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은, 경회루를 구경하면서 무엇 하던 건물이냐고 물었다. 미스터 방은 서슴지 않고
“킹 듀링크 와인 앤드 딴쓰 앤드 씽, 위드 땐써”
라고 대답하였다. 임금이 기생 데리고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하던 집이란 뜻이었다.
내가 보기엔, 조선여자의 옷이 퍽 아름답고 점잖스럽던데, 어째서 양장들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S소위가 물었다. 미스터 방은 여자들이 서양 사람한테로 시집을 가고파서 그런다고 대답하였다.
서울역을 비롯하여 거리에 분뇨가 범람한 것을 보고, 혹시 조선 가옥에는 변소가 없느냐고 S소위가 물었다. 미스터 방은, 있기야 집집마다 다 있느니라고 대답하였다. 썩 좋은 조선 그림을 한 장 사고 싶다고 하여서, 문지방 위에다 흔히들 붙이는 사슴이 불로초를 물고, 신선이 앉았고 한 것을 5월에 한 장 사주었다.
---「미스터 방」중에서
“이놈, 이 불한당들. 이 멧갓 벌목한다는 놈이 어떤 놈이냐?”
비틀거리면서 고함을 치고 쫓아오는 한생원을,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일하던 손을 멈추고 뻔히 바라다보고 섰다.
“이놈 너루구나?”
한생원은 영남이라는 읍내사람 벌목 주인 앞으로 달려들면서, 한 대 갈길 듯이 지팡이를 둘러멘다.
명색이 읍사람이라서, 촌 농투성이에게 무단히 해거를 당하면서 공수하거나 늙은이 대접을 하려고는 않는다.
“아니, 이 늙은이가 환장을 했나? 왜 그러는 거야 왜.”
“이놈. 네가 왜, 이 멧갓을 손을 대느냐?”
“무슨 상관여?”
“어째 이놈아 상관이 없느냐?”
“뉘 멧갓이길래?”
“내 멧갓이다. 한덕문이 멧갓이다. 이놈아.”
“허허, 내 별꼴 다 보니. 괜시리 술잔 든질렀거들랑, 고히 삭히진 아녀구서, 나이깨 먹은 것이, 왜 남 일하는 데 와서 이 행악야 행악이. 늙은인 다리뼉다구 부러지지 말란 법 있나?”
---「논 이야기」중에서
이때에 나를 구원하여 준 것이 생각지도 아니한 한 장의 엽서였다. 다시 열 며칠인가 지나서였다. 일인 형사가 끌어내 가더니 어인 셈인지 빈들빈들 웃으면서,
“나가구푼가?”
하고 물었다.
나는 섬뻑 무어라고 대답을 못 하고 눈치만 보았고 했더니 재차
“나가구퍼?”
그제야 나도
“있구퍼서 있나요?”
“음…….”
그러고는 한참이나 내 얼굴을 여새겨보고 나서
“조선문인협회라구 하는 것이 있나?”
“있습니다.”
“무엇 하는 단첸구?”
“조선사람 문인들이 모여서 문학으로 나랏일을 도웁자는 것입니다.”
---「민족의 죄인」중에서
“못써! 그렇게 과격한 사상으로 기울어서야 쓰나…… 정 농촌으로 돌아가기 싫거든 서울서라도 몇 사람 맘 맞는 사람이 모여서 무슨 일을?조선에 신문이 모자라니 신문을 하나 경영하든지, 또 조고맣게 하자면 잡지 같은 것도 좋고, 또 영리사업도 좋고…… 그러면 취직운동 하는 것보담 훨씬 낫잖은가?”
“졸 줄이야 압니다마는 누가 돈을 내놉니까?”
“그거야 성의 있게 하면 자연 돈도 생기는 거지.”
P는 엉터리없는 수작을 더 하기가 싫어 웬만큼 말을 끊고 일어섰다. 속에 있는 말을 어느 정도까지 활활 해준 것이 시원은 하나 또 취직이 글렀구나 생각하니 입 안에서 쓴 침이 고여 나온다.
복도에서 편집국장 C를 만났다. P는 C와 자별히 사이가 가까운 터였다.
---「레디메이드 인생」중에서
아, 그런데 글쎄 막벌이 노동을 하고 어쩌고 하기는커녕 조금 바시시 살아날 만하니까 이 주책꾸러기 양반이 무슨 맘보를 먹는고 하니, 내 참기가 막혀!
아니, 그놈의 것하고는 무슨 대천지원수가 졌단 말인지, 어쨌다고 그걸 끝끝내 하지 못해서 그 발광인고?
그러나마 그게 밥이 생기는 노릇이란 말인지? 명예를 얻는 노릇이란 말인지, 필경은, 붙잡혀가서 징역 사는 놀음?
아마 그놈의 것이 아편하고 꼭 같은가봐요. 그렇길래 한번 맛을 들이면 끊지 못하지요?
그렇지만 실상 알고 보면 그게 그다지 재미가 난다거나 맛이 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더군 그래요. 부랑당패던데요. 하릴없이 부랑당팹디다.
저, 서양 어디선가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 몇 놈이 양지 쪽에 모여 앉아서 놀고 먹을 궁리를 했더라나요. 우리 집 다이쇼가 다 자상하게 이야기를 해줍디다.
---「치숙」중에서