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엄마,
수학 시험 석차가 나왔는데, 저번 시험보다 5등이 오른 것을 보고 무척 기뻤습니다. 물론 상위권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이렇게 계속 잘해서 곧 도달하길 기대하고 있어요! 저한테 3년 동안 해야 할 수학을 3개월 만에 따라잡았기를 바라시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편지를 쓴 것 말고는 한 것이 전혀 없어서 다른 아이들보다 대략 3년이 뒤처져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번 학기 평균이 저로서는 상당히 잘한 거예요. 낙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시험 석차에서 제 밑으로 3년 동안 열심히 이과 공부를 한 녀석들이 약 여덟 명이나 있다고요!
내일은 제가 진짜로 방돔 공작부인의 초대를 받아 함께 코메디 프랑세즈에 갑니다. 사람을 시켜 저에게 초대권을 보내주셨어요. 좌석이, 있잖아요, 1층 칸막이 특별석인데, 특별석은 40프랑이에요! 정말 볼 만하겠죠! --- 1917년 파리의 생-루이 고등학교에서 보낸 편지 중에서
우리 연대는 간단히 말해 하나의 거대한 축구 학원입니다. ……이곳이 학교와 다른 점이라면 그런 훈련들이 명령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과 놀이를 잘 못한다는 점, 그리고 지하 감방 눅눅한 짚더미 위에서 잔다는 점이라고나 할까요. 고등학교와 비슷한 점도 있습니다. “신병 아무개, 내 말을 백 번 복창한다, 실시. 집합할 땐 사령관 왼쪽으로 이동한다. 실시.”
오늘 저녁엔 티푸스 예방주사를 맞았습니다.
같은 내무반에 마음에 드는 동료들이 생겼습니다. 기다란 베개로 대교전을 벌입니다. 동료들은 저한테 호감을 갖고 잘 대해 주는데 저로서는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라, 베개 치기만큼은 제가 받는 것보다 더 많이 돌려주고 있습니다. --- 1921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보낸 편지 중에서
오늘 오후에 한 미국 여인의 집에서 차를 마셨는데, ……세 명의 귀여운 얼굴의 아가씨들이 와 있었고, 정말 맛있는 쿠키가 나왔습니다. 전 말이 좀 서툴기는 했어도 좌중의 압도적인 공감을 얻었습니다. 세 아가씨들은 세 명 모두 동시에 대답하고, 세 명 모두 같은 연극과 같은 오페라를 좋아하고, 세 명 모두 차에 같은 양의 설탕을 넣습니다. 그러니 작별의 키스도 세 명 모두에게 똑같이 해주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세 아가씨들은 모두 함께 5시 10분에 돌아갔고, 그래서 저는 세 배로 슬펐습니다.--- 1922년 파리에서 보낸 편지 중에서
날씨가 스산합니다. 그래도 일요일에는 오를리 공항에서 비행기 조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아름다운 비행이었어요. 엄마, 전 이 일을 너무 사랑합니다. 비행기 엔진과 단 둘이 마주보며 4,000미터 상공에 있을 때의 그 고요함, 그 고독을 엄마는 상상도 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와서 느끼는 현장에서의 멋진 동지애도 말입니다. 우린 자신의 비행 차례를 기다리면서 풀밭에 누워 있다 잠이 들곤 합니다. ---1924년 파리에서 보낸 편지 중에서
차를 운전하고 왔더니 손가락이 꽁꽁 얼어버렸습니다. 지금은 자정이에요. 모자를 벗어 침대 위에 던져 놓고 나니 고독이 밀려옵니다.
들어오다가 엄마의 쪽지를 발견했습니다. 그 쪽지가 저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있어요. 엄마, 비록 제가 편지를 쓰지 않아도, 비록 제가 나쁜 놈일지라도, 엄마는 이 세상 그 무엇도 엄마의 애정을 대신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다니셔도 됩니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인데도 제가 한 번도 표현할 줄 몰랐던 말입니다. 그래도 그 말은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살고 있으며, 아주 확실하며 한결같습니다. 전 그 누구도 그렇게 사랑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엄마를 사랑합니다. ---1925년에서 1926년 사이 파리에서 보낸 편지 중에서
카멜레온 한 마리를 길들였어요. 이곳에서의 제 역할은 길들이는 것입니다. 저한테 맞아요, 참 재미있는 표현이지요. 그런데 제가 길들이고 있는 카멜레온은 태곳적 동물을 닮았어요. ……몸동작이 놀랍도록 느리고, 거의 인간에 가까울 정도로 조심스러운 성격입니다. --- 1927년 쥐비에서 보낸 편지중에서
자나 깨나 9월에는 돌아가게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료 한 명이 포로로 붙잡혀 있는 이상, 그가 위험에 처해 있는 한, 여기 남아 있는 것이 제 의무입니다. 제가 도움이 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전 꿈을 꿉니다. 꿈속에는 식탁보가 깔려 있고, 그 위에 과일이 놓여 있으며, 보리수 아래서 산책을 하는 생활과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에게 총을 쏘는 대신 상냥하게 인사를 하고, 안개 속에서 시속 200킬로미터로 달리는데도 그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으며, 끝도 없는 사막 대신 하얀 자갈 위를 걷고 있는 그런 꿈입니다.
그 모든 것이, 너무 멀리 있군요!--- 1928년 쥐비에서 보낸 편지 중에서
시간이 있어 책을 쓰려? 쓰겠지만, 아직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아직 제 안에 있는 책이 무르익지 않았어요. 사람들의 “목을 축여 줄 것 같은” 그런 책이 말입니다.---1940년 오르콩트에서 보낸 편지 중에서
아주 잘 지냅니다, 대단히. 하지만 엄마를 본지가 너무 오래 되어 마음이 이다지도 서글플 수가 없습니다. 엄마 생각을 하면 전 눈앞이 캄캄합니다, 나의 작고 늙으신 사랑스러운 엄마. 이 시대는 왜 이토록 불행한 걸까요.
디디의 집이 없어져버렸다는 소식에 가슴에 못이 박히는 것 같았습니다. 아, 엄마, 제가 그 아일 도울 수만 있다면! ……언제쯤에나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될까요?
---1944년 보르고에서 보낸 마지막 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