비린내 공기가 충만하였다.

모스크바 CCCP

옛 러시아 제국의 수도는 페테르부르크였지만, 1917년 대혁명이 있은 후 소비에트 사회주의연방 공화국은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겼다. 모스크바는 지리상 위치로 보더라도 서구와 동아시아 나라를 이어주는 세계적인 큰길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찻속 생활을 하다가 여기서 내리니 심신이 상쾌하였다. 러시아 통과는 비교적 편리하나, 입국해 머무는 데는 엄중한 제한이 있어서 집행위원회 외국여권과에 가서 거주권을 받아야 하므로, 여행객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당일 통과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여기서 3일간 체재하였다. 호텔 숙식료며 물가가 높은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자동차와 택시는 개인 소유가 없이 모두 국유인데다 얼마 되지도 않아서, 거리가 멀건 가깝건 꼭 걸어다니게 되었다.
모스크바 정거장에 내리면 조선인 박씨가 있어서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안내를 청한다. 박씨는 전에 러시아 주재 한국공사관 참사로 있던 사람인데, 지금은 안내 영업으로 생활을 유지하여간다. 이 박씨는 일본인을 안내하고, 우리는 일본인 러시아 유학생의 안내를 받게 되었다.

우선 나서는 길로 푸시킨 미술관,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근대 프랑스 미술관, 모로조프 박물관과 혁명박물관을 언뜻언뜻 보았다.
러시아 미술은 역사상으로 보면 조금도 구속을 받지 아니하였다. 러시아 문화의 중심이 변동함에 따라 예술가들은 중단되었던 예술을 중흥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동시에 러시아 예술은 외국 여러 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본래 가진 특질은 의연히 보전하였다. 러시아 현대미술은 대략 3개 파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보수파로 혁명 전의 전통을 보수하려는, 기술보다 구상을 중요시하는 파요, 두 번째는 동서양 미술의 장점을 취하여 자기화하려는 비교적 진보한 파요, 세 번째는 극히 소수이니 구성파 예술을 민중화하려는 일파이다. 그 외 모스크바파며 레닌그라드파며 각 지방파도 많이 있다. 그 중에도 예술 중심지인 모스크바에는 혁명러시아미술가협회, 사과四科협회, 미술잡지기자조합이 있어 해마다 전람회가 왕성하다.
푸시킨과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은 푸시킨과 트레티야코프 개인이 수집한 유럽 각국의 유명한 그림이 많았다. 근대 프랑스 미술관에는 근대 프랑스 화단에 유명한 그림은 거의 다 있었다. 무엇보다 모스크바 미술관의 진열 방법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다는 세평이 있다.

크렘린 궁전

높은 성벽이 있고 십자가 옥상이 보이는 크렘린 궁전 주위를 돌아서 바실리 사원을 들어가 으리으리한 장식을 정신 놓고 보다가 나와서, 나폴레옹 전쟁 기념공원을 보고 다시 나와 국영 백화점 속을 휘돌아서 맑게 흐르는 모스크바 강을 건너 흰 돌로 지은 노동궁 앞을 지나서 참새 언덕으로 갔다. 언덕에 올라서니 모스크바 전경이 눈앞에 나열한 중에 돔 지붕 교회당 옥상의 금색이 태양에 번쩍거려 가관이었다.
다시 내려와서 러시아 현 정부당국들의 클럽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에레와 공원에서 거닐다가 돌아왔다. 아침에 사방 교회당으로부터 종소리가 울려 들어온다. 나는 궁금증이 나서 나아가 사람들 뒤를 따라 가까운 큰 교회당으로 같다. 마침 장례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관 뚜껑을 열고 꽃 속에 싸인 시체를 공개한다. 누구든지 들어가서 한 번씩 들여다보고 기도를 올리고 또 옆에 있는 예수 초상에 입을 맞추고 나온다.
시가지 어느 교회당 정문에는 ‘종교는 아편’이라고 써 붙였다. 군중은 그것을 보면서 그곁에 있는 회당에 들어가 절을 하고 나온다.
모스크바 시가는 너절하다. 그리고 무슨 폭풍우나 지나간 듯하여 수습할 길이 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모두 실컷 매 맞은 것같이 늘씬하고 아무려면 어떠랴 하는 염세적 기분이 보인다. 남자들은 와이셔츠 바람으로 다니고, 여자들은 모자를 쓰지 않고 발 벗고 다닌다. 내용을 듣건대 비참한 일이 많으며, 외국 물건이 없어서 국내산으로만 생활하게 되므로 물가가 비싸고 불편한 점이 많다 한다.

오후에는 레닌Vladimir Lenin 묘를 구경 갔다. 공개하는 시간 전부터 구경꾼이 줄을 섰다. 좌우 문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 사이로 엄숙히 발자국을 가볍게 하여 들어갔다. 지하 층계로 내려서서 유리 관 주위를 돌며 창백한 얼굴로 조용히 드러누운 레닌의 시체를 보게 된다. 이 혁명가 레닌의 시체에 대하여 실물이니 아니니 세평이 자자하나 하여간 보게 된 것이 광영이었다. 광장 앞에서 나팔 소리, 북소리가 하늘 높이 떠오르고, 광장에는 적색 깃발이 수만 개 나부꼈다. 무려 수만 군중 속에서 청춘남녀들이 적색 모자를 쓰고 적색 넥타이를 메고 마차 위 혹은 자동차 속에서 팔을 뻗치고 발을 굴러 활기있는 소리로 합창이나 독창을 하여 북적북적하고 와글와글해졌다. 영국과의 국교 단절 시위운동이라고 한다. 한참 동안 구경하다가 떠날 길이 바빠 돌아섰다.
오후 5시에 모스크바를 출발하여 목적지인 프랑스로 향하였다. 러시아와 폴란드 국경 세관에서 일일이 짐을 가지고 내려가 조사를 받게 되어 퍽 거북하였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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