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내 계집애라는 말에서 내가 말 많고 되바라진 서울 까투리의 이미지를 얻는 데 견주어, 가시내라는 말은 내게 어떤 새침데기의 이미지를 준다. 그때의 새침데기는, 새침데기 골로 빠진다는 속담이 가리키는, 겉으로는 새치름하되 속은 엉뚱한, 그러니까 맹랑한 계집애가 아니다. 그때의 새침데기는 수줍음 속에 수억 년의 처녀를 간직하고 있는 알짜배기 요조숙녀다. 그러니까, 가시내라는 전라도말에는, 내 느낌으로는, 계집애라는 서울말에보다 더 풋풋한 기운이, 더 싱그러운 풋기운이 배어 있다.
간살 아첨하고 아양떠는 태도를 뜻한다. 간살을 잘 부리는 사람은 간살쟁이다. 간살에서 형용사 간살스럽다와 동사 간살부리다가 나왔다. 교태, 아양, 어리광 등과 때로 그 뜻이 넘나들며 쓰이는 간살은, 특히 여성에게는, 연애의 중요한 요소다. 그것은 양귀비부터 마릴린 먼로에 이르는 동서양의 경국지색傾國之色들에게 꼭 필요한 재능이었다.
건드리다 여자를 꾀어서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을 건드린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런 뜻으로 쓰이는 건드리다는 대체로 남자를 주어로 삼는다. 그렇지만, 해방된 여성이 나날이 늘어나고 동성애에 대해 사회가 점점 너그러워지면서 이런 의미론적 제약은 오늘날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너 걔 건드렸니라는 문장에서 이젠 더이상 너와 걔의 성性을 짐작할 수가 없다.
그녀 개인적으로, 나는 그녀라는 말의 쓰임을 막을 수는 없다고 믿는다. 나도 글 속에서 그녀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물론 내가 입말을 하면서 그녀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라는 말을 입말에서 사용하지 않듯이 그녀라는 말도 나는 입말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입말에서는 남녀를 아우르는 3인칭 단수 대명사로 그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그렇지만 나는 글을 쓰면서는 그이라는 말보다는 그 또는 그녀라는 말을 사용한다. 꼭 유럽어를 번역할 때가 아니더라도, 3인칭 대명사의 성을 밝혀주는 것이 편리할 때가 있는 것이다.
껴안다 그렇지만 동사 안다나 보듬다는 덩치가 큰 쪽을 주어로 삼고 덩치가 작은 쪽을 목적어로 삼는다. 껴안다에는 그런 제약이 없다. 덩치가 작은 쪽이 덩치가 큰 쪽을 껴안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껴안다는 안다나 보듬다보다 더 민주주의적인 동사다.
놀아나다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게 처신하는 것을 놀아난다고 말한다. 연애는 유희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눈맞추다 사랑은 눈에서 시작된다. 눈맞춤은 모든 사랑의 정지整地 작업이다. 눈맞춤이 있은 뒤에야 입맞춤이 있을 수 있다. 눈이 맞은 뒤에야 배도 맞는다.
달거리 나이가 들어 달거리가 멈추는 시기를 폐경기라고 말한다. 여자가 폐경기에 들어섰다는 것은 임신의 공포로부터 해방됐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성적으로 좀더 능동적일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뚜쟁이 한국에서는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자유혼이 일반적이었다. 당사자끼리 눈이 맞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는 말이다. 자유혼 즉 연애결혼이 일반화된 요즘도 중매혼은 특히 상류계급에 완강히 남아 있다. 마담 뚜를 매개로 한 중매혼은 대체로 계급혼의 성격을 띤다.
발가벗다 몸을 지닌 것들의 특권.
사랑 풋사랑이라는 말도 나를 들뜨게 한다. 풋나물이나 풋나무나 풋사과나 풋잠이나 풋술이나 풋담배나 풋가지나 풋감이나 풋게나 풋곡식이나 풋밤이나 풋배 같은 말이 그렇듯. 풋풋한 것은 늘상 좋은 것이다. 풋내기의 풋솜씨까지도. 내게는 풋볼이란 외래어까지도 풋풋하게 느껴진다. 짝사랑이라는 말은 내 누선淚腺을 건드린다. 그것은 제짝을 찾지 못한 사랑이다. 그것은 짝짝이의 사랑이다. 짝눈과 짝귀와 짝버선과 짝신이 그렇듯. 그러나 그것은 대체로 참사랑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내리사랑이 그렇듯.
삼삼하다 잊혀지지 않아 눈에 어리다. 암암하다. 그녀의 살품처럼.
서리서리 서리서리라는 부사는 동사 서리다에서 나왔다(어쩌면 거꾸로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서리서리는 서려 있는 모양을 뜻하는 부사다. 동사 서리다는, 본디, 수증기가 찬기운을 받아 물방울이 돼 엉긴다는 뜻이다. 그것은 명사 서리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니, 겨울에 서리가 서리는 모양이 서리서리인 것이다. 서리다의 그 최초의 뜻은, 이내, 향기가 가득 풍기다, 거미줄이나 식물·철조망 따위가 한곳에 많이 얼크러지다, 생각이 마음에 자리잡다, 어떤 감정이 표정 따위에 어리어 나타나다 따위의 뜻으로 번져나갔다.
설레다 설렌다는 것은 누군가가 당신 마음속의, 그러므로 당신 몸속의, 사랑의 버튼을 눌렀다는 뜻이다. 당신이 접속됐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당신의 혈관에 미약을 주사했다는 뜻이다.
속삭임 낮은 목소리로 가만가만 정답게 하는 말. 사랑의 말은 대체로 속삭임이다. 속삭임은 동사 속삭이다에서 나왔다. 속닥이다, 속닥거리다, 속달거리다, 수군거리다, 수런거리다 같은 비슷한 계열의 다른 낱말들과는 달리 속삭이다에는 부정적 뉘앙스가 별로 없다.
씨받이 씨받이의 대응어는 씨내리다. 즉 씨내리는 이상이 있는 남편 대신에 아내와 합방하여 아이를 배게 하던 남자다. 씨받이 풍습은 아직까지도 완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입양 제도에 대한 거부감이 전통적인 남아 선호와 결합된 탓이다.
아롬 흔히 아름이라는 이름이나 아람이라는 이름과 혼동되지만, 그 이름들 사이의 의미 관련은 형태적 유사성처럼 크지 않다, 라기보다는 전혀 없다. 우선 아름은 양팔을 펼쳐 껴안았을 때의 둘레의 길이를 말한다. … 그리고 아람은 밤이나 상수리 따위가 나무에 달린 채 저절로 충분히 익은 상태, 또는 그 열매를 뜻한다. 이 말은 아마도 알밤이 변한 형태일 것이다. 이에 반해 아롬은 동사 알다의 명사꼴 앎의 중세적 형태다.
외로움 사랑은 외로움을 치료하는 행위이지만, 자주, 더 큰 외로움을 낳는다.
입맞춤 맨 처음으로 해본 입맞춤이 생각난다. 그 입술의 소금기가. 그 아이도 그 입맞춤을 기억하고 있을까? 이 입술을 기억하고 있을까?
제미붙을 제 어미에 붙을. 동사 붙다는, 속어로, 여자와 남자가 성적 관계를 갖는다는 뜻이다. 붙다를 붙어먹다라고도 한다. 유럽 언어들에도 제미붙을과 똑같은 의미를 지닌, 그러니까 어머니와 자식 간의 성적관계를 곧이곧대로 표현하는 욕이 수두룩하게 있다. 근친상간 중의 근친상간이라 할 어미와 자식의 상간은 오래도록 신화와 문학의 한 소재가 돼왔다. 그것은 최고의 금기였고 상상력은 금기를 금기시하므로.
짜릿하다 순간적으로 몸이 옴츠러질 만큼 자리다. 감전된 것처럼. 모든 사랑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랑은 짜릿하게 다가온다.
함치르르 고르게 윤이 있고 고운 모양. 함치르르한 검은 머리는 매초롬한 몸매와 함께 섹시함의 보수적 기준이다.
홀어미 홀아비 살림에 구더기가 끓고, 과부 생활에 꽃이 핀다는 일본 속담이 여자에게보다는 남자에게 홀앗이가 훨씬 더 힘들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봉건시대의 여자에게 남편 섬기기란 여러모로 지금보다 훨씬 더 힘겨운 일이었을 터이므로, 남편의 죽음이 아내에게는 한편으로 해방을 뜻했을지도 모른다. 과부는 찬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속담은 그런 해방된 여자의 홀가분함을 지적한다.
흐느끼다 몹시 서러워 흑흑 느껴 울다. 왜 여자의 흐느낌은 남자에게 성적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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