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당일 밤 축하 자리에서 류현진 선수와 저는 친해졌고, 우리는 서로에게 한 가지씩 약속을 했습니다. 그때는 현진이의 통역을 맡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현진이에게 “MLB 올스타 선수로 뽑히면 나를 올스타전에 데리고 가달라”라고 말했습니다. 통역 업무를 한다면 당연히 같이 가게 되겠지만, 당시에는 “LA 다저스 구단 직원으로 너를 돌봐주겠다”고 했습니다. 올스타전은 야구팬으로서 유명한 선수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니까요. 현진이는 알겠다고 하고 제게도 약속을 하나 해달라고 했습니다.
“형, 나는 형을 믿을 거야. 형도 변치 말고 의리를 지켜줘!”
“현진아, 약속할게. 내가 LA 다저스 구단 직원이지만 절대 널 배신하지 않을 거야! 그건 반드시 약속할게.”
현진이도 미국 진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소문이나 별별 이야기를 많이 들었겠지요. 그래서 걱정도 많이 했을 거고요. 저 역시 한국 사람이자 야구팬으로서 누구보다 현진이가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고, 현진이에게 악수를 청하며 약속을 꼭 지키겠노라고 했습니다. 아마 그날부터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더욱 믿을 수 있는 돈독한 사이가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진이에게 처음으로 한 약속」 중에서
한 선수 한 선수와 인사를 나누는데, 다저스의 에이스인 클레이튼 커쇼가 현진이를 보고 씩 웃으면서 체인지업을 좀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벌써 어디서 이야기를 들은 건지 비디오를 본 건지 현진이를 알고 있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현진이도 웃으면서 무슨 소리냐, 네 슬라이더를 가르쳐달라고 얘기했습니다. 같이 지내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는데 커쇼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지만 항상 야구를 연구하고 학생의 자세로 배우는 선수입니다. 팀 미팅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오고 연습 때 달리기도 항상 1등을 하는 등 열정과 노력이 가히 최고입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하면서 팀원들을 가장 열렬히 응원하는 것도 커쇼입니다. 그런 노력, 행동 하나하나를 옆에서 볼 때마다 그가 메이저리그 에이스라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습니다. 당연한 거죠. 투수코치 릭 허니컷은 텍사스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만남에 앞서 류현진 선수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나는 너를 비디오를 통해 많이 봐왔고 굉장한 투수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너는 루키지만 프로에서 온 선수이기 때문에 너를 변화시키거나 건드릴 생각은 없다. 네가 하던 대로 하고, 대신에 네가 잘 안 될 때 도움을 주겠다.” 류현진 선수를 존중해주는 자세가 참 멋지다고 느꼈습니다.
---「류현진, LA 다저스 팀원들을 처음 만나다」 중에서
NLCS 6차전 패배 후, 굉장히 중요한 경기에서 졌기에 장례식 타임이 이어졌습니다. 푸이그는 본인의 실책에 열받아했고, 엘리스는 벽에 기대서 아쉬워했습니다. 누구보다 선발투수였던 커쇼가 정말 속상해했습니다. 그렇게 10분의 시간이 지나고, 돈 매팅리 감독이 모두에게 라커룸으로 들어오라고 하고는 문을 잠그라고 했습니다. 매팅리 감독은 평소 말이 없는 편입니다. 선수들에게 기를 불어넣어주는 스타일은 아니죠. 하지만 항상 선수 편을 들어주고 침착합니다. 그날 매팅리 감독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시즌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끝나진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이 안 된다고 할 때, 예상치도 못했던 시즌 초의 부진을 이겨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선수들의 부상이었다. 잠시 후 라커룸을 나갈 때 절대 고개 숙이지 마라. 그럴 필요가 없을 만큼 난 너희들이 자랑스럽고 고맙다. 한 명 한 명 모두 사랑하고, 올해 너희들의 감독이 나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끝.”
짧고 굵게 말을 마친 후, 모든 선수들과 차례로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해줄 때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단장과 감독, 투수코치가 제게 와서 “1년 동안 현진이를 잘 보살펴줘서 정말 고맙다. 고생했다”고 말할 때도 역시 온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게 끝이라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우리의 한 시즌이 그렇게 끝난 겁니다. 미팅이나 회식 같은 것도 없이 그 순간이 끝이었습니다. 내년에도 계약이 되어 있는 선수들은 “내년에 보자”고 말했고, 계약이 불투명한 선수는 그냥 인사만 나누고 아쉽게 헤어졌습니다. 류현진 선수도 “진짜 이건 너무 개인주의적이다”라며 아쉬워하더군요. 팀이 뭉친 마지막 날이었고 다음날 이동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모두 휴식 모드였지만, 그래도 이제 시즌이 끝났으니 즐기자며 즐거워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도착해서 라커룸을 정리하고 헤어지면서 정말로 끝이 났습니다.
---「최종전, 그후」 중에서
저는 류현진 선수에게 일찌감치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현진이가 포수와 이야기하고 싶을 때면 포수를 데리고 저에게 오라고요. 아직은 현진이의 영어가 서투르니까요. 그때 제가 한 가지 덧붙인 말이 있는데, 바로 “다른 선수와 이야기하고 싶을 때면 둘이 함께 나에게로 오되, 그 선수를 부르는 것은 네가 직접 해라”였습니다. 저는 통역하는 사람이지 메신저가 아니니까요. 반대의 경우로 다른 선수들이 현진이에게 무언가를 물어봐달라고 할 때도 저는 직접 가서 이야기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인간관계가 생기니까요. 제가 다른 선수들의 말을 전달하기만 한다면 현진이는 저하고만 이야기를 하게 되겠죠. 대화를 할 때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눈빛을 마주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다양한 몸짓을 하게 되잖아요. 현진이가 저를 통해서만 이야기한다면 이곳 생활에 적응하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힘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투수코치도 류현진 선수에게 말을 전할 때 저를 쳐다보며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나를 보지 말고 류현진을 보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마치 통역이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라고 한 거죠. 현진이에게도 말하고 싶은 사람은 직접 부르라고 했습니다. 이름은 다 아니까 이름을 부르면 쳐다볼 테고, 그다음 말은 제가 전달해주면 되니까요. 그렇게 습관을 들이게 했습니다.
저는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을 공부했기 때문에 대화를 할 때 언어의 역할은 50%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눈빛, 태도, 웃음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생각을 나눌 수 있기에, 현진이 역시 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과 최대한 어울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선수들이랑 직접 이야기해」 중에서
‘코리아 데이’는 7월 28일로 잡혔습니다. 그 전날은 제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류현진 선수의 통역을 처음 맡던 날, 1년 모든 날을 비워놓고 현진이 스케줄에 따르겠지만 7월 27일은 베스트 프렌드의 결혼식이고 내가 들러리를 서야 하기 때문에 이날만은 양해해달라고 할 정도였죠. 단장도 오케이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코리아 데이 준비로 인해 어쩔 수없이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친구도 제 상황을 이해해주고 멋지게 준비하라고 하더군요.
드디어 7월 28일, ‘코리아 데이’ 행사가 열렸습니다. 경기장 가운데서 태권도 시범 무대를 선보였고, 경기 시작 전 대형 태극기가 야구장에 펼쳐지면서 한국의 인기 걸그룹 ‘소녀시대’의 태연 씨가 부르는 애국가가 다저스타디움에 울려퍼졌습니다. 제가 기획하고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일이 이렇게 현실로 이루어지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벅차올랐습니다. 류현진 선수, 추신수 선수는 애국가가 나오자 덕아웃 앞으로 나와 모자를 벗고 가슴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감독을 비롯해 모든 선수들도 덕아웃에서 나왔습니다. 같은팀 선수 조국의 국가가 연주되니 예우해주는 것이었죠. 감동적이었습니다. 제가 준비한 행사가 멋지게 펼쳐지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고생은 했지만 그만큼의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만원 관중 앞에서 한국을 조금이나마 알린 것 같아 정말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다저스타디움에 애국가가 울려퍼지던 날」 중에서
LA 다저스에 들어온 후,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는 스타선수들과 생활하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물론 제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간직해온 신념이기도 하고요. 돈 버는 게 인생의 목적이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요. 아무리 슈퍼스타이고 돈을 많이 버는 선수라고 할지라도 가까이서 지켜보니 일반 사람들과 똑같았습니다. 일주일에 100만 달러 이상을 버는 선수들도 개인적인 고민이 많더라고요. 물론 돈이 많으면 삶이 윤택해지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돈이 있다고 해서 걱정, 고민들이 없어지진 않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돈이라면 진심으로 행복을 느끼지 못할 것 같습니다. LA 다저스 팀에서 크리스천 선수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저도 크리스천이어서 함께합니다. 그런데 언젠가 한 선수가 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서 큰 수술을 앞두고 있으니 기도해달라고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분이 그 선수의 아버지가 될 수도 있고 제 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돈이 훨씬 많다고 해서 그런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구나 싶기도 했고요.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돈 많은 상대에게 밀린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자기가 하는 일을 충실하게 열심히 하면 돈은 그만큼 따라온다고 봅니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순간부터 사람이 변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저보다 수백 배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과 함께 지내면서 깨달은 것입니다. 저마다 잘할 수 있는 것들이 다르고 그렇기에 돈으로 인해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죠. 차이를 인정하고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좌절하고 부러워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돈은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중에서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3번 정도 있었습니다. 저는 크리스천이기에 힘들 때마다 신앙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살다보면 도저히 혼자서 이겨내지 못하는 일들이 종종 생깁니다. 주변 사람들이나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죠. 저의 경우는 종교에 많이 의지했습니다. 부모님의 독실한 신앙에 많은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사람들’입니다. 제 인생의 곡선을 그려 봤을 때, 올라갈 때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을 때였고 내려갈 때는 제가 혼자서 하려고 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올 시즌의 경우 현진이와 제가 만났고 잘 맞았고 저도 제 일에 최선을 다했고, 현진이도 야구를 잘했고 저를 잘 챙겨주고 형도 같이 잘되자고 힘을 줬습니다. 고마운 사람이죠. 또한 우리 둘 뒤에서 함께해준 에이전트, 현진이의 형과 현진이 부모님 등 한 명이라도 빠졌다면, 서로 힘이 되고 유기적으로 뭉치지 않았다면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왔을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제가 힘들 때는 주변에서 친구들, 가족들이 도와주고 힘을 줬습니다. 회사일을 할 때도 자기가 이 일을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한 시기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회사에서는 도저히 배울 게 없고 배울 사람이 없다고 느끼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항상 존경하는 사람이 있어야하고 그 사람에게 무엇이라도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겠죠.
---「힘들 때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